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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당성(唐城), 마산포(馬山浦)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0. 4. 11. 21:46
2020.3.28(토) 화성 당성(唐城), 마산포(馬山浦)를 답사하였습니다.
당성(唐城)은 남양반도의 서신, 송산, 마도면의 경계가 교차되는 구봉산(165m)에 쌓은 성곽으로
처음 삼국시대에 쌓았으며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던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정상부를 둘러 쌓은 테뫼식 1차 산성과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의 2차 산성으로 이루어졌으며,1차는 약 800m, 차는 약 1200m에 이릅니다.
이 지역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에 속했는데 한때 고구려가 차지하면서 당성군이라 하였으며, 이후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한후 당과 직접적인 교류를 하면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적이 있지요.
남북국시대(통일신라, 발해)에도 중국과 통하는 길목역할을 한 곳으로 많은 사신과 승려가 이용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당성 앞 남양반도의 끝에는 마산포(馬山浦)라는 큰 포구가 있었습니다.
마산포는 예전부터 중국과 뱃길을 이어주던 큰 포구여서 당성과 함께 매우 중요시 되어온 곳으로 제물포가 개항하기 전에는 가장 번성했던 포구였다고.
또한 마산포는 1882년 7월,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위안스카이가 청군을 이끌고 상륙한 곳이며 흥선대원군이 이곳에서 중국 천진으로 납치되어 간 역사가 있을 정도로 무척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마산포는 중국과의 뱃길도 끊어지고 교통도 불편하여 점차 쇠퇴해 오다가 1990년대 중반 시화호간척사업으로 메꾸어지면서 포구도 명성도 사라지고
근래 간척지의 쌀농사와 구릉지에서 재배되는 포도로 부각되고 있는 중입니다.
오랜기간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서해안에서 매우 큰 포구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 아쉬움이 큽니다.
* 그동안 말로만 들어오던 화성 당성을 감격리에 답사하게 되었습니다.
* 서해안을 지키기 위해 낮으막한 야산에 쌓은 화성 당성은 역사가 삼국시대로 올라 가더군요.
* 산아래 서해안에 중국으로 뱃길이 통하던 마산포가 있었으니 이곳의 중요성은 대단했나 봅니다.
* 산성의 정문격인 동문터로 통하는 진입로.
* 우측으로 예전의 무너진 성곽과 복원한 성곽이 대조를 이룬 모습.
* 계단을 통해 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돌기로.
* 산성을 오르며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화성 송산면소재지.
사강시장이 있는 옛부터 수원으로 통하는 물산 집산지였지요.
* 낮으막한 산등성이에 쌓은 당성.
사진은 후대에 추가로 쌓은 2차 산성으로 약 1,200m 규모.
* 당성을 오르며 남쪽을 바라보니 멀리 서해안의 아산만까지 한눈에 들어오네요.
* 당성의 서문터 부근 모습.
이곳이 삼국시대때 테뫼식으로 처음 쌓은 1차 산성이었다고 하나 2차 산성을 추가로 쌓으면서 변형된 모습.
* 네모난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여 있는걸 보면 근래에 보수한 흔적으로 보입니다.
* 오호, 당성에서 바라본 서해안 풍경!
비록 산은 낮지만 조망이 뛰어나니 산성으로의 역할은 탁월해 보이네요.
* 앞쪽으로 서해와 대부도, 탄도 등 섬들과 넓은 농경지가 잘 보입니다.
그러나 시화호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메워져 옛 모습과 현재는 180도 달라졌음을 간과해선 않되겠지요.
* 저 앞쪽이 칠곡리인데 예전에는 모두 바다와 갯벌이었지만 근래에 간척사업으로 농경지로 변한 모습입니다.
그 너머로 보이는 마산수로를 통해 마산포가 예전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통하던 가장 번성하던 포구였다는데 답사를 해봐야겠네요.
* 북쪽을 바라본 모습.
사강과 화성, 수원지역이 모두 조망됩니다.
* 산성에서 발견된 많은 기와파편들.
예전에 장대, 창고 등 여러채의 목조건물이 있었던 흔적이네요.
* 당성에서 가장 높아 조망이 탁트인 곳으로 옛날 망해루(望海樓)가 있던 곳으로 추정.
* 당성의 북문터.
* 당성을 한바퀴 돌아보니 2차 성은 규모는 아담하지만 그래도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 산성이네요.
* 성 안에서 우물터, 건물터 등이 발견되었다고.
* 당성 -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 31.
마산포 -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 888.
* 당성을 내려와 봄꽃이 만발한 마산포를 찾아 갑니다.
* 마산포가 있던 곳은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 남양반도의 끝부분이지요.
고포리에서 바라본 드넓은 시화호간척지.
* 고포리 끝에 도착하니 마을이 나타나면서,
* 도로변에 빈집이 보이는 등 무척 을씨년스럽네요.
* 바닷가에 가까우니 오래된 나무도 보이는 등 옛날 포구터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던 마산포는 당성과 함께 중국과 교류의 핵심역할을 하던 항구였고, 수많은 어선과 화물선이 드나들던 포구였는데 화려하던 옛 영화는 모두 어디로 가버렸나요!
* 포구로 내려가던 길 옆에는 폐가로 남은 옛 건물들이 보이네요.
이 길을 걸어 1882년 임오군란때 흥선대원군이 마산포에서 배를 타고 청나라로 납치되던 사건도 있었지요.
* 앞에 보이는 언덕 아래에 마산포가 있었다고 하는데 갯벌이 모두 매립되어 번성하던 옛 모습을 추측하기가 어렵습니다.
* 마침 길가에서 일하시던 최봉주(83) 할아버지를 만나 마산포의 옛 모습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옛날의 마산포는 인천항에 버금갈 정도로 번성한 포구였다며 마산수로를 통해 중국과 뱃길이 이어졌다고 하시네요.
또한 인천항으로 가는 배가 하루에 2번씩 마산포에 들렸을 정도로 사람 통행이 많았으며 20여년전 시화호 간척사업으로 포구가 메꾸어지며 모든게 사라졌다고 하시네요.
주민들은 굴, 바지락, 맛, 낙지 등을 채취하여 사강시장, 수원시장에 내다 팔며 어렵지않게 살았다고 하며 그때를 회상하십니다."
* 25년전인 1990년대 중반에 시화호 사업으로 마산포 앞 갯벌이 모두 매립되어 농경지로 변한 모습.
그전만 해도 마산포 앞 갯벌에는 해산물이 풍부해서 주민들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는데 이 모두 옛 얘기가 되었네요.
* 마산포 앞에는 '어섬(어도)'라는 섬이 있는데 어섬으로 가는 길.
* 25년전의 간척사업으로 지금은 육지로 변한 어섬(오른편이 어섬).
* 어섬에 들어가면서 바라본 왼쪽은 어섬, 오른쪽은 형도.
어섬, 형도, 우음도 등이 시화호간척사업으로 모두 육지가 되어버렸지요.
* 어섬은 현재 경비행기, 행글라이더 등 각종 레포츠 메카로 유명하지요.
* 수백만평의 바다가 메꾸어져 지금은 좁은 수로로 변한 '마산수로'.
북쪽은 시화호, 남쪽은 전곡항, 탄도항으로 연결됩니다.
* 마산수로, 오른쪽의 터미섬 너머로 멀리 월곶신도시가 보이네요.
* 탄도항에서 바라본 마산수로와 형도, 오른편의 옛 마산포구.
* 시화호간척사업으로 남양반도 부근의 바다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네요.
그래서 마산포의 역사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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