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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남 여수, 고흥, 순천여행 --- 순천 낙안읍성, 송광사, 불일암강바람의 국내여행 2021. 8. 27. 10:45
남도여행 3일째인 2021.8/24(화) 순천 낙안읍성, 송광사, 불일암을 답사한 내용입니다.
송광사는 무슨 신도시처럼 이런저런 건물을 짓고 길을 넓히느라고 조용한 계곡을 모두 뒤집어 놓으며 난리법석중!
예전의 빽빽하던 나무도 볼수 없고 천년고찰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어지럽네요.
다만 법정(法頂)스님이 계셨던 산내암자 불일암(佛日庵)만은 깊은 산중에서 조용하고 정갈하기 그지없는 청정도량으로 잘 남아 있어 가슴이 벅차더군요.
스님은 1975년에 자정암터에 새로 암자를 손수 짓고 그때 불일암이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이곳에서 생전 17년을 머무르며 한달에 한편의 글로서 세상과 소통해 가면서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는 청빈의 도를 실천하며 '무소유'의 참된 가치를 널리 알리셨습니다.
스님이 가신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그 분의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는것 같습니다.
전남 해남에서 1932년 출생하여 2010년 입적하신 스님은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에서 수행생활을 하셨으며,
1970년대에는 함석헌 선생과 문익환 목사와 더불어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참여한 적이 있었다는데 조계산 불일암으로 들어가 수행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 것은 1975년 10월.
인혁당 사건으로 젊은 청년들이 사형선고를 받는데 충격을 받고 독재자에 대한 증오심을 이겨내기 위해 암자로 들어갔다고 하네요.
스님은 이듬해 불일암에서 「무소유」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내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무소유」는 스님 그 자체였으며 스님의 삶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1996년에는 김영한씨로 부터 서울 대원각을 시주받아 길상사로 고치고 화주로 계셨으며
2003년에는 화주직에서 물러나 강원도 산골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를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법정스님은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사리는 찾지 말고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쪽나무 아래 뿌려 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는 당부말씀과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모든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채 길상사에서 79세 나이로 입적하셨는데요.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떠나신것 같습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법정스님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며 처음 찾은 곳은 순천 낙안읍성! 낙안읍성(樂安邑城)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평지석성으로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는 읍성입니다.
조선 초인 1397년(태조 6)에 토성으로 처음 쌓았으며 1424년(세종 6)에는 석성으로 고쳐 쌓았고, 정유재란때 폐허가 된 이후 1628년(인조 6) 낙안군수였던 임경업 장군에 의해 다시 복원된 역사가 있습니다.
이때 임경업 장군이 큰 칼로 금전산의 바위들을 내리쳐 하루만에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낙안읍성은 동서 방향으로 길다란 장방형 모습을 하고 있으며 높이 4m, 길이 1,410m.
행정과 군사기능을 갖춘 읍성이기에 평상시에는 행정중심지, 유사시에는 방어기능을 갖춘 성곽으로 이용되었다고.
1983년 사적 제302호로 지정된 이후 마을을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하고 객사, 동헌 등을 복원하는 사업을 펼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금전산(668m) 아래 평지에 있는 낙안읍성과 동문, 낙풍루. * 성곽 아래에 있는 초가집을 보니 고향에 온듯. * 읍성 안 마을은 태풍으로 인해 모두 휴업중. * 임경업장군 선정비각. 마을 사람들은 임경업 장군을 수호신으로 삼고 해마다 마을제를 지낸다고. * 읍성에는 민가와 행정기관이 공존하는데 사진은 낙안읍성의 객사. * 이른 아침의 남문으로 가는 골목길 풍경. * 부지런한 대장간 주인장은 땀을 흘리며 한창 작업중. * 멋진 모습으로 복원된 낙민루. * 아직 루각이 복원되지 않은 서문과 그 뒷편으로 운무에 쌓인 금전산(668m). * 빈기등 언덕에서 바라본 낙안읍성 마을. 마치 고향에 온듯 초가와 돌담장이 무척 정겹네요. * 읍성 밖의 낙안들판.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기도 했지요. * 남문(쌍청루)에서 더위도 피하고 비도 피할겸 잠시 휴식.ㅎㅎ * 성공적으로 읍성 마을을 복원하여 조선 읍성의 원형을 제대로 보는것 같습니다. * 성곽 위를 걸어 다시 도착한 동문, 낙풍루. * 다음은 천년고찰 송광사를 방문! * 걱정하던 비도 멈추어 송광사와 불일암 답사를 도와주시니 부처님의 가피인가요? * 먼저 무소유길을 걸어 산내암자 불일암을 보기로. * 폭우로 인해 물이 불어난 송광사 계곡. * 왼쪽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불일암 가는 길. * 조계산의 울창한 삼나무 숲길을 오르며 무소유의 뜻을 되새겨 봅니다. * 무소유길에 있는 법정스님의 글귀.