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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 DMZ생태평화공원을 찾아 용양보, 암정교를 답사하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2. 2. 21. 07:28
김화(金化) DMZ생태평화공원을 찾았습니다.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북쪽의 읍내리, 암정리, 용양리 일대의 민통선 지역은 6.25 사변후 70년 가까운 세월동안 민간인에게는 전혀 개방되지 않았던 최전방 지역.
근래 국방부, 환경부, 철원군이 공동협약을 맺어 전쟁, 평화, 생태가 공존된 DMZ의 상징적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DMZ생태평화공원을 조성에게 일반인에 개방하게 되었는데요.
이제는 일반인도 안내를 받아 민통선 안의 화강(남대천)과 용양보, 암정교 등을 답사할수 있게 되었으니 모든게 꿈만 같고 개인적으로 일생의 큰 소원을 푼 느낌입니다.
현재 김화는 철원군 김화읍에 속하지만 6.25 사변전만 해도 김화군(金化郡)이었지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김화군은 유화철 생산지로 유명했고 읍내리에는 금강산전철이 지나며 김화역과 김화군청이 있었고 국도 제5호선과 43호선이 교차하여 교통도 매우 편리하여 사람이 많이 살았는데 당시 번성하던 김화읍에는 1,2000명, 김화군의 전체 인구는 92,0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국도 제5호선, 43호선이 교차하던 읍내삼거리가 그 당시 김화의 중심지였지요.
해방이 되면서 38선 이북이던 김화는 북한치하가 되어 한때 금화군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전쟁후 다시 수복된 역사가 있는데
옛날과 비교하면 김화 전 지역의 2/3는 북한에, 1/3만 우리쪽에 남았다니 아쉬움이 크네요.
6.25사변때 철의 삼각지가 되어 치열한 전투와 폭격으로 폐허가 된 김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부분 지역은 비무장지대 혹은 민통선 지역에 속하게 됩니다.
김화만큼 전쟁의 아픔이 큰 곳도 없어 보이는데요.
전쟁이 나면서 폭격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도시는 폐허가 되고 땅은 남북으로 갈라져 분단되었으니 하는 말이지요.
우리에게 겨우 남은 좁은 김화땅도 대부분 민통선이나 비무장지대(DMZ)에 속해 사람도 살수 없었는데, 철원에 신철원이 있다면 현재의 와수리, 학사리는 전쟁후 새로 생긴 신김화(新金化)라고 봐야 겠지요.
정부는 1970년대에 사람이 살지않던 철원 민통선 안에 14개 민북마을을 조성하여 민간인들을 이주시켰습니다.
민통선 지역이던 김화 생창리도 이때 재건촌을 건립함으로써 비로서 전쟁이 끝난지 17년이나 지나 재향군인 100세대를 입주시켜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하였지요.
근래 민통선이 북상하면서 생창리가 민통선 지역에서 해제된 이래 민간인 출입이 자유로워지면서 DMZ생태평화공원이 조성되었으니 무척 고무적입니다.
그렇게 어둡던 김화의 역사가 최근 끊임없이 약진하며 흘러가니 생동감마져 느껴지네요.
용양보, 암정교를 보면서 조속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 우리 국토를 걸어 다닐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정말 오랜만에 김화를 찾아 갑니다.
철원 동송보다도 더 전방 느낌이 나는 최전방중의 최전방이지요.
김화읍 생창리에 도착하니 화강(남대천) 너머로 보이는 계웅산 능선.
앞에 보이는 계웅산 능선으로 남방한계선이 지나니 그곳이 바로 비무장지대(DMZ).
망원으로 당겨본 생창리 마을 너머로 보이는 비무장지대.
사진의 정가운데 약간 뒤에 있는 산이 북한의 598고지이니 북한에서 24시간 김화 일대를 망원경으로 살피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외견상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가장 예민하고 위험한 곳으로 최전방의 긴장된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네요.
북한의 오성산에서 발원하여 비무장지대를 거쳐 남한의 김화로 흘러오는 화강!
좌측의 계웅산, 우측의 승리전망대가 있는 천불산 사이 협곡으로 화강(남대천)이 흘러 오지요.
오늘 탐방코스가 계웅산과 천불산 사이의 화강변으로 용양보와 암정교 등을 답사하게 됩니다.
15년만에 다시 찾은 김화읍 생창리.
