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핀 캠벨의 선교사주택과 배화학당 답사기.
드디어 오늘 감격스런 마음으로 조세핀 캠벨선교사 주택과 배화여중고교를 답사하였습니다.
아주 먼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네요.
젊었을때 옛 서울고교(지금은 경희궁)에 갔다가 우연히 학교 뒷담 너머로 인왕산을 바라보며 멋진 서양식 건축물도 본적이 있었는데요.
그 건물이 무척 인상적이라 뇌리에 깊히 새겨졌지만 유럽 어느 나라의 대사관 관련 건물이려니 했었는데 세월이 몇십년 흐른 최근에 와서야 캠벨선교사 주택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큰 마음을 먹고 선교사 주택을 확인차 나선 것입니다.
조세핀 캠벨(1853~1920)은 미국 남감리교회가 1897년 조선에 파견한 첫 여성선교사!
캠벨은 이미 중국에서 10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경험많은 그녀를 조선에 보내기로 결정한것 이지요.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당시 배화학당(처음에는 자골학당)을 세워 여성 인재를 양성하는 등 선교사역에 힘썼는데요.
26년 동안 기독교 선교를 위해 헌신하던 캠벨은 1920년 운명하였고 그녀의 희망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잠들어 있습니다.
종로구 사직동 311-32번지 외 1필지에 있는 선교사 주택 2동은 1906년경 언덕 위 일천여평의 넓은 대지에 세워졌는데 선교역사를 증거하는 귀중한 건축물로 평가됩니다.
보통의 선교사 주택은 붉은 벽돌이나 캠벨 선교사 주택은 아주 드물게 석재로 짓고 내외부도 잘 보존되어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크므로 2019년 서울시에 의해 등록문화재(우수건축자산 제3호)로 지정된바가 있습니다.
현재 선교사 주택 주위는 사직2재개발구역으로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어 주목됩니다.
1897년 , 45세 나이로 조선에 파견된 첫 여성선교사, 조세핀 캠벨은
1898년 종로구 내자동에 케롤라이나 학당을 설립하였으며 1910년에는 배화학당으로 교명을 개칭하고,
1916년 지금의 필운동으로 교사를 이전하고 그해에 생활관, 과학관을 지었으며, 캠벨 사후인 1926년에는 캠벨기념관을 신축하였습니다.
현재 배화학당은 배화여중과 여고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