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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울시장공관, 장면총리 가옥, 성균관, 중앙고교를 탐방하다강바람의 국내여행 2022. 10. 31. 09:17
2022.10/28(금) 시내 나들이에 나서 종로구에 있는 옛 서울시장공관, 장면부통령 가옥, 성균관, 중앙고교를 찾았습니다.
기대했던 성균관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은 아직 이르더군요.
성균관 은행나무는 매년 11월 초가 절정이라는 얘기는 기히 들었지만 다른 곳이 한창이라 조급증에 달려왔더니 역시나 였으니 시내 중심지에 있어 매연 등의 영향 때문인가요~~??
오늘 큰 목표는 성균관 은행나무를 보기 위함이었지만 나서는 김에 코스를 두루두루 잡았는데요.
탐방코스는 혜화동로타리~혜화문~옛 서울시장공관~장면총리가옥~성균관~창덕궁 뒷담길~중앙중고교~종로3가역까지 약 3km 거리를 구경하며 환담을 나누며 걷다보니 4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혜화동 27- 1에 있는 옛 서울시장공관은 일제때인 1941년 일본인 영화제작자의 개인주택으로 지어져 1959년 부터 20년간 대법원장 공관으로,1981년 부터 2013년까지 33년간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된바 있었는데요.
이곳에 거주하던 시장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텐데요.
왜냐하면 시장공관이 한양도성에 붙어 있고 성곽을 담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여러 차례 철거논란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공관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하기로 결정하였고 보수과정을 거쳐 2016년 한양도성 혜화동전시안내센터로 재탄생한바 있습니다.
한동안 일반시민의 접근이 어려웠던 곳인데 이렇게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해졌으니 무척 다행스럽네요.
운석(雲石) 장면(張勉, 1899~1966) 총리는 제1공화국 국무총리와 부통령, 제2공화국 국무총리를 역임한 분.
특히 1948년 초대 미국대사로 임명되어 1950년 6.25 전쟁시 유엔군의 참전을 이끌어 내어 대한민국 건국과 수호에 발굴의 역할을 한 외교관이셨습니다.
장면 총리가 30년 남짓 거주한 이 집은 1937년 한식, 일식, 양식이 혼합된 절충식으로 지어져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 경호원실, 수행원실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어 주목됩니다.
중앙중고교는 1908년 애국지사들에 의해 설립된 유서 깊은 민립사학으로 3.1운동과 6.10만세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학교입니다.
영화, 드라마 촬영지여서 찾는 이들도 많지요.
그런데 학교 축대 아래로 창덕궁의 깊숙한 곳에 있는 신선원전과 부속건물인 의효전. 재실 등을 볼수 있어 더욱 뜻이 깊었습니다.
성균관 은행나무 단풍은 며칠후 다시 찾기로 언약하고 뜻깊은 시내 나들이를 마칩니다.
오랜만에 찾은 종로구 혜화동!
먼저 살펴본 혜화문(惠化門).
도성에 설치된 4소문중 하나로 흔히 동소문(東小門)으로 불리웠지요..
일제때 도로를 내어 전찻길을 만들때 철거되었다가 1994년에 위치를 약간 북쪽으로 옮겨 복원한 역사가 있습니다.
옛 시장공관의 담장으로 사용중인 오른쪽의 서울도성.
그래서 줄곧 공관의 철거논란이 있어 왔지요.
옛 서울시장 공관.
서울시장들이 관사로 사용하던 집인데 지금은 한양도성 혜화동전시,안내센타로 사용중.
옛 서울시장 공관 모습.
최근 한얀도성 혜화동전시,안내센타로 사용하기 위해 개보수 과정에서 원형이 일부 변형된 상태.
한양도성과 혜화문의 역사를 보여주는 제1전시실 모습.
제2전시실에서 시장공관에 대한 역사를 청취하는 시민들.
역대 시장들의 기증품들.
발굴하듯 건물을 해체하여 전시중인 모습.
명색이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인데 실상은 역사도 깊지않은 일제의 적산가옥 구조를 보여주려는 의도에 이해불가.
공관의 정원은 크게 넓지는 않은데 오른쪽에 성곽 복원사업으로 가리막을 설치한 상태.
