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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 제2코스 호국돈대길을 걷다(2) --- 광성보~덕진진~초지진까지 6km강바람의 둘레길,옛길 걷기 2024. 1. 14. 16:03
강화나들길 제2코스 호국돈대길 (2)편입니다.
(1)편은 출발지인 갑곶돈대부터 광성보 이전까지의 기록이고 (2)편은 광성보부터 초지진까지의 기록입니다.
호국돈대길은 갑곶돈대~초지진까지 17km.
세부코스는 갑곶돈대~용진진~용당돈대~화도돈대~오두돈대~광성보~용두돈대~덕진진~초지진까지 강화외성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강화는 고려시대 이래 해안을 따라 많은 진, 보, 돈대를 쌓아 외세에 대비하였는데 조선 숙종 당시 5개의 진, 7개의 보, 53개의 돈대, 8곳의 포대, 8개의 봉수 등이 있었다고 하며
광성보,.덕진진, 초지진은 강화해협을 따라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요새입니다.
덕진진 북쪽에 있는 사적 제227호 광성보(廣城堡)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가장 규모가 큰 요새로서 용두돈대, 손돌목돈대가 소속되어 있으며 병인양요, 신미양요때 치열한 격전을 치룬 현장이기도 합니다.
신미양요때 어재연장군은 전 수비군을 이끌고 신무기로 무장한 적들과 용감하게 싸웠지만 역부족!
자신과 동생 어재순 그리고 200여명의 군사는 4월23일부터 다음날 까지 48시간의 사투를 벌였으나 모두 전사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들 장병들은 포로가 되느니 최후까지 나라를 위해 몸바치겠다는 결의로 싸우다 전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져 가슴 뭉클하게 하네요.
사적 제226호, 덕진진(德津鎭)은 초지진과 광성보 사이에 위치하여 가장 중요한 요새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 숙종때 축조된 덕진돈대, 남장포대가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병인양요때에는 양헌수장군의 부대가 이 진을 통해 정족산성에 들어가 프랑스군을 섬멸했고, 신미양요때에는 미국함대와 격전을 벌여 큰 피해를 주기도 했습니다.
미군은 당시 "남북전쟁때에도 이와같은 짧은 시간내에 맹렬한 포격을 받아보지 못했다"며 패자의 변을 기록하고 있다고.
사적 제225호, 초지진(草芝鎭)은 당초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인데 가장 남쪽에 있어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사건 등 제국주의 침략때 맨 처음 적과 싸웠던 격전지입니다.
1871년 4월23일, 미국 로저스가 지휘하는 아세아함대가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여 450명의 육전대가 초지진에 삼륙을 감행하여 많은 인명피해와 함께 모든 시설이 파괴된 적이 있었고
운요호사건(1875)때에는 왜에 패함으로써 강압으로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조선은 일본에 예속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지요.
강화나들길 제2코스 호국돈대길을 마무리하려니 우리 국토를 지키기 위해 선조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가슴이 뭉클합니다.
강화나들길 제2코스 호국돈대길은 갑곶돈대~초지진까지 17km.
세부코스는 갑곶돈대~용진진~용당돈대~화도돈대~오두돈대~광성보~용두돈대~덕진진~초지진까지 강화외성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호국돈대길 (2)편은 광성보부터 초지진까지의 기록입니다.
광성보의 안해루와 광성돈대.
광성보는 강화나들길 2-C코스의 출발점.
아침 일찍 출발하여 11km를 걸어왔고 남은 초지진까지는 6km.
광성보(廣城堡)의 안해루(按海樓).
광성보(사적 제227호)는 병자호란 이후 효종 9년(1658) 강화해협 주위에 설치한 12개의 진과 보 가운데 하나로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를 관할.
안해루에서 바라본 강화해협.
광성보는 1871년 미국함대가 침범한 신미양요때 미군과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 어재연 등 모든 군인들이 전사한 비극의 현장입니다.
미국 해병대는 초지진, 덕진진에 이어 광성보까지 상륙하여 점령하며 우리 군사들에게 많은 피해을 준 역사가 있지요.
안해루와 연결되어 있는 원형의 광성돈대.
포좌가 잘 갖추어진 광성돈대.
당시 사용하던 대포, 소포, 불량기를 복원전시중.
솔길을 걸어 오르면,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와 쌍충비각(雙忠碑閣).
쌍충비각에 있는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국 해병과 전투에서 순절한 조선 후기의 무신 어재연(魚在淵), 어재순(魚在淳) 형제를 기리기 위한 순절비.
7기의 묘로 이루어진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1871년 신미양요때 광성보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51명 무명용사들의 무덤.
신미양요때 얼마나 용감하고 처절한 전투를 벌였을지 지금 생각해봐도 가슴이 넘 아프네요.흑흑~!
광성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손돌목돈대.
신미양요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비극의 현장이지요.
미국과 우리나라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투를 벌였다니 지금 시각으로는 믿어지지 않는 일.
조선 숙종 5년(1679) 축조하였다가 외침으로 무너져 있던걸 1977년 복원한 손돌목돈대.
원형으로 제대로 복원된 손돌목돈대.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순절한 우리 선조들에게 늦게나마 명복을 빕니다.
