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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계양산성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2. 2. 5. 08:18
부평도호부, 부평향교에 이어 인천 계양구에 위치한 계양산성(桂陽山城)을 답사하였습니다.
인천에서 가장 높은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옛 부평도호부의 진산이며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했는데요.
계양산성의 위치는 계양산 정상부가 아니라 동쪽 자락에 있는 고성산(202m) 주위이며 삼국시대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고 전체 둘레는 약 1.2km에 달합니다.
계양산성은 인천 경기만 방어체계의 중심성이라고 할수 있는데요.
남쪽의 문학산성과 북쪽의 문수산성, 행주산성 등과 연계하여 경기만 북부지역과 동쪽으로 펼처진 기름진 부평벌과 김포벌까지 방어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계양산성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동국여지지, 증보문헌비고에도 폐허가 되었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강요로 산성을 허물어 버리면서 폐허가 된것 같습니다.
20여년 전 계양산을 처음 찾았을 때에는 산성의 흔적을 보기 어려웠는데 근래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로 전모가 밝혀진 상태입니다.
계양산성을 찾아 갑니다.
산성을 답사하기 전에 먼저 계양산성박물관을 보기로.
계양산성의 위치는 계양산 정상부가 아니라 동쪽 자락에 있는 고성산(202m) 주위이며 삼국시대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
산성 쌓는 방식, 도구들을 설명하는 박물관 내부 모습.
계양산성에서 발굴된 의례 관련유구, 유물.
부평도호부 일대의 옛 지도.
계양산과 고산성(계양산성), 부평도호부, 부평향교, 경기만으로 통하던 고개(경명현, 구십현) 등을 보여 줍니다.
계양산성 성문, 치성에서 발굴된 유물.
계양산성 집수시설에서 발굴된 유물.
산성 안에서 채집된 무수한 기와 파편들.
예전에 산성 안에 성문의 문루, 화약교 등 여러 채의 건물들이 있었음을 알수 있지요.
한강, 경기만, 굴포천까지 그려진 구한말의 지도.
사방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는 계양산 남쪽에 위치한 부평도호부의 위상을 알수 있는 소중한 지도입니다.
중심성터에 있던 중심성사적비 귀부(모형)라고 하네요.
비신은 파손된채 귀부만 인청 서구청 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박물관을 나와 뒷편에 있는 계양산성을 본격적으로 답사하기로.
계양산 등산로 옆으로 산정상 방향으로 뻗어있는 계양산성.
산성 주위의 잡목들을 제거하여 말끔하게 성벽이 드러난 모습이며 향후 발굴이 기대됩니다..
계양산성(사적 제556호) 안내판.
"계양산 정상 동쪽 봉우리를 나이테 두른듯 에워싼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약 1.2km이며 성벽의 외부는 잘 다듬은 돌로 약 5m 높이로 쌓아 올렸고 내부는 흙과 돌로 쌓았다.
축조는 삼국시대로 추정하는데 산성 내부에는 동쪽과 북쪽에 2개의 문터와 수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군사 및 교통의 요충지이다" 라는 설명.
발굴 결과 계양산성 평면도.
(1)제1 집수정 (2)제3 집수정 (3) 건물터 (4) 북문터 (5)집수지 (6)제사유적 (7)제2 치성 (8)제1 치성
(9)대형 건물지
계양산성 내부 모습.
계양산성이 계양산 능선의 고성산을 중심으로 동남쪽으로 길게 펼처진 테뫼식 산성으로
근래 발굴조사를 하였지만 성문터와 건물터 등 산성이 갖추어야 할 시설물들의 터는 아직 충분히 밝히지 못한 실정.
허물어져 있는 계양산성.
일찌기 삼국시대에 쌓은 이래 조선시대에 폐허가 되어 고산성(古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는 계양산성.
발굴 후 성곽복원을 추진중인 북측 성벽.
복원중인 북측 성벽으로 성돌은 자연석을 평평하게 다듬은 형태로 무척 치밀한 모습.
북문터가 남아 있는 북측 성벽.
계양산성이 이처럼 폐허가 된 것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강요로 산성을 허물어 버린 때문이 아닐까요?
북측 성벽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모습으로 너른 부평벌, 김포 일대가 잘 조망.
북측 성벽을 오르며 바라본 계양산.
망원으로 당겨보니 서울 남산과 잠실 롯테타워까지 조망.
계양산성에서 바라본 계양산.
계양산성에서 부평벌과 김포벌은 잘 조망되지만 인천 경기만을 보려 한다면 계양산 정상까지 올라야.
계양산성을 한바퀴 돌아 최고점에서 등산로를 따라 하산하며 바라본 풍경.
부평도호부가 있어 부평의 중심지였던 계양구 계산동 일대와 멀리 부평구.
발굴 결과 모습을 드러낸 남측 성벽.
자연석을 잘 다듬어 쌓은 모습으로 볼때 최소한 고려~조선 초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
치밀하고 굳건하게 쌓은 모습이 놀랍습니다.
성벽 아래에는 깨진 기왓장 수북.
옛날 장대(將臺)가 있었을듯한 자리에는 휴게용 육각정자가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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