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의 유적답사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지내던 사직단(社稷壇).

미호강 2020. 9. 23. 10:32

사직단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 왕실 최고의 제례시설로 땅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를 지내던 제단입니다.

 

1396년(태조 4) 창건되었는데  고대 예제에 따라  종묘와 대칭되게 궁궐의 서쪽(오른쪽)에 두었으며,  단은 사단(社壇), 직단(稷壇)을 두되 사단이 동쪽, 직단이 서쪽에 설치되었습니다.

사직단은 임진왜란때 전소된후 다시 복구된바 있는데,

잘 보존된 종묘와 달리 사직단은 일제때 두 단만 남긴채 부속건물들이 모두 철거되고 공원으로 조성된바 있으며 해방후에도 옛 터에 공공건물을 계속 지으면서 망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옛 건물은 사직단정문과 안향청(安香廳), 두 동뿐!

 

1960년대 이후에는 사직로 개설공사때 도로에 포함된 남쪽 부분이 크게 잠식되었고 사직단정문도 뒤로 밀리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도대체 원래의 면적이 어디까지 이고 얼마나 훼손되었는지 파악조차 쉽지않은 일이니 일정때나 해방이후의 우리 정부나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네요.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국가의 중요시설인 사직단을 이렇게 무시하고 푸대접할수 있나요?

늦게나마 수년전부터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진척이 매우 더디니 언제 본래의 제 모습을 찾을수 있을지 앞날이 요원합니다.

 

주요 피해사례를 다시 언급하자면,

(1) 일제때인 1922년, 전사청 등 부속건물 10여동과 부속시설 대부분 철거되며 공원으로 조성됨.

(2) 일제때 북측언덕에 종로도서관이 들어서고 황학정이 이건 됨.

(3) 1962년에 사직로가 개설되면서 도로에 포함되어 남측부분 수천평이 잠식되고 사직단정문도 뒤로 14m나 물러남.

(4) 1973년 사직로확장공사때 다시 남측부분이 잠식되고 사직단정문도 뒤로 10m 물러 남.

(5) 1970년대 이후 북동측에 사직동주민센터(동사무소), 서울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 어린이놀이터 등이 들어서며 크게 잠식 됨.

 

현지 안내문을 살펴보면,

「사직단은 조선시대 토지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전통사회에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의 근본을 상징했으며, 태조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1395년 경복궁 동쪽에 종묘를, 서쪽에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사직단에는 동쪽에 사단(社壇), 서쪽에 직단(稷壇)을 배치했는데, 두 단의 모양과 크기는 한 변이 7.65m 인 정사각형이고 높이는 약 1m이다.  단 주위에는 유(壝)라는 낮은 담을 두르고, 다시 사방에 4개의 신문(神門)을 설치한 담을 둘러 이중으로 담을 설치하였고, 그 외부에 제사준비를 위한 부속시설을 두었다.

하지만 1910년 전후 일제에 의해 제사가 폐지된 이후 부속건물들이 철거되었고 두 단만 남긴채 공원으로조성되었다.

1963년 사적 제121호로 지정되면서 1980년대에 담장과 부속시설 일부를 복원했으며, 1988년부터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사직대제를 매년 거행하고 있다.」

 

 

 

* 조선의 정궁, 경복궁!

 

* 고대 예제에 따라 경복궁 서쪽에 설치한 사직단을 보러 갑니다.

 

* 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있어 구경을 한 후,

 

* 경복궁의 서쪽으로 사직로변에 위치한 사직단에 도착!.

 

* 제법 규모가 큰 사직단 정문은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로 보물 제177호.  

 

*  사직단정문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다시 중건되었지만 정확한 시기는 모호한 실정.

 

* 사직단 정문은 1960년대 이후 도로개설로 인해 무려 24m나 뒤로 물러난 상태이니 원래의 위치는 도로 한 가운데!.

 

* 사직단은 일제때 거의 모든 건물이 철거 된 상태로 현재 복원추진중.  분홍색은 복원예정으로 윗쪽은 전사청 권역, 오른쪽 아래는 안향청 권역.

 

* 현장은 동남쪽으로 틀어져 방위에 혼선이 오므로 지도로 살펴본 모습.  오른쪽 제단이 동쪽으로 사단(社壇)이고 왼편이 서쪽으로 직단(稷壇).

 

* 정문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은 안향청.  안향청은 예전 왕이 제례에 임하던 재궁

 

* 토지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

 

사직단은 가장 중심에 사단과 직단을 배치하였습니다.

담장은 안팎에 2개를 네모나게 만들었는데 바깥담장에는 사방에 신문(神門)을 내고  내부에는 다시  유(壝)라는 낮은 담을 두었는데 유에는 사방에 홍살문이 있고 그 안에 사단과 직단을 배치.

특히 북신문은 신(神)이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여 삼문(三門)으로 다른 문보다 크게 만들어 격을 높였으며,

유의 바깥 서남쪽에는 신실(神室)이 있고 유의 북문과 북신문 사이에는 왕이 서는 자리인 판위(版位)가 있습니다.

 

 

* 동쪽(실제는 남동쪽)의 동신문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동쪽에 사단(社壇)을 배치.

 

* 서쪽(실제는 북서쪽) 서신문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서쪽에 직단(稷壇)을 배치.

 

* 남쪽(실제는 남서쪽)의 남신문에서 바라본 모습.

 

* 북쪽(실제는 북동쪽)의 북신문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신(神)이 출입하는 문이라 격을 높여 다른 문보다 큰 삼문 형식.

 

* 복원사업을 추진중인 서쪽의 전사청(典祀廳) 지역.  사직동주민센터가 위치한 북동쪽은 아직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2020. 7월, 사직단의 서쪽에 위치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 권역의 복원공사를 착공하였으며

본 공사는 2021.12월말까지 총 32억원을 투입하여 전사청 등 건물 8동과 시설물을 복원할 계획입니다.

또한 내년 2021. 8월까지 안향청 권역의 사직동주민센터, 사직파출소, 어린이놀이터 등 일반시설물은 철거, 이전하고 발굴,복원설계를 거쳐 2027년까지 원형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종로도서관은 차치하고라도 서울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이 큰 면적으로 사직단 터를 잠식하고 있음에도 복원에서 제외시킴은 유감이 아닐수 없네요.

아무쪼록 원형에 충실한 복원을 기대합니다.

 

 

* 전사청 지역은 예전에 여러채의 건물이 있었던 곳인데 일제때 건물이 모두 철거된후 그동안 공원으로 이용되었었지요

 

* 발굴 결과 우물이 드러난 모습.

 

* 사직단의 남측면.  사직로 도로공사때 크게 잠식되어 무척 옹색해진 모습.

 

* 사직동주민센터에서 종로도서관으로 올라가는 도로 왼편, 안향청 권역에는 해방후 1970년대에 건물들이 들어선 지역.

 

* 사직단의 부속건물이 있었던 북동쪽지역, 안향청 권역엔 1970년대 이후 사직동주민센터 등 여러채의 공공건물이 들어 섰는데요.

 

* 일제때뿐만 아니라 해방후에도 사직단의 파손은 계속되었다니 무척 안타깝네요.  사진은 주민센터 옆에 들어선 어린이놀이터.

 

* 사직동주민센터, 파출소, 어린이놀이터는 앞으로 복원을 위해 철거, 이전되지만  서울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이 제외되어 유감이 아닐수 없네요.

 

* 종로도서관도 사직단의 옛터인듯 한데 워낙 잠식범위가 넓어 본래의 제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