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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둘레길 14코스(부둣길)를 걷다강바람의 둘레길,옛길 걷기 2022. 6. 9. 08:47
인천둘레길 14코스(부둣길)를 걸었습니다.
오호, 인천시가지를 마지막으로 걷는 날!
주요 코스는 인천역~대한제분~북성포구~동일방직~화도진~만석부두~두산인프라코어~화수부두~동인천역 북광장까지 8.4km.
14코스는 바닷가 부둣길을 걷고 골목길을 누비는 길로 쉽지 않았지만
인천을 방어하던 화도진과 간척지에 있는 북성포구, 만석부두, 화수부두를 답사하고 괭이부리마을까지 둘러보는 흥미진진한 하루였습니다.
오늘 화도진, 만석동을 확인한 일은 가장 큰 수확!
인천 동구 화수동의 주택가 언덕에 있는 화도진(花島鎭)은 예전 바다로 돌출된 전략요충지였습니다.
일본과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함선을 몰고 와 개방을 요구하자 서해안 방어를 위해 1879년(고종 16년) 화도진을 설치하였지요.
화도진에 속한 포대는 묘도포대, 북성포대, 제물포포대, 노현포대, 장도포대가 있었으며 현재 복원되어 있는 논현포대(호구포역 부근), 장도포대(소래포구)를 볼수 있구요.
화도진은 1894년 갑오개혁때 진이 철폐되며 건물도 철거되었으나 현재의 화도진은 화도진도를 기본으로 1988년에 복원한것 입니다.
만석동은 인천 동구 북쪽에 위치한 해안가 마을!
일제시대부터 여러 차례 해안매립이 이루어지면서 인천을 대표하는 공업지대로 성장했는데요.
공장이 들어서며 많은 노동자가 유입되었고 6.25 사변 후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들어와 자리 잡았는데 그곳이 바로 괭이부리마을이 있는 만석동입니다.
괭이부리마을은 창작동화 "괭이부리마을 아이들", 영화 "고양이를 부탁 해" 등에 소개되어 유명하지요.
괭이부리라고 하여 갈매기인줄 알았더니 인근의 만석부두에 있던 묘도(고양이섬)라는 섬이름에서 괭이부리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설명이네요.
쪽방촌을 둘러보려니 부두노동자들의 고달펐던 삶의 한 단면을 보는것 같아 가슴이 찡합니다.
어느덧 2개월 동안 인천둘레길 16개 코스중 14개를 마쳐 인천시가지를 모두 걸었습니다.
집이 멀어 인천을 오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많은걸 보고 배웠으니 그게 큰 보람이요 행복이네요.
앞으로 15코스 강화도 마니산, 16코스 장봉도 섬길만 남겨놓게 되었는데요.
조만간 모두 걸어 완주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인천둘레길 14코스를 걷는 날!
마지막으로 인천의 바닷가를 걸으며 변천과정을 살피고 역사공부도 하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주요 코스는 인천역~대한제분~북성포구~동일방직~화도진~만석부두~두산인프라코어~화수부두~동인천역 북광장까지 8.4km.
어느덧 2개월 동안 인천둘레길 16개 코스중 14개를 걸어 인천시가지를 모두 걷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15코스 강화도 마니산, 16코스 장봉도 섬길만 남겨놓게 되었네요.
개인적으로 늘 궁금해 하던 지역이니 찬찬히 걸으며 살펴봐야 겠습니다.
14코스, 부둣길의 출발점은 인천역.
인천종주길, 인천둘레길, 시흥 늠내길 걷는다고 금년에만 인천에 20번 이상은 온것 같네요.ㅎㅎ
13코스와 똑같이 월미로를 따라 걸으니,
북성포구 입구이자 대한제분 앞 사거리.
북성포구 가는 도로인데 마치 대한제분 회사내 도로처럼 보여 순간 당황하기도.ㅎㅎ
오호, 바닷물이 보이며 북성포구.
여긴 언제 간척사업이 이루어졌나요?
월미도에 인접해 있어 예전에는 성시를 이루었을텐데 지금은 대성목재의 원목야적장만 보일뿐 한적합니다.
