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하회마을을 보고 부용대에 오르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2. 8. 2. 09:48
2022.7/24(일)~7/26(화) 2박3일간 경북 안동, 포항, 경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남들은 여름 피서지로 대부분 바닷가를 찾겠지만 우리 모임에서는 지난번의 경북 영주, 봉화, 안동에 이은 답사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는데요.
첫날엔 경북 안동 하회마을, 봉정사,
둘째날엔 포항 보경사와 내연산계곡, 포항운하, 스페이스워크,
셋째날엔 경주 불국사, 석굴암을 찾았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안동에서는 오랜만에 하회마을을 찾았습니다.
물동이동 또는 하회(河回)라는 이름은 물이 돌아 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이 태극 모양(산태극수태극) 혹은 연꽃이 물에 떠있는 형상(연화부수형)으로 예로부터 길지로 이름난 곳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지난 1999년 73회 생일을 맞아 안동 하회마을과 봉정사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그후 하회마을과 봉정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요.
조선 초 류종혜 선생이 터를 잡은 후 풍산류씨가 대대로 살고 있는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류운룡(1539~1601) 선생과 임진왜란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1542~1607) 형제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하회마을의 집들은 삼신당 느티나무를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서 바라보는 방향이 일정치 않으며 큰 기와집을 중심으로 주변에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고.
마을 주민들은 하회별신굿 탈놀이, 선유 줄불놀이 등 서민과 양반들이 함께 하는 놀이를 현재까지도 온전히 어어가고 있는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갑니다
예전에도 여러번 찾은 적이 있었지만 방문할때마다 늘 따뜻하고 고향처럼 정겨운 하회마을.
풍산류씨(하회류씨)들이 모여사는 동족마을인 하회마을.
임진왜란때의 명재상인 류성룡과 그 형인 류운룡, 아들인 유진 등을 배출한 손꼽히는 명문가이지요.
화산 아래 낙동강변에 자리한 하회마을.
연꽃이 피고 벼가 익어가는 한여름에 찾기는 처음이네요.
마을로 들어가는 중앙길.
예전에는 낙동강 뱃길로 사람들이 많이 다녔겠지만 지금은 육로의 발달로 이 길이 중앙길 역할을 하고 있지요.
예전에는 지나친 상업화로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는데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환경이 많이 좋아 졌네요.
마을로 들어가는 중앙길을 기준으로 크게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는 하회마을.
1836년에 지었다는 하동고택(河東古宅).
하회마을 동쪽에 있다고 하여 하동고택으로 불리며 요즘에는 하회마을 선비의 집으로 더 알려져 있다고.
안에는 ㄷ자 형태의 안채 등 弓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고 하나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도 다음 기회로~~!!
화사하게 만개하여 눈을 즐겁게 하는 목백일홍(배롱나무).
눈길을 끄는 북쪽의 대저택들.
조선 정조2년(1797)에 지은 북촌댁인 화경당(和敬堂) 고택.
한마디로 어마어마하게 크고 멋드러진 대저택이네요~~!!
화경당은 화(和)로 어버이를 섬기고, 경(敬)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뜻이라고.
집의 규모가 웅장하고 대갓집의 격식을 완벽하게 갖추어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의 면모를 보여주는 집.
웅장한 규모의 화경당 사랑채인 북촌유거(北村幽居) .
사랑채에 걸린 '북촌유거(北村幽居)' 현판은 조선말 철종때의 명필인 해서 김성근의 글씨로 북촌이 기품있게 기거하고 있다는 뜻.
누마루에 앉으면 하회마을의 3대 풍광을 동시에 볼수 있는데 정면 동쪽으로는 주산인 화산을 마주하며, 북쪽으로는 부용대와 화천, 남쪽으로는 남산과 병산을 한눈에 조망할수 있다고.
정겨운 골목길을 따라 둘러보는 남촌.
