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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팔색길 7코스, 효행길 12.3km를 걷다강바람의 둘레길,옛길 걷기 2021. 4. 21. 16:37
2021.4/20(화) 수원팔색길 7코스, 효행길 12.3km를 걸었습니다.
7색 효행길은 정조대왕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현륭원을 참배할때 왕래하던 길!
정조는 왕으로 즉위한 이후 총 13차에 걸쳐 원행(능행길)에 나섰다고 하는데 재위기간을 고려하면 매년 한 차례씩은 방문한 셈이지요.
주요 코스는 지지대고개~효행공원~미륵당~노송지대~만석공원~장안문(북문)~화성행궁~팔달문~매교역~세류역~장다리천2교까지 12.3km.
효행길을 걸으며 노송지대, 만석거, 화성행궁을 답사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고 정조의 지극한 효심을 읽을수 있는 무척 유익한 길이었습니다.
정조의 원행길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재현된 적이 있어 한양에서 화성행궁, 세류역까지는 정조로를 따라 비교적 명확하지만 세류역 인근 부터는 경로가 모호한 실정입니다.
행궁을 나서면 당시 설치한 매교(梅橋), 상류천(上柳川), 하류천(下柳川), 황교(皇橋), 옹봉(甕峰), 대황교(大皇橋) 등의 표석을 따라 원행길이 이어졌는데
추정해 보면 매교에서 수원천을 건넌 후 상류천, 하류천을 따라 걸었으며 황교에서 다시 수원천을 건넌 후 응봉을 경유, 대황교에서 황구지천을 건넌 것으로 보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황교, 응봉, 대황교는 현재 수원비행장 안이기 때문에 정확한 흔적은 확인이 어려운 실정이며, 옹봉은 어느 정도의 산인지는 몰라도 비행장 건설때 사라진것 같습니다.
1795년 윤 2월의 원행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반차도를 보면 사람이 1,505명, 말이 516필이지만
그림에 생략된 인원까지 합치면 사람이 1,807명, 말이 796필이 되었으며 행사에 동원된 전체인원은 사람이 5,661명에 말이 1,417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인원이 열을 지어 행차하려면 최소한 폭 10m 이상의 넓은 도로가 있었을텐데 비행장 시설이 들어서며 옛 원행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네요.
효행길을 마감한 후에는 수원자전거인 타조(TAJO)를 빌려 타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황교 옛터를 확인하였습니다.
대황교(大皇橋)는 정조가 능행길에 건너 다니던 큰 돌다리여서 유명했지요.
대황교가 있던 자리가 어디인지 무척 궁금했는데 확인해 보니 옛터는 권선구 대황교동 138번지, 황구지천에 있었으나 1970년대 비행장 확장으로 인해 옛 터가 비행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더군요.
1960년대에 찍은 대황교는 비록 수해로 무너진 상태였만 일부가 남아 있어 1970년에 남은 석재를 융릉 안으로 옮길수가 있었고 현재 융릉에 가면 원대황교란 돌다리를 만날수 있습니다.
매교, 옹봉은 아예 확인자체가 불가능하지만 대황교 옛터는 부근에서 위치를 짐작할수 있었으니 작은 위안을 삼아도 될 일인데,
효행길을 마무리하려니 웬지 가슴 한켠에 아쉬움이 남네요.
