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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 예당호와 대흥동헌 등 답사강바람의 국내여행 2019. 7. 3. 12:34
2019.6/30(일)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위치한 예당호와 대흥동헌 등을 답사하였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며 개인적으로 어릴적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동안의 무관심을 자책하기도 했는데요.
왜냐하면 예산 대흥이 어머님의 외가가 있기도 하고 고향에서 가까운 거리인데도 어릴때를 빼놓고는 찾은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예당호출렁다리를 구경갔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대흥은 참으로 역사가 깊고 유서 깊은 동네임을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일찌기 대흥(大興)은 고려시대 이래 대흥군, 대흥현에서 다시 대흥군이 되었다가 일제때 예산군 대흥면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지요.
조선시대에는 대흥읍성까지 있어 이 일대의 행정중심지로 번화하였으나 일제때 장항선 예산역이 생기고 해방후 예당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점차 마을이 쇠퇴해 진것 같습니다.
문화유적으로는 대흥동헌, 대흥향교, 의좋은형제비, 태실, 임존성 등 무척 다채로운데 특히 임존성(任存城)은 과거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지요.
특히 과거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의좋은형제 이야기도 이곳에서 탄생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최근 대흥 지역은 역사와 전통이 깊고 자연생태가 우수하여 슬로우시티로 지정, 운영하고 있지요.
다시 시간을 내어 봉수산에 올라 임존성을 살펴보고 슬로우시티의 느린꼬부랑길도 두루두루 걸으며 세세하게 살피고 싶네요.
아무튼 이번 예산 대흥여행은 많은것을 생각케 하고 일깨워 준 한편의 드라마같다는 생각입니다.
* 오랫만에 고향에서 가까운 충남 예산을 찾았습니다.
먼저 방문한 곳은 1964년에 준공된 예당저수지.
* 예당호는 예산, 당진 일대에 논물을 공급하는 국내 최대의 저수지로 유명했었는데
요즘 예당호는 출렁다리 하나로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지요.
* 개통 85일만에 150만명이나 방문하였답니다. ㅎㅎ
* 국내 최대의 저수지에, 최장의 출렁다리이니 조용하던 예산땅이 이 출렁다리 하나로 떠들썩 하지만,
* 50여년전 저수지로 수몰되기 전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항상 궁금증이 많은게 탈이라면 탈!!
* 출렁다리 답사후 호숫가를 달려 대흥면 지역을 찾았습니다.
* 역사 깊은 대흥땅에 들어서니 의형제 공원??
의형제공원의 의미는 곧이어 풀리며 역사인식이 부족함을 자책하게 됩니다.ㅎㅎ
* 공원 앞 길가에 늘어선 선정비를 살펴보니 대흥이 얼마나 역사 깊은 고장인지 알수 있더군요.
선정비들은 예당저수지로 수몰될때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 규모가 상당히 큰 선정비가 보여 살펴보니 1660년에 건립된 영의정 김육의 영세불망비인데요.
김육(金堉)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대동법 시행에 운명을 거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 의형제공원은 나서니 건너편에 대흥초등학교.
* 정갈하고 예쁜 모습을 하고 있는 대흥초교도 역사가 꽤 깊어 보입니다.
* 그런데 저 앞쪽으로 뻗은 아름다운 숲길이 사람을 이끄네요.
* 대흥슬로시티 안내판.
느린꼬부랑길(옛 이야깃길, 느림길, 사랑길)을 조성하여 느린 걸음으로 소박한 삶과 잔연,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해 놓았네요.
* 느린꼬부랑길을 시간상 조금만 걸어보기로.
* 예산을 빛낸 "의좋은 형제" 조형물.
알고보니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볏가리를 서로 몰래 나누던 의좋은 형제가 이곳 대흥에 살았더군요.
* 이성만형제 효제비(李成萬兄弟 孝悌碑)
형은 아우의 볏단에 아우는 형의 볏단에 밤중에 벼를 서로 나르다가 만나는 내용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주인공이라네요.