대부분 흙담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하회마을이 연꽃이 물위에 뜬 형상이라 돌담을 쌓으면 무거워 가라 앉는다고 하여 흙담으로 쌓았다고.
남촌의 양오당 고택.
류성룡의 증손자인 류만하가 분가하여 지은 집으로
사랑채, 문간채, 안채의 일각문이 마주하고 사당이 있는 전형적인 전통가옥.
한여름을 맞이하여 잘 익어가는 석류.
무궁화도 흔히 볼수 있으며,
대추도 실하게 익어 가는중!
흙담길을 따라 마을길을 들어서면,
하회마을 삼신당(三神堂) 신목.
류종혜가 입향할때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수령 600년이 넘는 느티나무이며 마을에서 성스럽게 여기는 신목.
하당으로도 불리며 화산 중턱의 상당(서낭당), 중당(국신당)과 함께 마을의 소원을 삼당을 이루고 있는데요.
정월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내고, 그 다음 아침에 이곳의 하당에서 제을 올린다고 하며
하회별신굿 탈놀이도 이곳에서 시작이 됩니다.
하회류씨 대종택이며 겸암 류운룡(謙菴 柳雲龍, 1539~1601)의 종가인 양진당(養眞堂).
입향조인 류종혜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이며 흔치않은 조선 전기 주택이며 보물제306호.
안채와 사랑채가 붙어 있는 모습.
사랑채 입암고택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크고 당당한 모습의 정남향집.
양진당이라는 현판은 최초로 풍산류씨 족보를 완성한 류영의 호에서 따온 것이며,
입암고택은 겸암선생과 서애선생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의 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입암고택(立巖古宅) 현판은 석봉 한호의 글씨.
양진당 마당에 핀 붉은 접시꽃.
양진당 건너편에는 충효당.
충효당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구상나무.
1999.4.21 하회마을은 방문한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기념식수한 나무입니다.
여왕은 아직도 하회마을을 방문하여 환대받았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은퇴후 하회마을에 머물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네요.
충효당(忠孝堂)은 서애 류성룡의 종가이며 보물 제414호.
대문에서 바라본 충효당 사랑채.
남촌을 대표하는 충효당 사랑채.
서애는 벼슬을 마치고 귀향한 후에 풍산현에 있던 작은 초가집에서 죽음을 맞이한것으로 전해지며
현재의 집들은 손자 류원지가 류성룡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유림들과 제자들의 뜻을 모아 지었다고.
마루 윗쪽에 걸려 있는 충효당(忠孝堂) 현판.
조선 중기의 명필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서애가 충과 효를 겸비한 인물이라는 뜻으로 단아한 전서로 써 준 글씨.
잘 가꾸어진 충효당 장원.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충효당 사당.
강변으로 나가려니 발견되는 옛 건물터의 초석들.
대저택이 있던 흔적이 남아 있네요.
강변에 있는 400년 된 소나무 보호수.
하회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소나무.
400년이 넘었다니 혹시 서애 류성룡 선생이 심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강건너 부용대, 옥연정사와 마주하고 있는 원지정사(遠志精舍).
원지정사는 류성룡이 부친이 돌아가시자 낙향하여 1576년 서재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으며 병이 났을때 요양하던 곳이기도.
왼쪽이 원지정사, 오른쪽은 누각인 연좌루인데 연좌루에 오르면 부용대와 화천을 한 눈에 볼수 있고, 하회의 아름다운 경관을 둘러볼수 있지요.
강변에 있는 만송정(萬松亭) 숲.
조선 선조때 류운룡이 부용대의 기를 완화하기 위해 1만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고.
낙동강(화천)변에서 바라본 부용대.
류운룡, 류성룡 형제는 부용대의 왼쪽과 오른쪽에 겸암정사, 옥연정사를 짓고 학문에 힘쓰며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절벽 허리에는 좌우로는 벼랑길을 내어 형제들이 오가며 우애를 다졌다고 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의 쇠줄은 부용대에서 하회마을로 떨어지는 줄불 선유놀이용 쇠줄.