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 법정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 싱그러운 대숲길을 걸어 올라가려니 마치 꼿꼿하셨던 법정스님을 대하는듯 합니다. * 법정스님이 묵언수행을 하며 이 길을 걸어 다니셨네요. * 오호, 소박한 불일암 출입문. * 대나무 밀림 저 끝에 감추어져 있는 불일암. * 맨 처음 보이는 단아한 건물은 법정스님이 글을 쓰시며 애용하시던 하사당. * 텃밭 너머로 보이는 2칸 건물 하사당은 스님이 글을 쓰시며 세상과 소통하여 우리에게 삶의 지표를 일러 주시던 요사채. * 하사당은 원래 법당이었으나 스님이 법당을 새로 지으면서 이전의 건물을 해체하여 다시 지은 것이라고. * 채마밭을 돌아 돌계단을 올라서면 불일암. * 고려때 지장국사가 창건했던 자정암터에 1975년 법정스님이 건믈을 다시 지은 불일암. *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의 불일암. 이 건물과 하사당, 움막, 해우소가 암자의 전부이니 역시 무소유의 삶의 한 단면을 보는듯 합니다. * 스님의 유언에 따라 후박나루 아래에 유골을 모셨다고. * 법정스님의 의자. 의자 위에는 방명록, 펜과 책 등이 올려져 있네요. * 소박한 편액이 걸려 있는 불일암. * 위에서 내려다 본 아담한 채마밭은 아직도 스님의 손길이 느껴지는듯. * 송광사에서 배출된 16국사중 제7대 자정국사(慈靜國師, ?~1301) 부도탑. * 자정국사탑에서 내려다 본 불일암. 너무나 고요하고 정갈하여 숨이 막힐 지경! * 왼편의 작은 움막은 여름철 스님이 몸을 씼던 욕실. * 불일암을 나와 무소유길을 걸어 송광사를 찾아 갑니다. * 승보사찰, 송광사(松光寺) 방문. 승보사찰, 송광사를 다시 찾았습니다.
천년고찰이니 보물도 많고 볼거리도 많지만 하나하나 천천히 살필수 있는 여건이 되지않으니 그게 정말 아쉬운 일이네요.
대략 20년 전 즈음, 선암사에서 조계산 굴목이재를 넘어 송광사로 내려오며 두루두루 답사한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고개를 넘어 깊은 산중에 있는 식당에서 고추장에 비빈 보리밥과 함께 된장에 찍은 배추속을 정신없이 먹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 길을 다시 걷고 보리밥도 한번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지만 오늘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이번에도 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천자암 쌍향수는 보질 못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면 늘 후회스런 생각에 자책하게 되는데 이게 다 버려야 할 욕심 아닌가요?
아무튼 송광사에는 조만간 다시 찾아야 할것 같습니다.
* 일제때까지 빽빽하게 들어선 법당이 80여 동이나 있는 대가람이었으나 6.25 사변때 소실된 후 현재 50여 동을 재건한 송광사. * 오호, 예전에는 선암사에서 조계산을 넘어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일주문을 통해 송광사를 방문! * 송광사 일주문인 조계문(曹溪門). 절 규모에 비해 다소 작은 일주문이지만 양편에 담장을 두룬채 화려한 모습은 최고수준! * 일주문에 걸린 "대승선종 조계산 송광사". "승보종찰 조계총림"이란 편액을 볼때 송광사가 승보사찰로서 수선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수 있지요. * 목에 방울을 단채 일주문 소맷돌 양편에 있는 석수(돌사자). * 송광사를 상징하는 임경당(臨鏡堂), 우화각(羽化閣)과 능허교(凌虛橋) 경관은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지요. * 일주문을 들어서면 자그마한 척주각과 세월각. 죽은 사람의 위패가 들어올때 남자의 혼은 척주각에서, 여자는 세월각에서 각각 세속의 때를 씼는다고. 앞에 보이는 고사목은 보조국사가 심었다는 고향수(枯香樹). * 경내에 들어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우화각(羽化閣)은 송광사에서만 볼수 있는 이색적인 건물. * 아름다운 능허교 위 우화각. * 우화각에 걸린 송광사 편액. * 우화각 옆 개울과 나란히 있는 침계루(枕溪樓)는 시내를 베고 누워 있다는 뜻. * 능허교 위의 우화각과 바짝 붙어 있는 천왕문. * 천왕문을 들어서면, * 양편에 사천왕이 모셔져 있고, * 전면에는 목백일홍이 아름다운 종고루. * 1988년에 새로 지은 중심법당, 대웅보전은 규모도 크지만 아(亞)자 형태로 특이한 구조. * 대웅보전에 모셔진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 세분과 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 등 보살 네분. * 승보전은 예전 대웅전을 옮겨온 것이라고. * 대웅보전 마당 한귀퉁이에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약사전과 영산전. * 단칸 팔작지붕집인 약사전은 1751년(영조 27)에 중건된 건물로 내부 천장이 대들보 없이 공포와 도리로만 메워진 특이한 건물로 보물 제302호. * 약사전에 모셔진 약사여래와 후불탱화. * 영산전은 1737년(영조 13)에 중건된 건물로 약사전보다 클뿐 생김새는 똑같으며 보물 제303호. * 영산전에 모셔진 석가여래와 영산회상도, 팔상도. 꽃가마처럼 보이는건 영가를 모신 가마인듯. *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대부분 문이 닫혀 있는 모습. 예전에는 수선사, 국사당, 하사당도 답사한 적이 있었는데 아쉬움이 크네요. * 송광사를 끝으로 뜻깊은 2박3일 남도여행을 마치며 조만간 다시 찾을 것을 약속합니다. '강바람의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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