* 수원팔색길 7코스 효행길은 정조대왕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릉을 찾아 가는 원행길 12.3km. *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고 마지막으로 지지대 입구에 가는 버스는 수원역 환승터미널에서~! * 11:00, 지지대고개가 위치한 경수대로. 정조가 왕으로 즉위한 이후 총 13번이나 넘었던 고개. * 프랑스군 참전기념비를 잠시 살펴본 후, * 지지대고개에서 효행길 출~발~~!! * 7색 효행길은 지지대고개에서 수원시내를 거쳐 남쪽으로 수원의 끝까지 12.3km. * 오늘은 임금의 수레가 지나가던 옛 수원의 필로(蹕路)를 걸어야. 정조는 릉행차길에 18개의 표석과 11곳에 장승을 세웠다고. * 정조의 효심을 읽을수 있는 효행공원. * 수원을 창설하고 13번의 원행길에 나섰던 정조대왕. * 지지대고개에서 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정조때 심은 노송들. * 무질서하지만 이 길이 옛날 지지대고개를 오르내리던 국도. * 필로에 있는 '괴목정교' 표석. 정조때 릉행차길에 조성한 18개 표석중 하나지요. * 지지대고개를 내려오면 반겨주는 300년 이상된 느티나무 노거수. * 느티나무 건너편에 있는 법화당(미륵당). * 친근감을 주는 법화당 미륵불. 키가 2.4m나 되지만 하반신은 땅에 묻혀 있고 이목동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고. * 지지대교차로를 지나면, * 오늘 효행길 표지는 붉은색! * 잘 관리되고 있는 노송지대. 정조가 현륭원의 식목관에게 내탕금 천냥을 하사하여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했다는데 200여년의 세월이 흘러 100주 정도의 노송이 남았네요. * 노송지대에 있는 '치산치수지비(治山治水之碑)'. 일제떼 수원 일대의 사방사업 치적을 기록한 비석이라고 하네요. * 당시 릉행차길이었던 북수원시장 앞길. * 12:00, 오호, 장안구 송죽동의 만석공원(만석거)에 도착. * 만석저수지에 있는 영화정에서 부사가 교체될때마다 거북 모양으로 생긴 관인을 인수인계하였기에 교구정(交龜亭)이라는 다른 이름이 붙었다고. * 만석거는 옛날부터 꼭 답사하고 싶었는데 오늘 소원을 푸네요.ㅎㅎ * 정조때 농사를 위해 수원 북쪽에 조성한 만석거(萬石渠). 만석저수지, 일왕저수지라고도 하며 일대가 만석공원으로 잘 조성되었지요. * 정조때는 대유평(大有坪)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었지만 지금은 수원시민의 휴식처로 크게 각광 받고 있는 만석공원. * 수원에 이렇게 아름다운 만석공원이 있다니 정말 부럽네요.ㅎㅎ * 만석공원에서 수원종합운동장으로 가는길인데 이곳에도 노송이 많아 깜짝~! * 수원종합운동장 앞 사거리를 건너고, * 정조로를 걸으니 앞에 보이는 장안문. *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 * 장안문은 중층의 문루를 올리고 전면에는 옹성에 오성지까지 갖춘 웅장한 문. * 장안문을 들어서니 화성 안이라 차분하고 확 달라진 분위기. * 정조로 오른쪽으로 못보던 한옥이?? * 대규모 한옥단지에는 전통식생활체험관, 수원전통문화관 등이 있다고. * 정조때 조성된 화성과 화성행궁 그림.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조선 정조 13년(1789)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행궁과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하였습니다.
정조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켜 위상을 높힌 반면 1795년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뤘으며 1796년 전체 600여 칸 규모로 완공되었습니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1911년 부터 일제에 의해 병원(자혜의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건물이 파괴되어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
1966년부터 발굴조사 자료와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을 바탕으로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을 마쳤으며 2016년 부터는 우화관과 별주의 발굴과 복원을 진행중입니다.
