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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살던 운현궁(雲峴宮)강바람의 유적답사 2010. 7. 29. 09:03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은 조선 26대 고종(高宗)이 등극하기전에 살았던 잠저(潛邸)로서 부친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이기도 했지요.
운현궁은 노안당,노락당,이로당 등 크게 세 채의 건물들로 나누어져 있는데 노안당(老安堂)은 사랑채로서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되던 역사적인 장소였으며,
노락당(老樂堂)은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서 1866년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린 장소로 유명하며
이로당(二老堂)은 노락당이 안채로 사용하기 어려워지자 새로운 안채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운현궁을 무대로 10여년간 집정하면서 어린 아들을 대신하여 정치를 했다지요.
원래 운현궁은 현재의 규모보다 상당히 컷다고 합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세상을 떠난후 큰 아들인 재면을 거쳐 손자 준용에게 상속되었으나 6.25 사변이후 상당 부분이 팔리면서 집의 규모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쪽의 무슨 스튜디오 부지, 양관이 있는 덕성여대 교육관 자리, 북쪽에 있는 일본문화원 자리 일대가 모두 옛 운현궁 부지였다고 합니다.
* 낙원동 대로를 끼고 있는 운현궁의 정문.
* 너른 앞 마당을 앞에 두고 운현궁의 건물들이 남쪽부터 북쪽으로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순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 운현궁의 사랑채로서 전형적인 한옥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노안당입니다. 흥선대원군이 거처하면서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되었던 역사적인 장소지요.
*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노락당입니다. 1866년(고종 3) 삼간택이 끝난후 명성황후가 왕비수업을 받던곳이자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행하여진 곳이지요.
* 노락당 너머로 넘쳐나는 손님을 맞기위해 1912년에 건립한 운현궁의 양관(洋館)이 보입니다.
* 노락당에 있는 아름다운 문짝들의 모습입니다.
* 맨 끝, 북쪽에 있는 이로당입니다. 1866년 노락당에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러진 이후 노락당을 안채로 사용하기 어려워지자 1869년에 추가하여 새로이
지은 안채라고 하네요.
* 노락당과 더불어 안채의 기능을 담당하고있어 여성들만 살수 있게 별도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철저한 금남의 지역으로 "ㅁ"자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 해시계를 올려놓던 대(臺)라고 합니다.
* 안쪽은 여성들만의 살림공간으로 철저하게 막혀 있습니다.
* 돌축대에 나있는 문은 옛날 빙고역할을 했던 창고였다고 합니다.
* 퍼 옴 - 운현궁에 전시된 사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