하회마을의 옛 선비들은 부용대에서 매년 음력 7월, 선유 줄불놀이를 즐기고 배을 띄워 시를 짓기도 했다고.
강변에서 바라본 낙동강(화천).
하회의 주민들은 화산 앞으로 흐르는 물이라고 하여 화천이라고 불렀습니다.
하회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화천은 하회구곡이 탄생될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네요.
화회마을을 떠나 낙동강 건너편의 부용대를 찾아 갑니다.
광덕교에서 바라본 낙동강인데요.
8년전 강 좌측의 제방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를 하던 추억이 새롭네요.
하회마을 강너머에서 바라본 부용대.
부용대 오르는 입구에 있는 겸암정사(謙菴精舍).
겸암 류운룡이 1567년에 세워 학문연구와 제자양성에 힘썼던 곳으로 부용대의 서쪽에 해당되지요.
부용대는 겸암정사에서 낮으막한 산길을 올라야.
드디어 부용대 정상!
8년전 국토종주때에는 자전거를 끌고 호기있게 정상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요.ㅎㅎ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부용대는 연꽃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라는 뜻.
물이 휘돌아나가는 모습이 삼태극수태극에, 연화부수형이 딱 맞는 말이네요~~!!
만송정 숲 앞을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중앙의 삼신당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거니와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여실히 볼수 있는 풍경이네요.
마을 뒷편으로는 너른 농경지 뒤로 화산이 있고 그 옆으로 병산서원이 위치한 병산도 보입니다.
부용대를 내려오니 화천서원(花川書院).
겸암 류운룡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던 지역 유림들이 위패를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정조10년(1786) 건립.
이후 서원청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근래 다시 복원되어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지요.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화선서원 지산루(地山樓).
다음 찾은 곳은 화천서원에서 가까운 옥연정사.
부용대 아래에 자리한 옥연정사(玉淵精舍)는 서애 유성룡이 만년에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1586년 지은 건물로 임진왜란 당시의 경험을 기록한 징비록(국보 제132호)을 저술한 장소입니다.
옥연정사는 대문채, 안채, 사랑채, 별당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별당채는 징비록을 집필한 서재이고, 맨 안쪽의 사랑채는 서당으로 사용하던 곳.
하회마을과 이어주던 나루터 방향의 문이 옛날에는 정문이었을듯,
옥연정사에서 바라본 화천(낙동강)과 하회마을.
옛날에는 강으로 배들이 분주히 오가며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을테니 지금과 비교하면 하회마을에 출입하는 방법이나 살아가는 방법이 많이 달랐겠지요.
옥연정사에서 산기슭으로 터가 나타나고,
이어서 강을 끼고 나타나는 옛길.
옛날 옥연정사의 류성룡과 겸암정사의 류운룡 형제가 오가던 절벽길입니다.
부용대 산위로 다니지않고 편안한 절벽길을 이용했다고 하는데요.
다소 위험하기는 해도 평탄한 길이라 편하게 오갈수 있었지만 오래전에 폐쇄된 상태.
20여년전 겁도 없이 옥연정사에서 겸암정사까지 절벽길을 기어서 걸어갔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지금은 길이 노후되어 매우 위험하니 통행은 금물~~!!
'강바람의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항 보경사와 내연산계곡 (0) 2022.08.02 안동 천등산 봉정사, 영산암 (0) 2022.08.02 90년 만에 이어진 창경궁~종묘 궁궐담장길 (0) 2022.07.23 동해 추암 촛대바위 (0) 2022.07.23 2박3일간 충북, 경북, 동해안여행 --- (3) 안동 도산서원, 퇴계종택, 동해 영덕 해맞이공원, 축산항, 울진 후포항, 죽변항 (0) 2022.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