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의 유적답사

수락산 석천동, 서계 박세당 유적지 답사기

미호강 2019. 8. 8. 20:14

2019.8/8(목), 수락산을 찾았다가 잠시 석천동(石泉洞)에서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유적을 만났습니다.


서계 박세당(1629~1703) 선생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성품이 대쪽같기로 유명한 분이지요.

석천동(石泉洞)은 선생이 1668년 관직을 그만두고 수락산 자락인 현재의 장암동, 석림사 가는 계곡에 정착하면서 명명한 이름입니다.

이 일대는 서계 종택을 중심으로 계류에는 제자들과 학문을 나누던 정자터가 남아 있고

계류의 암반에는 그의 필적으로 추정되는 "석천동(石泉洞), 취승대(聚勝臺), 서계유거(西溪幽居)"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 사랑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서계 종택.

현재 보수중으로 외부인의 출입은 당분간 불가능하더군요.



* 종택 옆 계류(장암천)에 내려서면 서계의 발자취를 찾아볼수 있지요.

깨끗한 물이 흐르는 바위마다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요.



*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류에는 옹벽공사가 한창이라 유적지의 경관이 점차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더군요.



* 석천동(石泉洞), 서계유거(西溪幽居) 글씨.

궤산정 정자 아래의 바위면에 새겨진 석천동(石泉洞)은 돌과 샘이 함께 어우러진 곳,

그 옆으로 여럿이 앉아 있을수 있는 흰 반석에 새겨진 서계유거(西溪幽居)는 서계가 한적하게 지내던 곳이라는 뜻으로 그의 말년의 삶을 웅변하고 있지요.



* 역시 평탄한 바위의 수직면에 새겨진 취승대(聚勝臺) 글씨.

취승대(聚勝臺)는 경치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서계가 조석으로 찾아 한적한 삶을 즐기던 곳이라고 합니다.


 

* 석천동(石泉洞) 바위위는 궤산정터로 몇년전만 해도 낡은 궤산정이 있었는데 헐려사라졌더군요.

궤산정은 아홉길 높이의 산을 쌓는데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의 교훈을 주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 계류에서 바라 보이는 서계 종택.



* 서계종택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나타나는 청풍정(淸風亭)터.

선생이 후학들과 학문을 강론하던 곳인데 현재 주춧돌만 남아 있으며

정자터 아래 개울바닥에는 처남 남구만이 찾아와 썼다는 수락동천(水落洞天) 바위글씨가 있다고 하나 아쉽게도 확인치는 못했습니다.



* 원래 노량진에 있던 것을 1968년에 이곳 석천동에 옮겨 복원한 노강서원(鷺江書院).

서원 앞에 청풍정터가 있고 그 앞 계류에 수락동천 바위글씨가 있으니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서계의 둘째 아드님인 정재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충절을 기리고자 복원하였는데 본래 이곳은 서계 선생이 김시습을 기리고자 세운 청절사(淸節祠)터 였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