공관 뒷뜰에 한양도성 성첩(여장) 복원공사 모습.
다음 찾은 곳은 명륜동 장면 총리 가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운석(雲石) 장면(張勉, 1899~1966) 총리 가옥.
아직도 걸려 있는 명패를 보니 총리께서 그대로 사시는것 같네요.
안채와 사랑채 모습.
1937년 한식, 일식, 양식이 혼합된 절충식으로 지어져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 경호원실, 수행원실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어 주목됩니다.,
안채에 마련된 전시실.
안채의 안방 모습.
양식이 가미된 검소한 모습의 부엌.
총리가 사용하던 흔들의자.
혜화동 골목길을 걸어,
드디어 성균관대학교.
역사 깊은 성균관 때문인지 대학교 정문이 없어 시원한 모습.
성균관엔 은행나무 단풍을 보기 위함인데 아직은 이르네요.ㅎㅎ
성균관은 고려말,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이었지요.
동쪽의 문으로 들어서니,
성균관 대성전.
대성전을 정전으로 좌우에 동무, 서무를 갖춘 모습으로 공자를 중심으로 4성, 10절, 송조 6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판을 봉안중.
대성전의 서무.
높은 월대 위에 당당한 모습으로 잘 건축된 대성전.
대성전 서쪽에 있는 우아한 모습의 대학당과 고목이 된 주목.
원래는 수복청으로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이었으나 남자하인들이 거처했다고.
역사 깊은 성균관의 고목들.
대성전 후면에 있는 성균관 명륜당.
명륜당은 성균관 유생들의 교육을 위한 강당.
현판은 1601년 사신으로 왔던 명나라의 주지번(朱之蕃)이 썼다고.
각종 현판에 걸려 있는 명륜당 내부 모습.
명륜당 앞 은행나무 고목 2그루는 서서히 단풍이 드는 중.
언제봐도 멋드러진 성균관 은행나무.
학교 담길을 따라 감사원 방향으로 걷기로.
성균관대를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오랜 세월 사람들이 무수히 넘어다녀 돌이 반질반질한 상태.
예전에는 성북구 혜화동, 미아리 방면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었지요.
능선상에 있는 창덕궁 뒷담.
이 능선길은 북한산에서 북악산을 거쳐 창덕궁, 종묘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옛부터 북한산의 정기가 한양으로 내려오는 맥이라고 하여 매우 신성시시 해온 곳입니다.
창덕궁 담장 아래의 수구.
물도 흐르고 짐승들도 다니던 통로이니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네요.ㅎㅎ
중앙중고교 안을 지나 정문으로 나가야 되는데,
오호, 중앙중고교 축대 아래로 바라보이는 창덕궁.
지도에서 확인해 보니 창덕궁의 신선원전, 의효전, 재실.
꽤 규모가 큰 사당과 부속건물이 창덕궁 깊은 곳에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한 일.
선원전(璿源殿)은 영대왕들의 어진을 모시고 제자지내던 진전으로 일제때인 1921년에 옛 대보단터에 세워져 신선원전으로 불리며 현재 비공개중.
신선원전 옆에 있는 괘궁정.
이곳은 조선시대 훈련도감의 북영이 있던 곳으로 활을 쏘던 장소였기에 괘궁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네요.
다산 정약용이 정조의 명으로 이곳에 열흘간 갇혀 활쏘기 연습을 했다고.
중앙중고교에 있는 3.1기념관.
인촌 김성수, 고하 송진우, 기당 현상윤이 숙직실에서 3.1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3.1운동의 촉발지가 된것 입니다.
중앙고교는 1908년 애국지사들에 의해 설립된 유서 깊은 민립사학으로 3.1운동과 6.10만세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교정.
인증사진은 남겨야.ㅎㅎ
고풍스런 정문을 나서니,
현대건설 방향으로 난 계동길.
역사 깊은 계동길이 어느새 카페거리로 변했네요.
고풍스런 한옥들이 아직도 계동의 품격을 말해 주는 모습.
송해 선생의 흉상이 서있는 탑골공원 뒷길에서 오늘 여행을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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