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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덕수궁 --- 개통된 '덕수궁돌담길', '고종의 길'과 사라진 옛 흔적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0. 10. 30. 14:19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11일 경복궁에서 왕세자와 함께 아관파천을 단행합니다.
파천 기간은 1년으로 1897년 2월 25일 국민의 여망에 따라 환궁하는데 궁궐은 다름아닌 경운궁(덕수궁).
고종은 파천 기간중 경운궁 수리를 지시하거나 수리독촉을 하였으며 아관을 나와 경운궁에 직접 가서 공사 마무리를 독려하기도 했는데요.
고종이 이용했던 아관파천길, 경운궁에 오가던 길이 근래 개방되었습니다.
2017년 서울시에 의해 '덕수궁 돌담길' 100m가 열렸습니다.
1959년 영국대사관의 임대로 일반인 통행이 금지된지 59년만이지요.
이 길은 고종이 선왕의 어진이 모셔진 선원전과 경희궁 등으로 드나들던 길목으로 전해 집니다.
영국공사관은 1884년 중구 정동의 경운궁 북쪽 담 옆에 부지를 매입하여 개설하였으며 1959년 부터는 임대를 한 후 철문을 달아 놓고 돌담길 100m를 단독으로 사용한바 있습니다.
2018년 10월에는 아관파천길로 추정되는 미국대사관저 북쪽 언덕에 길이 120m, 폭 3m 규모의 길을 복원, '고종의 길'로 개방하였습니다.
당시 경복궁에서 아관으로 파천하면서 이 길을 이용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대한제국 시대에 미국대사관이 제작한 정동지도는 이 길을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하고 있으니 다소의 신빙성은 있어 보이네요.
그동안 미국대사관저에서 북쪽의 선원전 부지(옛 경기여고)까지는 미국소유여서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2011년 미국과 토지교환을 통해 우리 소유가 되면서 미국대사관저 경계에 담장을 쌓는 일이 가능해졌고 그래서 고종의 길도 열린 것이지요.
현재 선원전 부지는 공터로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는 장기계획으로 선원전을 복원할 방침이라 귀추가 주목됩니다.
* 중구 정동의 대한성공회를 찾아 갑니다. * 1926년에 축성된 대한성공회 서울구교좌성당. * 대한성공회 사제관. * 대한성공회 안에 있는 경운궁 양이재(養怡齋). 1920년에 사들인후 옆으로 조금 이전되어 현재 서울교구 사무실로 사용중. * 이 일대는 홍원(紅園)이라 불렀는데 1910년대에 황족과 귀족 자제교육을 전담한 수학원(修學院)으로 사용했다고. * 대한성공회 옆에 있는 영국대사관. * 영국대사관 정문 옆에서 근래 개통된 덕수궁돌담길이 시작! * 영국대사관 정문 앞에서 덕수궁 안으로 작은 문을 들어서면 내부 돌담길. * 담장 너머로 보이는 영국대사관. *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는 정겨운 내부 돌담길. * 내부 돌담길을 조금 걸으면 작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요 * 앞에는 영국대사관 후문. * 이제부터는 근래 개통된 돌담길 100m. 왼쪽은 덕수궁 담, 오른쪽은 영국대사관 담. * 영국대사관은 담 밖의 길을 1959년 임대한 후 철문을 달아 놓고 돌담길 100m를 단독으로 사용한바 있습니다. * 담장 위로 붉게 물들어가는 덕수궁 후원. * 예전에 있던 철문 흔적. * 왼편 사진처럼 철문으로 막혀 있다가 3년전 개통시킨 모습. * 돌담길이 끝나면 경사길 너머로 미국대사관저 북쪽 경계에 있는 '고종의 길'이 보입니다. 옛날에는 이곳 언덕에도 구름다리가 있었다는데? * 덕수궁 돌담길에서 구세군중앙회관, 덕수초교로 통하는 길. 옛 담장이 남아 있는 왼편은 덕수궁 선원전터(옛 경기여고). * 작은 철문에서 시작되는 '고종의 길'. * 똑바로 가지 못하고 우회하도록 만든 길. *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의문? * 일제때 선원전터에 들어선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 * 노후된 채로 남아 있는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 보수하여 탐방객 편의시설로 쓸 계획이라고. * 경사길을 올라가면, * 비로서 동쪽으로 덕수궁이 보이고, * 서쪽으로 120m 복원된 고종의 길.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을 오갈때 사용한 길로 추정. * 고종의 길에서 바라본 동쪽의 구세군중앙회관, 덕수초교 방향. 예전 덕수궁의 혼전(魂殿)이 있었던 영역. * 과거 경기여고가 있던 덕수궁 선원전(璿源殿) 영역. 일제때 조선저축은행, 경성일보사 등에 매각되었다가 해방후 경기여고가 들어섰으며 미국대사관 소유가 되었다가 2011년 미국과 토지교환을 통해 확보한 옛 터. * 원래 이 길은 1892년 미국 공사에 의해 미국공사관의 이면도로로 개설되었다고 하는데, * 1896년 아관파천 당시는 사진처럼 이런 모습이라니 지금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네요 * 복원하면서 담장 안으로 또다른 길을 만들었네요. 원래의 옛 모습은 이렇지 않았을 겁니다. * 무척이나 높은 담을 보니 미대사관저의 보안대책 때문에 이렇게 만든것 같네요 * 고종의 길은 작은 문을 나서면서 끝나는데, * 작은 문을 나서면 정동공원이 나타납니다. * 정동공원 일대는 예전 러시아공사관 부지였겠지요. * 첨탑만 남아 있는 러시아공사관은 현재 보수공사중. * 일제때에는 신문로 위로 덕수궁과 경희궁을 연결하는 홍교가 있었다고. * 러시아공사관터 남쪽의 예원학교도 덕수궁터로 추정. * 정동길을 걸어 중명전을 찾아 갑니다. * 미대사관저와 담을 같이 쓰고 있는 중명전. * 중명전(重明殿)은 1900년에 지은 덕수궁 최초의 서양식 건물. * 1904년 덕수궁 화재 이후 고종이 옮겨와 1907년 퇴위시까지 머물던 건물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 일제때에는 외국인을 위한 클럽으로 사용. * 중명전 뒷편의 만희당(晩喜堂)터. 1904년부터 고종이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1907년 함녕전으로 옮겨간후 헐린 것으로 생각 됨. * 중명전에서 바라본 예원학교. 중명전과 예원학교 일대는 1897년 덕수궁을 확장할때 포함된 지역으로 10여채의 전각이 있었으나 중명전을 제외하고 1920년 이후 없어진 상태. * 1905년 11월 18일 새벽, 고종의 승인도 없이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중명전. 가운데는 이토 히로부미. * 마침 중명전 2층에서 개최중인 사바틴 전시회. 러시아 청년 사바틴은 1883년 입국하여 중명전, 러시아공사관 등 여러채의 서양식 건물을 설계하거나 공사감독한바 있지요 * 덕수궁 밖 서쪽에 1885년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한국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 정동제일교회. * 서양의 공사관, 학교, 교회 등이 밀집하며 근대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던 덕수궁 서쪽의 정동길.. * 개략적인 1910년대 덕수궁 영역. 일제강점기때 분할매각, 도로개설, 공공건물 건립 등으로 궁궐 영역이 대폭 잠식된 것을 알수 있지요. '강바람의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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