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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정릉과 삼각산 흥천사를 답사하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1. 8. 16. 18:18
2021.8/17(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정릉과 흥천사를 답사하였습니다.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고황후 강씨의 릉입니다.
(1899년 신덕왕후는 신덕고황후로 추존)
강씨는 조선 최초의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1396년(태조 5)에 별세하자 경복궁에서 가까운 황화방(현 정동 영국대사관 부근)에 정릉을 조영하였지요.
그러나 태종이 즉위한 후 푸대접을 받던 정릉은 1409년(태종 9) 마침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고 릉의 석물과 목재 일부는 청계천 광통교와 태평관 공사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장된 정릉은 일반인의 묘나 다름없이 방치되었으나 1669년(현종 10) 송시열의 청에 따라 260년만에 신주가 종묘에 모셔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릉이 조영된 역사가 있습니다.
흥천사(興天寺)는 신덕고황후 강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된 왕실원찰입니다.
처음 중구 정동에 정릉을 조영할때인 1397년(태조 6), 그 동쪽에 170여 칸의 규모로 창건되었는데 기둥과 서까래까지 금단청을 할 만큼 최고의 명소로 탄생되었는데요.
정릉을 옮긴 후에도 흥천사는 나름 사세를 유지하였으나 1504년(연산군 10) 화재로 모두 소실되며 역사속에서 사라지는 비운을 당하기도 했으나
1569년(선조 2) 왕명으로 함취정터(위치는 모호)에 절을 짓고 신흥사(新興寺)라고 이름을 고친바 있습니다.
1794년(정조 18)에는 절을 현 위치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요.
1853년(철종 4) 대웅전(현재 극락전), 1855년 명부전을 지었으며, 1865년(고종 2)에는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대방과 요사채를 짓고 이름을 다시 흥천사로 하였습니다.
역사 깊은 흥천사는 여러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로는 보물 제1891호인 42수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국가등록문화재 제583호인 대방(大房).
지방문화재로는 서울시유형문화재가 여러점 있는데요.
서울시유형문화재 제66호 극락보전, 제67호 명부전, 367호 아미타불도, 368호 지장시왕도, 372호 비로자나삼신괘불도 및 괘불함, 제379호 경판(60판), 제 380호 현황도, 제 405호 극락보전 극락구품도, 제406호 극락보전 도량신도, 제407호 극락보전 신중도, 제408호 극락보전 천룡도, 제409호인 만세루 아미타불회도, 제410호 만세루 신중도, 제411호 만세루 제석천도, 제412호 도량장엄번, 제413호 극락보전 목조여래좌상, 제414호 극락보전 목조보살좌상, 제415호 명부전 석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 일괄, 제416호 목조관음보살삼존상 및 복장유물, 제423호 명주전 시왕도 등이 있으니
흥천사 전체가 보물같다는 생각입니다.
오랜만에 찾은 흥천사는 새로운 모습으로 일신되었으니 놀라움 그 자체네요.
흥천사는 조선 후기까지 왕실의 후원으로 중창불사를 거듭하였는데 일제강점기 이후 사세가 기울어지는 아픔이 지속되었는데요.
침체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던 흥천사는 2011년 금곡정념 스님이 부임한 이후 10년 세월 동안 대대적으로 절을 정비하였습니다.
절과 접한 북쪽 언덕에 있던 22가구, 60세대의 주민들과 원만한 합의를 도출한 후 이주시키고 그 자리에 삼각선원, 느티나무어린이집, 전법회관을 차례로 건립하였으며,
대방을 성공적으로 해체보수하여 장엄한 옛 모습을 되찾았고 기울어진 극락보전은 한식드잡이 방식으로 바로 잡았으며 현재 전면 석축을 전통방식으로 새로 조성하는 역사를 펼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변화네요.
아무쪼록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잘 계승하며 불자에게나 인근 주민들에게 꿈을 이루어주는 열린도량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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