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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보광사와 소령원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0. 10. 3. 12:17
조선 영조의 지극한 효심을 읽을수 있는 파주 고령산 보광사(普光寺)와 소령원(昭寧園)을 답사하였습니다.
보광사(普光寺)는 원래부터 역사 깊은 고찰이지만 인근에 조선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의 묘 소령원을 쓰면서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지요.
신라 진성여왕 8년(894) 도선국사가 창건한 보광사는 인근 10여리 밖의 영장리 능말에 있는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묘 소령원의 원찰로 삼으면서 왕실의 발길이 잦아졌고, 1740년 영조가 대웅보전과 광응전, 만세루 등을 중수한 역사가 있습니다.
대웅보전 오른편 어실각(御室閣)에는 숙빈최씨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져 있고 앞에는 영조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있어 극진했던 효심이 전해 집니다.
소령원(昭寧園)은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자 제21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1670~1718)의 원(園)입니다.
영조는 묘소 근처에 시묘막을 지어 모친의 죽음을 슬퍼하였다고 하며.
영조가 왕위에 오른후에는 묘소 입구에 신도비를 세웠으며 1744년(영조 20) 묘의 이름을 소령묘라 하였으며 이후 영조 29년 묘를 원으로 높혔다고 합니다.
자료에 따르면,
「숙빈최씨는 7세때 무수리로 궁에 들어 갔다고 하는데, 1681년(숙종 7) 인현왕후가 숙종의 계비로 간택되었을때 12세의 나이로 인현왕후를 따라 궁에 들어갔다는 설도 있다.
인현왕후를 섬기며 궁궐생활을 했으나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가 폐출되고 희빈장씨가 왕비가 되자 모진 구박을 받았다. 1694년(숙종 20) 인현왕후가 복위된 후 그 해 연잉군(후에 영조)을 낳았다.
1701년 인현왕후가 죽은 후에는 더욱 지극히 숙종을 섬겼으나, 숙종이 희빈장씨와 같은 일이 생길까 염려하여 궁녀에서 왕비로 오르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왕비가 되지 못 하였다.」
한편 소령원 바로 밑에는 수길원(綏吉園)이 있으나 문이 굳게 닫힌 상태!
수길원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진종의 어머니인 정빈이씨의 묘소입니다.
숙빈최씨와 정빈이씨는 고부 사이로 생시, 사이가 무척 좋았다고 하는데요. 사후에도 서로 가까이 묘소를 썼고 칠궁에서도 육상궁에 함께 신주를 모시고 있으니 무척이나 정겹고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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