철원 지역은 8.15 해방 이후 북한지역에 속했다가 6.25 전쟁 이후 수복된 역사가 있지요.
15년 전만해도 민통선 안 마을이라 엄격히 출입이 제한된 지역이었는데 당시 어렵게 허락을 받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언제부터인지 민통선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민통선에서 해제되어 지금은 통행과 방문이 자유롭습니다.
민북마을로 탄생했던 김화읍 생창리.
마을 북쪽으로 일제때에 금강산전철이 지나고 김화역이 있었으며 군청까지 있었던 곳인데
6.25 전쟁중에 철의 삼각지에 속하여 치열한 전투와 끊임없는 포격으로 도시 전체가 전부 사라진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폐허의 땅에 50여년 전인 1970년에 조성한 14개 민북마을(민통선 북쪽에 있는 마을)중 하나가 되어 사람이 살게 되었는데요.
지금은 민북마을에서 대부분 해제되어 이길리, 정연리, 유곡리, 마현리 등 4개 마을만 남았다고 합니다.
2011년에 세운 생창리입주기념비.
1970년, 민통선 지역이던 김화 생창리에 재건촌을 건립하여 재향군인 100세대를 입주시켜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하였지요.
지뢰, 불발탄의 위험을 무릎쓴채 피땀을 흘려가며 폐허가 된 땅을 옥토로 일구어 낸 입주민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민통선 안의 DMZ생태평화공원을 답사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생창리에 있는 방문자센터.
이미 방문 전날에 전화로 신청을 해놓은 상태.
김화에 DMZ생태평화공원이 있다는 사실은 며칠전 철원 두루미 탐조때 우연히 팜프렛을 보고 알게 되었지요.
몇년전 부터 자유로운 방문이 가능해졌음을 왜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는지 무릎을 치며 탄식.ㅎㅎ
오늘 신청한 제2코스는 화강 용양보 탐방로.
용양보까지는 안내를 받아 자차로 이동하고, 그 이후 탐방은 걸어서 화강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약 2시간 소요..
오늘 답사하는 용양보 습지는 최고의 관심거리~~!!
잠시 '사라진 마을, 김화이야기관' 방문.
사라진 김화의 역사를 말해주는 시설로 아주 소중한 자료를 간직하고 있더군요.
8.15 세데, 6.25 세대가 대부분 돌아가시어 아픈 역사를 전해줄 사람이 없는 시점에 즈음하여 김화이야기관 개관은 자못 의미가 큰 일로 생각됩니다.
김화의 옛 지도.
읍내리, 생창리, 암정리 일대에 김화역, 군청, 읍사무소, 경찰서, 세무서, 소학교 등 주요건물과 상점, 민가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이네요.
김화역 앞을 지나는 도로가 현재의 국도제5호선으로 용양보, 암정교와 연결되어 있으니 오늘 자차로 오가는 도로가 되겠네요.
6.25 사변때 모든게 사라진채 김화의 중심지였던 생창리 북쪽의 읍내리는 아직 민통선 지역으로 남아 사람도 살수 없고 모두 농경지로 변한 상태.
당시 번성하던 읍내리의 김화역 앞 풍경.
1931년에 완공된 금강산전철은 철원역에서 출발해 김화역을 거쳐 내금강역까지 가는 총연장 116.6km.
이 가운데 철원, 김화 구간 28.8km는 1924년 먼저 개통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가까운 창도지역 유화철을 반출할 목적으로 건설하였는데 후에 내금강까지 연장하면서 금강산 관광객 수송이 주가 되었다고.
당시 철원에서 내금강까지는 4시간 반이 걸렸으며 매일 8회 운행하였고 요금은 쌀 한 가마값인 7원 56전에 이를 정도로 비쌌다고.
방문자센터에서 홍보영상을 시청하고 극진한 방문환영까지 받은후,
안내 차량을 따라 국도 제43호선을 따라 민통선 지역으로 출발~~!!
DMZ생태평화공원 방문은 10:00, 14:00, 하루 2차례 실시하며
제1코스는 성재산 일대를 걷는 십자탑 탐방, 제2코스는 화강 용양보 탐방이지만 우리는 제2코스를 선택.
도로 양편은 아직도 지뢰지대.
옛날 묻었던 지뢰인데 민통선에서 해제되었지만 지뢰지대는 아직 그대로.