손돌목돈대에서 바라본 강화해협(염하).
강화해협의 상, 하류를 모두 살필수 있는 천혜의 요충지이지요.
밑에서 바라본 손돌목돈대.
난공불락의 요새로 손색없어 보입니다.
손돌목돈대 아래 해안에 있는 용두돈대.
병인양요, 신미양요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던 현장입니다.
용두돈대는 돌출된 절벽위에 있는 요새로 손돌목돈대에 속해 있는 외곽초소겸 포대.
용두돈대에서 바라본 덕진진 방향 모습.
용두돈대 앞에 바라보이는 김포 부래도.
한강물에 떠내려 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강화해협에 있는 유일한 섬이며 현재 군인들이 주둔하여 출입불가 상태.
용두돈대 앞은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 손돌목.
손돌목은 강화 덕진진에서 김포 신안리를 마주 바라보는 좁은 해협으로 슬픈 전설이 전해 집니다.
고려 고종이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피난을 할때, 손돌이란 뱃사공이 왕과 그 일행을 태워서 건너게 되었습니다..
손돌은 안전한 물길을 택해 초지(草芝)의 여울로 배를 몰았는데 마음이 급한 왕은 손돌이 자신을 해치려고 배를 다른 곳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손돌의 목을 베도록 하였는데요.
이때 손돌은 배에 있는 박을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험한 물길을 벗어날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으며
왕은 손돌의 말대로 박을 띄워 강화로 피난할수 있었으니 왕은 손돌의 충성에 감복해 그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 영혼을 위로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건너편 강언덕에 손돌의 묘가 있습니다.
손돌목돈대 아래 해안가에 있는 광성포대.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화력증강을 도모하고자 고종 11년(1874) 용진진,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에 포대를 설치하였다고.
광성포대를 지나면 조용한 숲길을 걷고,
해안제방길을 걷다가 바라본 염하.
염하 여기저기에 암초가 보이고 방금 지나온 광성보의 용두돈대도 보이네요.
잘 정비된 해안길을 걸으며,
망원으로 당겨본 광성보 용두돈대와 손돌목. 김포 부래도.
덕진진에 가까우니 예쁜 마을이 보이네요.
평화스럽기만 한 강화의 이면에는 지워지지 않는 아픈 역사의 질곡이 있으니 가슴이 뭉클~~!!
드디어 덕진진(德津鎭)의 공조루(控潮樓) -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덕진진(사적 제226호)은 조선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충지로 19세기 후반 병인양요, 신미양요때 외세에 맞서 싸운 장소이며 신미양요때에는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에 의해 점령을 당한 역사가 있습니다.
강화해협을 지키던 덕진진의 남장포대.
특히 남장포대는 염하해안에 은밀히 설치되어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지금 보아도 감탄만 나올뿐.
강화 8개 포대중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하며 신미양요때 미국 아세아함대와 격렬한 포격전이 있던 곳.
무기만 우수했으면 격퇴할수 있었지만 아쉽기만. 흑흑!
남장포대 포혈에서 바라본 강화해협.
다시 언덕을 오르면 나타나는 덕진돈대.
덕진진에 속한 2개 돈대중 하나로 광성보와 초지진의 중간에서 강화수로를 지키던 가장 중요한 요새였다고.
장방형 모양의 덕진돈대.
지금보아도 견고하게 잘 축성한 모습으로 신미양요때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했다고.
코너마다 2개씩 포대를 설치한 덕진돈대의 특이한 모습.
덕진돈대의 포혈.
덕진돈대에 있는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 경고비.
조선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설치한 것으로 개화기에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비석입니다.
초지대교가 가까이 보이는 덕진돈대에서 남은 초지진까지는 2.4km.
머나먼 강화나들길 2코스도 어느덧 마무리할때가 되었네요.ㅎㅎ
가파른 숲길을 걸어 내려가면,
난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해안길을 걸으니 앞에 초지항.
초지항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김포 대명포구.
갯벌 오른쪽으로 바라보이는 도착지점인 초지진.
드디어 최종목적지인 초지진 도착~!
초지진(草芝鎭, 사적 제225호)은 1716년(숙종 42) 설치되었으며 강화해협의 초입에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 침략때 가장 먼저 격전을 이루어야만 했던 초지진.
초지진의 잘 생긴 소나무들.
그러나 1870년대 전투중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포탄 흔적이 남아 있기도.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국 해병 450명이 함포의 지원을 받으며 상륙하였고, 1875년에는 일본 운요호와 포격전을 벌이기도 했는데요.
당시 프랑스, 미국, 일본의 우수한 근대무기에 맞서 우리 조선군은 사거리도 짧고 정조준도 잘 되지않는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웠다고.
마치 럭비공처럼 생긴 초지진 내부에는 포각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
현재의 모습은 여러 전투를 거치며 모두 파괴되어 있던걸 1970년대에 복원한것 입니다.
초지진에서 바라본 초지대교.
6시간 여동안 17km를 무사히 걸어 초지진에서 강화나들길 제2코스 호국돈대길를 마칩니다.
초지진 관광안내소에서 2코스 완주스템프 날인완료.
1박을 하며 1, 2코스를 완주하니 체력고갈에 기진맥진 그러나 전 코스 완주의지는 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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