* 13:30, 몇년만에 다시 찾은 화성행궁. *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신풍이란 임금의 새로운 고향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네요. * 일제에 의해 사라졌다가 옛 모습을 거의 되찾은 화성행궁. * 일제때에는 정당인 봉수당 일원에 자혜의원이 들어서기도. *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경룡관(왼쪽)과 정당인 봉수당. 서로 연결되어 매우 웅장한 모습. * 평상시에는 수원의 관아로 사용되다가 정조대왕 행차시에는 화성행궁에 머무르며 진찬연 및 과거시험 등 여러 행사를 치른 역사가 있지요. * 장락당(長樂堂)은 혜경궁 홍씨가 머물때 처소로 쓰기 위해 지은 건물이나 정조도 처소로 사용했다고. * 화성행궁의 봉수당(奉壽堂). 화성행궁의 정당으로 정조는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진찬연)을 열었다고. * 화성행궁의 노래당.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생활을 꿈꾸며 지은 건물. * 화성행궁의 낙남헌(洛南軒). 일제강점기에도 훼손되지 않고 원형이 잘 보존된 건물로 정조는 이곳에서 특별과거시험과 양로연을 열었다고. * 뒷편 언덕에서 바라본 화성행궁. * 낙남헌 옆의 넓은 공터는 신풍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로 향후 우화관을 복원할 계획. * 화성행궁의 화령전(華寧殿). 정조의 어진(초상화)을 모시기 위해 순조 1년에 세운 영전(影殿). * 화령전 안에 모셔진 정조의 어진. *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적이니 기념사진은 필수~! * 다시 정조로를 걸으니 전면에 보이는 팔달문. *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八達門). 1796년에 세워졌으며 중층문루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웅장한 성문으로 옛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 * 교동사거리를 지나면 길이 약간 휘어지며 계속 남쪽으로 이어 지는데, * 수원천을 건너 내려가면 수인분당선 매교역. 그런데 수원천을 건너는 곳에 매교(梅橋)가 있었다는데 깜박하고 지나쳤네요.ㅎㅎ * 세류동 길가에 있는 상류천 표석. 옛날 정조의 필로에 있던 표석의 복제품인데 수원천의 옛 이름이 유천(柳川)이니 상류를 표시하는것 같습니다. * 세류3동행정복지센터에 이르니 버드내라는 지명이 보이네요. 수원천에는 버드나무가 많아 옛날 버드내, 유천(柳川)으로 불리었다고. * 세류사거리를 지나, * 정조로를 계속 걸으면, * 15:00, 드디어 세류역에 도착! 아마 릉행차길은 이 즈음에서 비행장 안쪽으로 지나갔을것 같습니다. * 세류역 앞에 있는 하류천(下柳川) 표석. 필로에 세웠던 18개 표석중 하나인데 원래는 인근의 수원천변에 있었을텐데 복제품을 세워 두었네요. * 15:40, 한낮의 뙤약볕길을 걸은 끝에 드디어 장다리천2교 옆 고가차도 아래에서 효행길을 마감! * 그런데 대황교를 않볼수가 없네요. 고민끝에 타조(TAZO)자전거를 임대하여 타고 대황교 옛터를 찾아 나섰습니다. * 대황교(大皇橋)는 정조가 능행길에 건너 다니던 큰 돌다리여서 유명했지요. 사진은 1960년대의 대황교 모습으로 무너졌지만 일부가 남은 모습인데요. 대황교의 원래 위치가 권선구 대황교둉 138번지, 황구지천이며 지금은 비행장 안이라 볼수가 없습니다. * 고막이 터질듯한 소음을 참으며 방문한 황계교(화성시 반정동). 황계교는 수원의 모든 물(황구지천, 수원천, 원천리천)이 만나는 곳에 있지요. * 황계교 아래에서 바라본 교량이 있는 곳이 황구지천이며 비행장 내부 임. 원래 대황교가 있던 곳은 비행장을 확장하면서 비행장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일부 남은 석재는 1970년 융건릉 안으로 옮겨진바 있습니다. * 황계교 옆으로 수원의 모든 물이 만나는 곳. 정조 당시에는 비행장 안을 걷고 황구지천의 대황교를 건너는 코스가 융릉의 원행길로 추정됩니다. * 정조의 효행길 답사는 대황교 옛터를 보며 마치려고 합니다. 아쉬움이 워낙 크니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질 않네요. * 수원비행장 안으로 들어간 황교, 옹봉, 대황교 위치와 당시의 원행길(필로)을 추정해 본 지도. 노란색이 추정해 본 정조의 필로. '강바람의 둘레길,옛길 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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