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의 유적답사
-
장호원 설성산성(雪城山城)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5. 3. 25. 09:46
장호원에 있는 설성산성(雪城山城)을 탐방하였습니다. 경기도 이천에는 설봉산성과 설성산성이 있는데 둘다 삼국시대에 쌓은 산성으로 서로 남북에서 마주보며 이천의 곡창지대를 지키고 있는데요.이번에 경기옛길, 봉화길을 걸으면서 설성산성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설성산성은 설성산(290m) 정상부와 그 북쪽에 위치한 봉우리 사이에 있는 계곡을 포함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신라가 이천땅에서 성 쌓을 마땅한 곳을 물색할때 설성산에 와보니 이상하게도 돌아가며 띠를 두룬듯 흰눈이 내려 있으므로 눈의 자취를 따라 산성을 쌓고 이름을 설성(雪城)이라 했다고 전합니다.설성산성은 오랜 세월동안 외적침입에 대비, 봉화대로 수호는 물론 산 아래에 있던 음죽현의 재산과 인명을 보호하기 위해 잘 관리되어 왔습니다. 설성산은 산세..
-
천년고찰, 남원 실상사(實相寺) 탐방강바람의 유적답사 2025. 3. 16. 10:13
2025.3/11(화) 천년고찰, 남원 실상사(實相寺)를 탐방하였습니다. 실상사(實相寺)는 신라 구산선문중 처음으로 문을 연 사찰이지요.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증각대사(洪陟 證覺大師, 생몰미상)가 창건하였는데 홍척은 도의(道義)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한 뒤 남원으로 돌아와 이 절을 세우고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한 분입니다.이후 2대조 수철(秀徹, 817~893)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 절이 중창되고 선풍도 크게 떨치게 됩니다.실상사는 정유재란때 소실되어 폐사되다시피 지내오다 숙종 16년(1690) 36동의 건물을 세우는등 크게 중창하였고 순조 21년(1821)에도 중건되었으나 고종 20년(1883)년 방화로 전소되었다가 그 이듬해 10여채의 건물이 중건되어 오르고 이르..
-
중종의 비, 단경왕후 거창신씨의 온릉(溫陵)강바람의 유적답사 2025. 1. 28. 10:14
양주시 장흥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비, 단경왕후 거창신씨의 온릉(사적 제210호)을 답사하였습니다. 단경왕후 거창신씨(1487~1557)는 7일의 왕비로 또 인왕산 치마바위에 얽힌 전설로 유명한 비운의 여성이지요.1499년 진성대군과 혼인해 부부인에 봉해졌으며 1506년 진성대군이 중종으로 즉위하면서 왕비로 책봉된바 있으나단경왕후의 고모가 연산군의 부인이며, 아버지 신수근(愼守勤, 1450~1506)이 반정에 반대해 죽임을 당하자 왕비로 책봉된지 7일만에 폐위되었습니다.단경왕후는 그의 친정 거창신씨의 묘역에 조성되어 폐비신씨지묘(廢妃愼氏之墓)라고 새겨진 표석이 세워져 있었으나 1739(영조 15)년에서야 복위되고 묘소는 온릉으로 봉릉되어 왕릉을 모습을 갖추게 된바 있습니다. 온릉을 찾으니 감개가..
-
홍천 동창마을, 물걸리사지(物傑里寺址) 답사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12. 21. 15:14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에 있는 물걸리사지(物傑里寺址)를 찾았습니다. 깊은 산속의 오지에 있는 물걸리는 영동지방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조선시대 동창(東倉)이 있는 등 온갖 물산이 풍부하여 1세기 전만 해도 면사무소가 있던 번화한 마을이었다고 하는데요.오지이지만 번화하고 내촌천과 뜻밖의 너른 농토가 있어 대찰이 세워진 것으로 이해되지만 절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어 어느 시기에 세운 어떤 절이 있었고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알수없는 그야말로 신비스런 절터이지요.아무리 전란이 많았다고 해도 아무 기록조차 찾을수가 없으니 어찌 이런 일이 --- !다만 통일신라때 홍양사(洪陽寺)가 있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고 하네요. 이 절터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5점의 석조유물과 많은 유규가 ..
-
진주의 상징인 남강 진주성(晉州城) 탐방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11. 30. 08:58
경남 진주시에 위치한 남강 진주성을 찾았습니다. 진주성은 옛부터 바다에 접한채 전라도와 경상도를 방어하는 전략적인 요충지로 인식되어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막는 중요한 기지로 여겨졌으며 조선시대에는 도호부가 설치되었고 경상우병영의 역할을 담당했는데요.남강에 접한 진주성은 현재 성곽의 둘레가 약 1.7km에 달하며 촉석문과 공북문 등 문루를 갖춘 큰 성문이 있고성 안에는 촉석루, 창렬사, 의기사, 북장대, 서장대, 임진왜란계사순의단, 호국사가 있으며 임진왜란을 다룬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있습니다.또한 촉서루 아래 남강변에는 논개가 적장을 끌어안은채 남강물에 몸을 던졌다는 의암(義巖)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9월, 1차 진주성 전투때에는 왜군 25,000여명이 침공해 오자 진주목..