전방의 읍내삼거리에 민통선 검문소가 나타나며 소정의 절차를 밟은후 민통선 안으로 진입.
예전에 읍내삼거리는 국도 제5호선과 43호선이 교차하는 교통요지였습니다.
제5호선은 춘천, 화천, 김화, 철원, 평강으로 이어지는 도로였고 국도 제43호는 김화, 포천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말합니다.
삼거리가 있는 읍내리에서 곧장 북쪽으로 가면 배재고개를 넘어 유곡리, 정연리로 통하고 우측으로 가면 용양보, 암정교가 있는 용양리, 암정리로 가게 되지요.
읍내삼거리를 지나 국도 제5호선에서 바라본 민통선 안의 옛 읍내리.
예전에는 김화역과 군청, 주요 건물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었지만 6.25 사변때 폐화가 된후 농경지로 변한 모습.
민통선 안이라 사람은 살수 없지만 출입허가를 받아 농사는 지을수 있다고.
읍내삼거리 동쪽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김화역터.
그때를 회상해 보면 철원역을 출발한 금강산전철은 정연역을 지나 한탄강을 건너고 배재고개를 힘겹게 넘어 경사길을 따라 이곳 김화역으로 달려 왔겠지요.
김화역에서 잠시 숨을 고른 전철은 커브를 급하게 돌아 화강을 따라 광삼역으로 해서 내금강역까지 달렸는데요.
그때 일생일대의 꿈인 금강산 구경을 하려고 전철를 타고 김화 들판을 지나갔을 순박한 민초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앞에 보이는 높은 산은 난공불락의 북한 오성산(1,061m).
산 전체가 요새화되어 6.25 사변때 북진중에도 오성산은 점령을 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옛날 금강산전철의 철길과 나란히 달렸을 용양보로 가는 좁은 도로.
오호, 화강 상류에 있는 용양늪~~!!
용양늪 이런 모습이었다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북한 금성면 어천리에서 발원한 화강은 북한땅을 흐르다가 우리 땅으로 오는 총 길이 43.6km인데 북한에서 20.1km를 흐르고 남한에서는 23.5km를 흐르는데 철원 도창리에서 한탄강에 합류하지요.
계웅산(603m)과 천불산(684m) 사이의 협곡에 있는 용양보는 1970년,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화강에 만든 저수지이며 금강산전철의 철교교각을 이용하여 보를 조성하였네요.
몇년전만해도 비무장지대(DMZ)여서 민간인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으나 근래 민통선 지역으로 바뀌면서 출입이 허용되어 답사가 가능해 졌으니 꿈같은 얘기네요.ㅎㅎ
특히 화강 최상류의 용양보습지는 이제는 보기 어려운 자연하천에 발달한 습지로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갖가지 동식물의 낙원이자 수생식물의 보고.
휴전이후 비무장지대로 남아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는 습지가 된 이래 왕버들 군락을 이루어 두루미, 고니, 가마우지 등 다양한 철새가 찾아 옵니다.
중앙에 파손된채 늘어진 잔해는 순찰차 오가던 병사들이 이용하던 출렁다리.
북진문 통문을 통해 화강 상류로 조금 더 갈수 있는 길이 있지만 현재는 통문이 굳게 닫힌채 출입이 않되는 실정.ㅎㅎ
남대천 물길을 막은 용양보는 옛 금강산전철의 용양리철교에 축조된 상태.
철교를 이용하여 보를 만든 희귀한 사례네요.
이곳 화강 상류에 금강산 전철의 용양리철교가 남아 있었다니 매우 놀라운 일.
레일이 깔려 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철교를 보노라니 가슴 한켠이 찡합니다.
금강산전철의 용양리철교 교각에 의지하여 용양보를 만든 모습.
용양보 이전의 화강 풍경을 그려 봅니다.
김화역을 출발한 전철은 남대천 위의 철교를 지나 광삼역으로 달려 갔지요.
화강의 수려한 경관을 즐기며 금강산으로 가던 민초들의 들뜬 마음을 읽는것 같습니다.ㅎㅎ
이젠 화강을 따라 민통선 지역을 걸으며 탐방할 차례.
탐방하며 걷는 거리는 약 2km 정도.
옛 남방한계선 표지.
민통선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남방한계선도 따라 북상하여 지금은 민통선 지역으로 바뀐 상태.
화강에서 바라본 금강산전철의 용양리철교.