* 1497년(연산군 3년) 후세 사람들의 모범이 되게 하기 위해 조정에서 세운 비석(높이 142cm).
저수지 수몰지역에서 발견되어 1978년 대흥면 동서리 106-2 으로 옮겨온 효제비.
* 안내문에 의하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흥호장 이성만(李成萬), 이순(李順) 형제가 모두 지극한 효자로서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성만은 어머니의 묘소를 지키고 순은 아버지의 묘소를 지켰다.
3년의 복제를 마치고도 아침에는 형이 아우집으로 가고 저녁에는 아우가 형의 집을 찾았으며 한가지 음식이 생겨도 서로 만나지 않으면 먹지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하고 봄, 가을에는 떡을 하여 부모님께 드리고 기쁘게 친척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이에 조정에서는 연산군 3년(1497년) 가방교 옆에 이성만 형제의 갸륵한 행실에 대하여 왕이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자자손손에게 영원히 모범되게 하라는 173자를 기록한 효제비를 세웠는데 1964년 예당저수지를 완공하면서 수몰되었다가 1978년 극심한 가뭄으로 저수지 물이빠지면서 우연히 발견됨으로써 의좋은 형제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 이 일대는 대흥읍성(大興邑城)과 대흥동헌(大興東軒)이 있던 옛날 대흥의 행정중심지역.
* 대흥동헌의 정문격인 아문(衙門).
이 일대는 전면에 드넓은 농토와 무한천의 풍부한 물길이 있고 배후에는 임존성이 위치한 봉수산(사진에 보이는 산) 이 있어 예전부터 대흥읍성이 위치했던 행정,군사의 중심지였던것 같네요.
* 대흥동헌의 정문인 "임성아문(任城衙門)"
'임성'은 통일신라때 대흥지역을 부르던 명칭이라고 하는데 임존성(任存城)도 같은 말 같습니다.
* 원형이 남아 있는 대흥동헌(大興東軒) 모습.
역대 군수들이 집무를 보던 정청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원형이 잘 남아 있네요.
* 대흥동헌의 정청인 대청(大聽).
옛 자료에 의하면 객사(客舍)에는 정청 3칸, 동대청 12칸, 은사정 14칸, 서헌방 16칸, 하마대 4칸이 있었고
아사(衙舍)에는 구동헌 9칸, 신동헌 16칸, 남상방 4칸, 북상방 5칸, 초당 5칸, 행랑 7칸의 제법 큰 규모로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동헌의 정청과 아문만 남아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면사무소, 공원 등도 예전에는 동헌의 일부였던것 같습니다.
* 동헌 옆에 있는 이 건물은 그럴듯하나 드라마셋트장.
예전 농촌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에서 종가집으로 촬영된 곳이라고.
* 동헌 뒷마당에는 척화비, 화령옹주 태실이 있기도.
* 실체가 잘 남아있는 흥선대원군 척화비(斥和碑).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이후 흥선대원군이 척화교서를 내려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이지요.
* 화령옹주 태실과 태실비.
예산군 광시면 월송리에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은 놓았는데 영조의 따님인 화령옹주(1752~1821)의 태실로 추정됩니다.
* 부근에 천주교성지로 조성한 대흥옥(大興獄).
* 대흥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형장에서 참수된 순교자들을 위해 성지로 만들어 놓은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조선말 영의정 조두순(趙斗淳)의 집으로 추정되는 고택.
* 지금은 쇠락하여 붕괴될 위험에 처했지만 당초 건평 150평에 90여칸의 집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40칸만 남은 실정.
*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ㅁ자형 팔각지붕의 양반집으로 무척 고풍스러웠으나 지금은 다소 변형된 상태.
* 건물은 쇠락하였지만 담장만큼은 여전히 건실하여 당시의 권세를 보는듯.
* 농촌에 오니 반겨주는 호두.
오늘은 일행이 있어 주마간산격으로 둘러 보았지만 가을에 다시 시간을 내어 임존성을 살펴보고 슬로우시티의 느린꼬부랑길도 두루두루 걸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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