-
거창 가섭암터 마애삼존불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11. 30. 08:57
경남 거창에 있는 가섭암터 마애삼존불을 답사하였습니다. 금원산 깊은 산중에 암자는 사라졌으나 고려때 조성한 마애삼존불(마애여래삼존입상)이 천년 여 세월을 잘 지내며 아직도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는데요.요즘에도 찾기 어려운 깊고 험한 산중에 어찌 천년 전에 삼존불을 조성할수 있었는지 믿어지질 않습니다.처음 맞이하는 문바위는 가섭암의 일주문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단일 바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 하네요.가섭암(迦葉庵)은 조선 후기인 1770년대까지 있었다고 하나 사라진지 오래이며 현재는 작은 건물이 한동 있지만 암자는 아닌것 같고 비어 있는 실정.크고 둥근 바위 틈새로 겨우 난 계단길을 올라서 드디어 동굴 안에서 뵙는 가섭암터 마애삼존불은 실로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장엄함 그 자체~!크고 둥근 바위가 ..
-
영남 안의3동(安義三洞) 중 함양 거연정, 농월정, 거창 수승대를 찾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11. 30. 08:57
영남 안의3동(安義三洞) 중 함양의 거연정, 농월정, 거창 수승대를 찾았습니다. 함양군 안의면은 옛부터 경남의 교통요지로 일제때만해도 거창까지 아우르는 넓고 번창한 지역이었습니다.육십령 너머 덕유산 남쪽의 산과 계곡에는 너른 암반과 기암괴석,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여러 루정으로 인해 정자문화가 발달했는데요.옛 안의면에 있던 안의3동은 현재 안의계곡으로 불리는 화림동(花林洞), 용추계곡으로 불리는 심진동(尋眞洞), 수승대계곡으로 통하는 원학동(猿鶴洞)을 말합니다.행정구역 변경으로 현재 화림동, 심진동은 함양군 안의면에 있으며 원학동은 거창군 위천면에 위치해 있습니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남강의 상류인 금천(남강천)에는 비경을 이루는 화림동계곡이 있고 거연정(居然亭) 일원은 명승 제86호.거연정이 있는 ..
-
남한산성 안 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식수 현장과 송수탑(頌壽塔)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8. 15. 14:55
전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남한산성 사랑은 각별했다고 전합니다. 남한산성에는 이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전나무와 80회 생일을 기념하여 경기도지사가 세운 송수탑 자리가 남아 있는데요.그는 자주 남한산성을 방문했으며 1953.9/6에는 수어장대 안의 무망루 옆에 전나무를 기념식수하기도 하였습니다.전나무 앞에 있는 표지석 앞면에는 "리대통령 각하 행차기념식수"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단기 4286년 9월6일"이라고 새겨져 있으니 1953년 9월6일입니다.6.25 사변이 끝난지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78세의 노구로 방문하셨으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어장대 서편에는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박사의 송수탑(頌壽塔)이 있던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송수탑은 이 대통령의 80회 탄신을 기념..
-
남한산성 남문 안 비석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8. 15. 14:47
남한산성에는 많은 비석들이 있어 주목되는데요.이는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에 수어청(守御廳)을 두었을뿐만 아니라 광주부(廣州府)의 읍치(邑治)까지 있어 유수, 수어사들이 근무했기 때문입니다.남문을 들어서면 길가에 8기, 그 아랫쪽에 30기를 모아둔 것이 보이며 이외에도 산성 안에는 비석들이 여럿 보이는데 조선 후기의 역대 광주유수, 수어사, 부윤, 군수들의 공덕을 기린 비석들이지요.아래쪽에는 원래 19기가 있었는데 행궁 복원시에 11기를 옮겨와 30기를 현재처럼 ㄷ자 형태로 배치한바 있습니다. 비석의 이름은 여럿이어서 백성을 어질게 다스린 공을 기리는 선정비(善政碑),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떠나도 생각하겠다는 거사비(去思碑), 자기네를 아끼고 사랑해줬다는 애휼비(愛恤碑), 이별..
-
조선을 구한 최고의 영웅,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을 만나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7. 26. 11:34
조선을 구한 최고의 영웅, 한음 이덕형 유적지를 찾았습니다.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 아래 사제마을에는 한음이 말년에 지내던 별서터가 있고 강건너에 가까운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에는 한음의 묘와 신도비가 있는데요.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 1561~1613) 선생은 능력과 덕망을 겸비한 조선 중기의 명신으로 왜란을 극복하고 왜란후 민심을 수습했으며 당쟁을 조정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신 난세의 영웅입니다.호(號)를 한음(漢陰)으로 한 것은 광주이씨이므로 한강 북쪽에 있는 한양(漢陽)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한강의 남쪽 땅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1592년 왜군이 조선을 침입하자 한음은 외교관으로서 일본장수를 만나 그들의 잘못을 따져 물었고 협상에 실패하자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 설득하여 파병을 하도록 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