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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던 선농단(先農壇).강바람의 유적답사 2019. 7. 15. 15:49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274-1, 언덕에는 옛날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에게 알리는 의식을 행하던 선농단(先農壇)이 있습니다.
선농단(先農壇)은 중국에서 농사와 인연이 깊은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신으로 모시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던 제단을 말하는데요.
일찌기 신라,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태조 이래 역대 왕들은 동대문 밖 선농단에 적전(籍田)을 마련하고 경칩후에 제를 지낸뒤 왕이 친히 쟁기를 잡고 밭을 갈아 보임으로써 농사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때 행사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쇠뼈를 고은 국물에 밥을 말아낸것이 오늘의 설렁탕이라고 하는데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음이 변한거지요.
선농단 친경(親耕)은 1909년을 마지막으로 일제에 의해 폐지되고 주변은 점차 개발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선농단 권역은 지금의 제단부터 남쪽에 청계천, 동서로는 정릉천, 성북천사이의 꽤 넓은 지역이었다는데
일제는 우리의 고유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선농단 제단이 있는 언덕을 청량대(淸凉臺)라는 공원으로 조성하는 한편 바로 남쪽에 학교를 짓고 주변을 주택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학교는 일제때 세운 경성여자사범대학을 말하는데 해방후에는 서울대사대로 변경되었다가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이후 학교터는 모두 주택지로 변하고 말았지요.
현재 약 1,200평의 땅에 선농제를 지낸던 사방 4m 정도의 석단이 있고 그 아래로 수령 500여년의 향나무가 한 그루 남아 있습니다.
* 옛날 농사를 소중함을 백성에게 알리는 의식을 행하던 선농단(先農壇) - 사적 제436호.
* 넓었던 터는 모두 개발된채 겨우 사방 4m 정도의 선농단 제단만 남아 있는 모습.
* 선농단의 역사를 말해주는 선농단 향나무 - 천연기념물 제240호.
* 우리나라 향나무중 크기나 나이나 거의 최고수준이며 높이가 약 10m, 수령은 약 500년.
* 선농단터의 지하를 파서 건립한 선농단역사문화관.
* 설렁탕의 유래를 알려주는 설명.
* 순종황제의 친경의식 장면.
선농단과 적전의 드넓은 규모를 알수 있는 장면으로 1909년 최후의 선농제 의식행사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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