피난민들이 나무껍질을 벗겨 땔감으로 팔며 생계수단으로 삼았다는 대성목재의 원목들.
북성포구에서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제철소 모습의 공장과 흰연기.
북성포구는 일몰과 야경이 아름다워 사진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지요.
앞에 보이는 공장이 사진 포인트여서 10여년전에 야경사진을 찍는다고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변함은 없네요.
도로가에는 길게 늘어진 어망이 가득하고 어망을 손질하는 사람도 보이네요.
꽃게잡이 어망인가요?
고깃배 몇척만 남겨놓고 있는 북성포구.
북성포구에 있는 작은 어판장.
1970년대 연안부두에 어시장이 생기기 전에는 수산물공판장이 자리했던 대규모 어업단지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겨놓고 있네요.
막다른 골목인듯한 곳에는 열악한 모습의 횟집들이 여러곳.
좁디좁은 횟집 골목길을 빠져 나오니 인천둘레길 표지.
길을 잃을까 걱정했는데 반가워요~~!!
만석동제3경로당을 지나니 고가도로가 나오고 웬 프래카드?
"굴막을 없앤다는게 말이 되냐!" --- 굴막 일동
고가도로 아래에 굴을 까는 굴막이 있었는데 구청에서 대책없이 정비한 모양입니다.
'만석동 굴직판장'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이 부근이 모두 굴집들이네요.
인천 앞 갯벌이나 영흥도 등에서 채취한 굴이 이곳으로 들어와 굴막에서 굴을 까서 파나 봅니다.
만석어린이공원을 끼고 오른편으로 걸으면,
오호, 정면에 바라보이는 수도국산.
수도국산에서 북쪽에 보이던 동네가 이곳 만석동이었군요.
1세기 전만해도 모두 바닷가 갯벌이었다가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곳이지요.
일제때인 1943년에 지은 도쿄시바우라제작소 사택이라고 하네요.
만석동이 일제때 간척사업으로 메꾸어져 육지가 되고 공장이 들어서다 보니 그들의 사택도 지어졌네요.
지금은 보수하여 당시의 모습은 아니지만 여러채의 사택이 지금도 남아 있는 모습입니다.
만석고가교에서 좌측으로,
가로수길이 예쁜 동일방직 앞의 제물량로를 걸어 갑니다.
동일방직은 일제가 설립한 방적공장이었으나 나중에는 천을 생산하는 방직공장으로 바뀌었으며 노동자가 3천이 넘을때도 있었고
노동자의 80%가 여성이어서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출발지이기도 했다고.
인천 동구는 외세에 처음으로 문호를 개방했던 역사적인 현장으로 경인공업지대의 중심지라는 설명.
제물량은 옛 인천 수군의 군영을 말하니 제물량로 이름은 원래 제물포의 위치를 전하기 위해 제명했다고.
역사를 다시 음미해 봅니다.
원도심 갯골을 따라 생긴 자연포구 --- 북성포구, 만석부두, 화수부두.
우리나라 개항이 시작된 포구 --- 만석부두.
병인양요, 신미양요가 일어난 지역 -- 만석동의 작약도.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 --- 만석부두의 묘도해수욕장.
우리나라 최초 자전거챔피언 엄복동이 경기한 지역 --- 만석동.
만석동행정복지센터를 확인하고,
공장지대를 걸으니,
삼화제분 인천공장.
일제때 생긴 사이토정미소에서 시작된 제분공장으로 일반 서민들은 이곳에서 생산된 밀가루로 수제비, 칼국수, 뜨데국을 만들어 먹었었지요.
인천의 밀가루공장들을 보면서 배고팠던 시절을 추억해 봅니다.
주택가 언덕길을 오르니 나타나는 경인선 기찻길.
동인천역과 도원역의 중간쯤 되는데 인천 동구를 빙글빙글 돌며 걸으니 정신이 없네요.ㅎㅎ
여기까지는 잘 왔는데 지금부터는 골목길을 찾아 헤매느라 정신이 나갈 지경.
