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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산 독재동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바위글씨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0. 5. 5. 12:08
2020.4/28(수) 공릉천 답사길에 노고산 독재동(篤才洞)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바위글씨까지 찾아 보았습니다.
바위글씨가 있는 곳은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산 63-1, 노고산 북쪽 계곡인 독재동.
현장의 문화재안내문에 의하면
『노고산 독재동 계곡의 바위에는 夢齋(몽재), 萬懿窩(만의와), 可濯泉(가탁천), 미수선생장구지소(眉叟先生杖屨之所) 등 여러 명문이 흩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몽재라고 쓰여진 글자의 왼편 아래에 추사라는 명문이 있어 김정희의 필적임을 시사하고 있다.
활달하고 거침없는 필체가 호방한 추사체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어서 추사의 필적을 누군가 이곳 바위에다 새겼을 가능성이 짙다.
따라서 추사체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또한 허목, 이시선 등의 글씨도 남아 있어 조선 서예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추사의 글씨로 추정된다는 夢齋(몽재).
夢齋(몽재)는 글자 그대로는 '꿈꾸는 집'이라는 의미이나 내면적으로는 '한낮 몽상도 헤아려 보면 정당성이 확보된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미수선생장구지소(眉叟先生杖屨之所)는 조선 유학자인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이 1658년 다녀가며 남긴 글씨로서 미수 선생이 지팡이를 들고 짚신을 신은채 방문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해가 않되는 점이 있네요.
지금도 교통이 불편하고 인적이 드물어 찾는 이도 거의 없는 실정인데 어떻게 먼 옛날에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바위글씨를 남겼는지 그게 의문입니다.
부근의 삼각산이나 도봉산보다 경관이 뛰어난 것도 더욱 아닌데.ㅎㅎ
그렇다면 산아래 삼하리에 사는 선비들이 바위글씨를 새겨놓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었는지~~??
* 노고산 추사 김정희 바위글씨를 보기 위해 먼저 찾아야 할 곳은 장흥 삼하리의 전원일기 마을.
* 옛집들이 남아 있는 삼하리는 유서깊은 마을로서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
* 35년전 쯤 MBC 전원일기의 촬영장소가 되었던 삼하리 마을.
전원일기의 김회장(최불암 선생) 집은 셋트장이었고 이곳에서는 농촌풍경을 촬영했다고.
* 바위글씨는 전원일기 마을에서 노고산을 바라볼때 왼편(북쪽)에 위치한 능선을 넘어야.
* 그림처럼 전원일기 마을에서 왼편의 산길을 넘어야 독재동 바위글씨를 볼수 있지요.
* 전원일기 마을에서 북쪽의 능선을 따라 노고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
* 등산로에서 바라본 전원일기 마을.
촬영 당시의 옛집들은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대부분 새 집으로 바뀐 상태.
* 등산로 양편에 있는 석조물은 마을제단이라고.
* 이정표가 보일 즈음, 곧장 가면 노고산 정상이고 바위글씨는 왼편으로!
* 삼하리에서 500m를 걸어 왔고, 바위글씨까지는 300m, 노고산 정상은 1.9km.
* 독재동 계곡을 향해 서서히 내려가면,
* 제일 먼저 길 우측에 보이는 바위글씨.
* 입구임을 알리는 篤才洞(독재동) 바위글씨.
* 드디어 우측에 큰 바위와 안내판이 있는 독재동 계곡에 도착!
* 두꺼비 입처럼 생긴 큰 바위 아래윗면에는 글씨가 가득!
* 마침 나물캐러 오신 여성 2분이 바위글씨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시네요.
인적 드문 산속에서 카메라 든채 바위글씨를 찾는 사람을 보니 반가웠나 봅니다.ㅎㅎ
* 바위면에 가득히 새겨진 글씨들.
시대를 달리 하며 새겨 넣은 글씨들이 요란하게 얽혀있는 모습입니다.
* 옛날 시인묵객들이 자주 찾았던 독재동 계곡 풍경.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을텐데 계곡이 잦은 수해로 인해 경관이 많이 훼손되고 지형도 많이 변형된것으로 생각되네요.
* 계곡 물가에서 바라본 바위글씨가 새겨진 바위들.
*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로 추정된다는 夢齋(몽재).
행서체로 쓴 힘찬 그의 필력이 그대로 전해지는듯 합니다.
* 夢齋(몽재)는 글자 그대로는 '꿈꾸는 집'이라는 의미이나 내면적으로는 '한낮 몽상도 헤아려 보면 정당성이 확보된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오늘 만난 여성들의 전언에 따르면 수해로 인해 바위가 얼마정도 이동되거나 기울어진 것으로 생각된다네요.
* 계곡에 기울어진채 있는 萬懿窩(만의와) 글씨.
* 萬懿窩(만의와) 글씨는 쓴 사람 미상.
* 조선 유학자인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이 1658년 다녀가며 남긴 글씨.
큰 홍수가 나면 떠내려갈 정도의 크기이니 원래의 위치인지 의심스럽네요.
* 미수선생장구지소(眉叟先生杖屨之所).
미수 선생이 지팡이를 들고 짚신을 신은채 방문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 독재동 암각문은 글씨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뚜렸하지도 않아 일반인의 눈으로는 헤아리기 어렵거니와
게다가 암각문을 볼수 있는 전문적인 식견도 부족하니 그냥 답사하는 그 자체로 만족하려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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