언제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 우리 국토를 걸어 다닐수 있을지 철교를 보노라니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네요.
민통선 안의 화강(남대천) 풍경.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화강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일제때 부터 남대천으로 불리어 오다가 2009년 부터 원래의 화강(花江)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고 하지만 아직도 남대천으로 불리우는 안타까운 실정.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잘 보존된 민통선 안의 화강.
제방에 서있는 헬기 월경방지 표지판.
호젓한 화강제방을 따라 걸으려니,
드넓은 김화평야와 남쪽의 대성산.
보기 어렵다는 이 식물은 흰꽃이 피는 사위질빵.
꽃말은 비웃음이라고 하는데 어혈, 중풍 등에 좋다고.
화강합수부에 있는 두루미쉼터.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두루미, 재두루미가 많이 찾는다는 설명.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애쓰시는 이*숙 인솔자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화강, 마현천 합수부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려니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어안이 벙벙.ㅎㅎ
오호, 대성산 방향의 마현리에서 흘러드는 마현천.
화강에 합류하는 지류로서 깨끗한 1급수를 자랑하지요.
마치 어릴적에 먹어도 될 정도로 맑은 고향의 하천을 보는것 같아 흐뭇합니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 깨끗한 모래사장까지 펼쳐진 화강, 마현천 합수부.
오호, 사진으로만 보던 파손된 암정교~~!!
15년 전에 생창리를 어렵게 방문하여 암정교를 보려 했지만 군인들의 불허로 실패한 적이 있었는데 고대하던 암정교를 오늘 드디어 보게 되었네요.ㅎㅎ
다리 기둥에 새겨진 암정교(岩井橋) 글자.
남쪽에서 바라본 암정교.
1917년 김화군 암정리와 용양리 경계에 건설된 철원(김화)지역 최초의 근대식 교량으로 김화군에서 화천, 춘천으로 가는 아주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암정교는 6.25 사변때 폭격으로 파손되어 지금은 사용 불가상태이지만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여실히 볼수 있는 역사적인 현장.
70년 가까운 세월을 만신창이가 된채로 버텨온 암정교가 참으로 대견하네요.
암정교는 위험해서 건널수 없으니 하류쪽에 있는 새로 만든 국도 제5호선의 신.암정교에서 화강을 건너기로.
신.암정교에서 바라본 생창리 방향 화강(남대천).
신.암정교에서 바라본 암정교.
예전에는 김화의 상징으로 답교놀이와 투석전 같은 민속놀이를 하던 장소였다는데 뼈대만 앙상한 다리를 보려니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네요.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암정교.
춘천, 화천을 지난 국도 제5호선은 김화 암정교를 거쳐 한반도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압록강 연안까지 달려 갔지요.
6.25 사변 이후 남북분단으로 김화에서 국도 제5호선은 길이 끊기게 됩니다.
그동안 비무장지대에 속해 있어 전쟁 상흔이 그대로 보존된 암정교.
뼈대만 앙상한 모습이 실로 애잔하기 이를데 없네요.
남쪽의 대성산 방향으로 바라본 암정교.
상판이 그런대로 깨끗한걸 보면 6.25사변 이후 다리를 보수하여 한동안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6.25를 상징하는 전쟁기념물중 하나인 파손된 암정교 난간 모습.
암정교에서 바라본 화강과 승리전망대가 있는 천불산 지역.
오호, 사진으로만 보던 금화군 도로원표~~!!
원산 153.5km, 철원 26km, 회양 57km, 화천 43.9km.
8.15 해방 이후 북한치하 시절에 '금화군'에서 세운 도로원표.
현재도 김화이고 일제때에도 김화라고 했는데 북한 시절에는 금화라고 불렀네요.
'金'은 성 김이나 혹은 쇠 금으로 읽을수가 있으니 북한 치하에서는 김일성을 의식해서 인지 모두 '금으로 읽은것 같습니다.
이젠 반대편의 제방길을 걸으며 화강을 바라봅니다.
그동안 비무장지대에 있어 자연환경이나 생태계가 잘 보존된 화강을 보면서 오늘 너무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화강 너머로 보이는 대성산(1,175m).
철원, 화천 경계에 있는 대성산은 휴전선 남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요.
멀리 승리전망대를 바라보며 제방길을 걸어 다시 용양보 방향으로.
이상으로 김화 DMZ생태평화공원 제2코스인 용양보, 암정교 탐방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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