들레길을 굳이 이렇게까지 지정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과유불급같습니다.ㅎㅎ
좁은 골목길을 걷고,
트랭글에 의지하여 걷는다고 해도 이 골목, 저 골목다니며 기웃기웃~~!!
고진감래라고 드디어 언덕 위에 있는 화도진에 도착!
화도진(花島鎭)이 있던 곳은 예전 바닷가였으며 바다로 돌출되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시되어 온 곳!
일본과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함선을 몰고 와 개방을 요구하자 서해안 방어를 위해 1879년(고종 16년) 화도진을 설치하였습니다.
진(鎭)은 바닷가나 강어귀에 설치한 군사기지를 말합니다.
화도진에 속한 포대는 묘도포대, 북성포대, 제물포포대, 노현포대, 장도포대가 있었으며 현재 복원된 논현포대(호구포역 부근), 장도포대(소래포구)를 볼수 있습니다.
화도진은 1894년 갑오개혁때 진이 철폐되며 건물도 철거되었으나 현재의 화도진은 화도진도를 기본으로 1988년에 복원하였다고.
화도진의 행정업무를 수행하던 동헌.
이곳에서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고 하나 사실이 아니고 제물포 자유공원 아래라고 합니다.
화도진의 대장이 거처하던 내사(안채).
화도진에 전시중인 홍이포와 1982년에 세운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비.
화도진에서 14코스 스템프도 날인 완료.
오늘 역사 깊은 화도진을 직접 답사하려니 둘레길을 걷는 의미도 크고 감개도 무량하네요.ㅎㅎ
화도진을 내려오면 다시 평지길.
언덕 위에 서있는 만석교회.'
원래는 이곳이 바닷가 땅끝이었겠지만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내륙 깊숙히 들어와 있는 실정.
간척지인 만석동에 왔습니다.
1905년 묘도가 있던 이 일대를 일본인이 매립하기 시작하였고 그후에도 여러 차례 매립을 계속하여 오늘처럼 산업단지가 된 역사가 있지요.
산업단지에 공장이 들어서자 노동자와 피난민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어 살게 되었고 그래서 괭이부리마을과 원괭이부리마을이 생기게 된것이지요.
괭이부리마을 사람들이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만석부두의 굴막장터도 보이네요.
만석교회 언덕을 내려오니 만석동 9번지 일대의 괭이부리마을.
일제때 간척사업으로 매립된 땅위에 공장이 들어서고 일자리 찾아온 노동자와 피난민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창작동화 "괭이부리마을 아이들", 영화 "고양이를 부탁 해" 등에 소개되어 유명.
괭이부리라고 하여 갈매기인줄 알았더니 인근의 만석부두에 있던 묘도(고양이섬)라는 섬이름에서 괭이부리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설명이네요.
쪽방촌 앞에 서니 부두노동자들의 고달펐던 삶의 한 단면을 보는것 같아 가슴이 찡합니다.
괭이부리마을에 있는 우리미술관.
우리미술관은 인천문화재단과 동구청, 주민이 함께 하는 마을사랑방이더군요.
마침 전시중인 염현진의 "치유공간 - 살아가는 아홉가지 이야기전".
인천의 옛 모습을 날 보여주는 만석부두 찾아 가는 길.
포구와 부두의 차이점이 뭔지 갑자기 궁금해 지는데 부두가 포구보다는 규모가 크다는 뜻같습니다.
만석부두가는 길가에는 낚시가게가 성업중.
만석부두 가는 길에 한국기초소재라는 큰 공장이 있네요.
예전에 이 부근에 바닷가에 돌출된 끝에 묘도(고양이섬)라는 자그마한 섬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화도진에 소속된 포대가 설치된 요충지이기도 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이었다는 글도 있구요.
안타깝게도 1930년대에 간척사업을 하면서 없어졌는데 그래서 '괭이부리말'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나 봅니다.
오호, 애환이 서려있는 만석부두!
만석부두는 서울로 향하는 곡물을 만석이나 쌓아 놓았던 곳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네요.
북성포구보다는 규모가 상당히 크며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인천 서구의 공장지대.
