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의 비, 단경왕후 거창신씨의 온릉(溫陵)
양주시 장흥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비, 단경왕후 거창신씨의 온릉(사적 제210호)을 답사하였습니다.
단경왕후 거창신씨(1487~1557)는 7일의 왕비로 또 인왕산 치마바위에 얽힌 전설로 유명한 비운의 여성이지요.
1499년 진성대군과 혼인해 부부인에 봉해졌으며 1506년 진성대군이 중종으로 즉위하면서 왕비로 책봉된바 있으나
단경왕후의 고모가 연산군의 부인이며, 아버지 신수근(愼守勤, 1450~1506)이 반정에 반대해 죽임을 당하자 왕비로 책봉된지 7일만에 폐위되었습니다.
단경왕후는 그의 친정 거창신씨의 묘역에 조성되어 폐비신씨지묘(廢妃愼氏之墓)라고 새겨진 표석이 세워져 있었으나 1739(영조 15)년에서야 복위되고 묘소는 온릉으로 봉릉되어 왕릉을 모습을 갖추게 된바 있습니다.
온릉을 찾으니 감개가 무량하네요.
60여년전 중학생때 이곳으로 소풍을 와서 릉 뒷편의 산위에 올라 북한산, 도봉산을 바라보던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그후 이 일대가 군사보호지역이란 이유로 비공개로 지정되어 오랫동안 출입이 불가능했지만 2019년에 이르러 개방되었으니 무척 다행스럽네요.
한편 온릉에서 가까운 거리에 부친 신수근의 묘가 있다고 하니 조만간 답사할 계획입니다.
온릉을 답사하며 단경왕후를 위로하고 옛 추억을 떠올려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양주시 장흥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비, 단경왕후 거창신씨의 온릉을 찾았습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온릉 가는 길.
아담한 온릉의 재실.
이게 몇년만인가요?
60년만에 다시 온릉을 찾다니 감개가 무량하네요.
조선 제11대 중종의 비, 단경왕후 거창신씨가 잠들어 있는 온릉.
중종반정때 신수근은 좌의정이었습니다.
신수근은 "매부를 폐하고 사위를 세우는 일을 나는 할수없다" 고 반정에 반대하는 말을 함으로써 반정세력에 죽임을 당하고 누이동생과 딸은 모두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지요.
중종반정으로 부부인에서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역적의 딸이라는 이유로 왕비가 된지 7일만에 쫓겨나고 인왕산 치마바위에 얽힌 전설을 갖게 된 비운의 여성입니다.
신씨는 13살에 진성대군과 혼인했으며 7일만에 폐비될때는 20세의 꽃다운 나이였다고 하네요.
중종은 첫 정인 신씨를 잊지 못해 늘상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을 바라보았으며 신씨는 집 뒤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 궁중에서 입던 분홍색 치마바위를 눈에 띄도록 덮어 놓으며 중종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고 합니다.
단경왕후의 원한이 서려 있는 모습으로 아직도 수라간과 수복방은 복원이 되지 않은 실정.
정자각에 오르는 돌계단.
출입할수 없어 망원으로 당겨본 온릉.
신씨는 1557년(명종 12) 71세에 세상을 떠나 친정묘역인 이곳에 묘를 쓰게 되었으니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처럼 한많은 세월을 산 여성이네요. 흑흑!
온릉은 사릉, 정릉의 예에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고 봉분은 사릉의 크기에 따르게 하여 무척 아담한 모습.
건물은 사라지고 초석, 기단석만 남아있는 수복방터.
온릉의 비각.
조선국 단경왕후온릉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총탄자국으로 어지럽네요.
장릉의 배수시설.
다소 낯선 모습이라 눈여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