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의 유적답사

곤지암과 신립(申砬)장군 묘소 답사

미호강 2012. 5. 7. 18:35

2012.5/7(월) 광주시 실촌면에 있는 곤지암(바위)과 신립장군 묘소를 답사하였습니다.

 

신립장군은 임진왜란(1592) 때  충주 탄금대에서 북상하는 왜군을 맞아 적은 인원의 군사로 맞서다 참패하자 남한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장수입니다.

후일 역사가들은 왜 문경새재에 방어선을 구축하지 않았느냐 혹은 왜 왜군과 용감히 싸우지 못하고 참패했느냐며 그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지요.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게 잘못이 아니라 이미 패주한채 집결된 오합지졸의 군사로는 도저히 왜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것 같았습니다.

 

그는 정녕 비겁한 군인도 아니었고 어리석은 군인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그는 임진왜란 이전, 여진족과 왜군과의 여러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하여 우리 강산을 지킨 용감한 장수로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비록 탄금대 전투에서 패하여 순국했지만 그의 공적은 이해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네요.

 

한편 곤지암에는 신립장군과 관련된 곤지암이라는 바위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사진 설명문으로 대신합니다.

 

* 곤지암에 있는 신립장군 묘소.

봉분 앞에 장명등과 상석, 전면 좌우에는 문인석, 망주석, 동자석들이 갖추어진 큰 규모의 묘소입니다.

 

                                               * 신립장군 묘비.

                                                 후일 조정에서는 영의정에 추증하고 충장(忠壯)의 시호를 내렸다고 합니다.

 

*  남향을 한채 곤지암을 내려다 보고 있는  신립장군 묘소.

 

                * 곤지암 바위에 얽힌 유래를 담은 설명문.

 

* 곤지암 마을에는 실지로 곤지암이라고 하는 두 덩어리의 바위가 존재합니다.

 이 바위가 억울하게 죽은 신립장군에 대한 전설이 서려 있는데 주변에 점포들이 들어서면서 옹색해져서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군요.

 

                                  * 곤지암 바위위에서 크게 자란 400년 넘은 향나무. 

마치 신립장군의 원혼을 풀어 주려는듯 오늘도 우뚝서서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