인근 갯벌이나 영흥도, 대부도 등에서 채취한 굴이 만석부두로 들어와 굴을 까는 굴막이 우후죽순 생겼던 역사가 있었지요.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인천 서구지역과 북항.
옛날 간척사업 전에는 이 일대가 전부 바다였고 주안염전(현재는 주안산업단지)으로 통하던 물길이었지요.
망원으로 당겨본 인천북항.
배후에 공업단지가 있다보니 인천북항의 규모가 상당히 크네요.
인천 서구의 공장지대 너머로 멀리 계양산, 천마산까지 바라 보입니다.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영종도와 작약도.
작약도는 잘못된 이름이어서 최근 물치도로 제 이름을 찾아 주었다고 하네요.
만석부두를 나와 다음 코스를 걸으려니 웬 철길~~??
원괭이부리마을 앞으로 북해안선 기찻길이 지나던 곳이네요.
자그마한 만석부두역과 벽화거리 등은 원괭이새뜰마을사업으로 사라진 기찻길(북해안선)을 테마로 하는 특화거리조성공사를 실시한 것이지요.
북해안선은 인천역에서 화수부두 건너편의 현대제철까지 북쪽 해안을 따라 달리던 약 3km 정도의 철길로 화물열차가 하루에 2~3번 다녔다고 하는데
2004년 연말에 폐선되었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방문한 만석동 9번지 일대 마을이 그냥 괭이부리마을이라면 철길이 지나는 만석동 2번지 일대는 원괭이부리마을.
아무래도 만석부두와 가깝고 마을도 먼저 생겨나 원괭이부리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나 봅니다.
6.25 사변 이후 갈 곳없는 피난민 달동네였던 원괭이부리마을에 줄지어선 허름한 집들은 알록달록 색깔을 입혔고 기찻길 담장따라 벽화 또 철길이 그려져 눈길을 끕니다.
원괭이부리마을 끝에 있는 원괭이마을역.
화수부두 방향으로 인중로를 걸으려니 나타나는 현대두산인프라코아.
회사가 어마무시하게 커서 깜짝 놀랄 정도.ㅎㅎ
어느덧 화수사거리에 도착.
마지막 힘을 내어 화수부두 가는 길.
13, 14코스를 하루에 걸으려니 힘이 드네요.ㅎㅎ
오호, 화수부두 간판이 보이네요.
바닷가 집들이 모두 비슷비슷.
몇십년전 부터 서민들이 살던 허름하고 정겨운 모습이네요.
이게 화수부두라구?
부두가 작고 쓸쓸해서 가슴이 아플 정도.흑흑~~!!
송현갯골이 바닷물과 합치는 곳에 위치한 화수부두는 예전에는 무척 번성했을텐데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메워져 부두의 규모가 무척 작아 졌네요.
화수부두에서 바라본 송현갯골과 왼편의 현대제철 인천공장.
화수부두의 송현갯골이 동인천역 방향에서 흘러오는 물이지요.
예전에는 송현갯골을 따라 배다리마을까지 배들이 드나들었고 수문통시장, 배다리시장이 성업하여 각지의 사람들로 매우 번성했다고 합니다.
불과 몇십년 전의 일인데 갯골은 모두 복개되어 도로가 되어 버리며 시장도 사라지고 말았네요.
정겨운 모습과 단절된 역사가 아쉽기만 합니다.
동인천역 방향으로 가려니 복개도로가 보이며 수문통시장이 있던 자리로 생각됩니다.
옛날 밀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송현갯골에 수문이 있었던 모양인데 자세한 내막을 알 길이 없네요.
어느덧 동인천역 북광장에 도착.
하루가 다르게 스카이라인이 변하는 동인천역 일대.
동인천역에서 대망의 14코스도 마무리.
주요 코스는 인천역~대한제분~북성포구~동일방직~화도진~만석부두~두산인프라코어~화수부두~동인천역 북광장까지 8.4km.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고 답사해 보고 싶었던 곳을 모두 걸으니 역사공부도 많이 하고 견문도 몰라보게 넓어진것 같네요.ㅎㅎ
이로서 앞으로 15코스 강화도 마니산, 16코스 장봉도 섬길만 남겨놓게 되었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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