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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얼이 서려 있는 수원 서호(축만제)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19. 9. 9. 22:02
2019.9/8(일) 실로 오랜만에 수원 서호(西湖)를 방문하였습니다.
수원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이름붙은 서호는 조선 정조때 인공으로 조성한 저수지로 원래의 명칭은 축만제(祝萬堤)라고 하는데요.
축조연대는 1799년(정조 23)으로 당시로는 최대 규모로 조성된 관개저수지였는데 저수지 남쪽에는 국영농장인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선진농업 방식을 시험적으로 추진하였다고 합니다.
수원 화성(華城)을 쌓을때 일련의 사업으로 내탕금 3만냥을 들여 만들었는데 당시 정조는 화성의 동서남북에 4개의 호수를 축조하였으니
정조가 백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애민사상을 읽을수 있는 좋은 징표이네요.
축만제는 천년만년 풍년을 축원한다는 뜻으로 남쪽 제방에 표석이 남아 있으며
또한 제방에는 노송들이 여러 그루 남아 있는데 이는 제언절목(堤偃節目)에 따라 당시에 심은것으로 생각됩니다.
1831년 화서유수 박기수는 축만제 언덕에 항미정(杭眉亭)을 지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호낙조는 수원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항미정은 1908년 조선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융건릉을 방문하고 돌아갈때 잠시 쉬어간 유서 깊은 정자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 권업모범장을 설치하였고, 해방후에는 사울대농대, 농촌진흥청이 설치되어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근래에는 농촌진흥청국립식량과학원중부작물부. 선거연수원 등의 여러 시설이 입주해 있으며 시민공원으로 개방하여 각광을 받는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저학년때 이곳에 소풍온적이 있었으니 오늘 방문은 어언 58년만이네요.
그때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역에서 내려 허허벌판 비포장길을 걸어 서호에 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ㅎㅎ
* 감격스럽습니다.
어언 58년만에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 있는 서호를 찾아 갑니다.
* 예전에는 서울대농대였는데 지금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중부작물부.
* 1978년 건립된 녹색혁명성취탑.
과거 식량자급자족을 위하여 통일벼를 시작으로 15품종을 개발보급한 결과 1977년에는 쌀생산 4,000만석을 돌파하고 단보당 평균 494kg에 달하여 세계 쌀역사상 최고기록을 수립하게 됨을 기념하여 세움.
* 서호와 접한 잔디운동장은 수원 시민들이 사랑하는 휴식처로 각광.
* 아름다운 구내도로를 걸으니,
* 서호 둘레에 조성된 산책로.
둘레가 2km 정도 된다니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 산책하기에 무척 좋아 보입니다.
* 정조가 벼농사를 위해 대규모의 저수지와 농토를 만들었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이 농토를 만든 것은 오로지 백성을 위하는 큰뜻에서 나온 것인데 경작자에게 나눠 줄때는 먼저 아전과 관노비로 부터 성안의 백성까지 그 힘에 따라 원하는대로 나누어 주라"는 정조의 분부가 화성성역의궤에 담겨 있다고 하네요.
* 서호의 근황이 늘 궁금했었는데 공원으로 조성되어 사랑받고 있으니 퍽 다행스럽다는 생각.
더욱이 최근 국제관개배수위원회에서 서호를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지정했다는 소식이니 그 중요성이 자못 큰것 같습니다.
* 서호산책로는 수원의 곳곳을 연결하는 수원팔색길중 1색.
* 서호로 유입되는 하천은 황구지천의 지천인 서호천.
* 서호천길이 바로 삼남길.
금년중 삼남길을 꼭 걸어야겠다는 약속을 해봅니다.ㅎㅎ
* 서호천을 건너 서호둘레길을 계속 걸으니,
* 백로, 오리 등도 많이 보이고,
* 인공섬에는 가마우지도 많이 서식하더군요.
나무에 새까맣게 매달린 놈들이 모두 가마우지.
* 서호 주변에 펼쳐진 넓은 서호공원.
* 서호의 남쪽 언덕에 있는 항미정.
1831년 화서유수 박기수는 축만제 언덕에 향미정(杭眉亭)을 지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호낙조는 수원팔경의 하나로 손곱히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 항미정은 1908년 조선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융건릉을 방문하고 돌아갈때 잠시 쉬어간 유서 깊은 정자입니다
* 서호의 물을 내보내는 개울의 축만교 다리를 건너면 서호의 제방이 나타나지요.
* 제방위에 남아 있는 축만제(祝萬堤) 비석.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이라니 정조의 애민사상이 담겨 있는 징표이네요.
* 서호의 서쪽에는 여기산(麗妓山).
산성도 있고 옛날 주거지도 있다는데 현재은 백로의 집단 서식지라고.
* 남쪽 제방에는 제언절목(堤偃節目)에 따라 축조 당시에 심은것으로 보이는 노송들이 있어 장관.
* 예전에는 줄지어 서있었겠지만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어 다소 아쉬움.
* 제방 남쪽에 펼쳐진 농경지는 현재 농촌진흥청 시험답(논).
정조의 혼과 얼이 서려있는 농토인데 수원 주변이 모두 개발되고 있지만 이곳은 옛 모습을 보전하고 있어 퍽이나 다행스럽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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