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여행 (2) --- 강진 백련사, 다산초당, 가우도강바람의 국내여행 2022. 4. 24. 10:43
2022.4.21(목) 남도여행 2일째는 강진만에 위치한 백련사, 다산초당, 가우도를 찾았습니다.
만덕산(408m) 자락에 위치한 고찰 백련사(白蓮寺)는 통일신라 말기에 무염스님이 창건하였으며 고려때 여덟명의 국사, 조선시대에는 여덟명의 대사를 배출한 고찰.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1km 남짓의 산길은 백련사 혜장선사와 다산 정약용이 오가던 길로 유명하지요.
혜장은 다산보다 10살 연하였고 승려였지만 유학에도 조예가 깊고 시도 뛰어 났다고 하며 다산은 혜장을 통해 차를 알게 되었고 그후 초의선사와도 교류하게 되었다고.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18년의 유배생활중 11년을 머물며 후진을 양성하고 실학을 집대성한 성지.
신유박해와 황사영백서사건에 연류되어 강진으로 유배된 다산은 강진 읍내의 사의재, 고성사 보은산방 등을 거쳐 47세이던 1808년 봄, 외가(해남윤씨)에서 마련해준 귤동의 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1818년까지 거처하며 제자를 가르치고 글 읽기와 집필에 몰두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600여 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다산이 1808년 봄, 윤단(尹慱)의 정자에 놀러 갔다가 아늑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경치에 반한 나머지 시를 지어 머물고 싶은 마음을 전했고 윤씨 집안의 흔쾌한 허락으로 마침내 거처를 삼게 되었다는 후문.
다산은 정성을 다해 채마밭을 일구고 연못을 넓히고 석가산을 쌓고 집도 단장하며 다산초당을 일구며 자신을 다산초부(茶山樵夫)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다산초당과 귤동마을을 답사하려니 다소 어수선하고 실망스런 느낌이 듭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오랫만에 찾은 다산초당은 옛날의 차분함, 경건함도 사라졌고, 귤동마을은 상업주의에 물들어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네요.
그리고 초가집이어야 할 다산초당은 언제까지 기와집으로 둘것인지 강진군의 조속한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남도여행 2일째~!
강진만에 위치한 백련사, 다산초당을 찾아 갑니다.
먼저 찾은 곳은 만덕산(408m) 자락에 위치한 고찰 백련사(白蓮寺).
오호, 백련사는 9년만인가요?
백련사에서는 동백숲길을 걸어 다산초당으로 갈수 있지요.
오호, 백련사는 9년만인가요?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처음 찾은건 답사바람이 전국적으로 분 30여 년전의 길이고 근래는 2013년 8월 이후 처음 찾는것 같네요.
일주문에서 백련사 가는 길 좌우에는 온통 동백숲.
조금 일찍 왔으면 붉은 동백꽃을 볼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ㅎㅎ
통일신라 말기에 무염스님이 창건하였으며 고려때 여덟명의 국사, 조선시대에는 여덟명의 대사를 배출한 고찰.
8월에는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백련사 목백일홍.
꽃은 볼수 없지만 아름답게 뻗은 나무줄기만 봐도 국보급입니다.ㅎㅎ
만경루 아래로 들어서며 바라본 대웅보전.
백련사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건물로 무척 늠름해 보입니다.
백련사 대웅보전 안 삼존불.
대웅보전 현판은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1705~1777)의 글씨로 두쪽으로 이루어진 현판이 무척 특이하네요.
원교 이광사는 가까운 신지도에서 귀양살이하다가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였는데 그때 쓴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웅전 현판 옆으로 조성해 놓은 한쌍의 용머리.
용머리에 몽통까지 있는 모습이 다소 특이해 보이네요.
웅장한 백련사 만경루.
만경루 현판도 원교 이광사의 글씨.
예전엔 현판이 루 안에 걸려 있었는데 언젠가 루 밖으로 옮긴 모습.
루마루에 앉으면 앞에 구강포가 바라보이는 시원한 모습의 만경루.
역사가 깊어 보이는 명부전.
지장보살과 시왕, 인왕이 모셔져 있는 명부전.
고색찬란한 백련사 답사를 마친 후,
동백숲길을 따라 다산초당으로~~!!
다산초당까지 1km 남짓의 산길은 백련사 혜장선사와 다산 정약용이 오가던 길.
혜장은 다산보다 10살 연하였고 승려였지만 유학에도 조예가 깊고 시도 뛰어 났다고. 하며 다산은 혜장을 통해 차를 알게 되었고 그후 초의선사와도 교류하게 되었다고.
백련사 혜장스님과 다산 정약용이 소요하며 오간 동백숲과 차밭 오솔길.
만덕산 자락의 동백숲이 일품이네요.
1,500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고창 선운사 동백숲과도 비교될 정도로 대단합니다.
오솔길에서 바라본 구강포 앞바다.
이 길을 처음 밟은지도 어언 30여년이 되었네요.
다산, 혜장의 체취가 남아 있는 조용하고 차분한 숲길을 걸으려니 너무 기쁘네요.
조용한 숲길을 걸은지 30여분만에 도착한 천일각.
다산이 흑산도로 유배간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며 구강포 앞바다를 바라 보는 언덕에 세운 정자.
오호, 먼저 맞이한 다산초당 동암.
다산 정약용이 평소 동암에서 기거하고, 초당에서는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서암은 제자들의 거처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동암에 걸린 '보정산방(寶丁山房)'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긴 것이며 정약용을 보배롭게 모시는 산방이라는 의미.
김정희는 정약용보다 24년 연하였지만 평소 정약용을 몹시 존경했다고.
그 옆의 '다산동암(茶山東菴)'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것입니다.
동암에서 바라본 다산초당과
동암을 지나면 연지석가산.
다산이 온갖 정성을 들여 가꾼 연못으로 원래는 작았으나 다산이 넓히며 가운데에는 돌을 쌓았다고.
연못에는 잉어를 키웠으며 유배생활을 마친 후에도 잉어의 안부를 걱정했다고.ㅎㅎ
오호,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이 18년의 유배생활중 11년을 머물며 후진을 양성하고 실학을 집대성한 성지.
신유박해와 황사영백서사건에 연류되어 강진으로 유배된 다산은 강진 읍내의 사의재, 고성사 보은산방 등을 거쳐 47세이던 1808년 봄, 외가(해남윤씨)에서 마련해준 귤동의 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1818년까지 거처하며 제자를 가르치고 글 읽기와 집필에 몰두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600여 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당초에는 초가집이었지만 1957년 기와집으로 크게 복원되어 다소 낯선 모습이 된 다산초당.
다산이 1808년 봄, 윤단(尹慱)의 정자에 놀러 갔다가 아늑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경치에 반한 나머지 시를 지어 머물고 싶은 마음을 전했고 윤씨 집안의 흔쾌한 허락으로 마침내 거처를 삼게 되었다는 후문.
다산은 정성을 다해 채마밭을 일구고 연못을 넓히고 석가산을 쌓고 집도 단장하며 다산초당을 일구며 자신을 다산초부(茶山樵夫)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초당에 걸린 '다산초당(茶山艸堂)'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
다산을 존경하던 추사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합니다.
다산초당 뒷편의 산자락.
다산초당에는 다산이 정성을 들여 가꾸던 다산4경이 있는데요.
다산4경은 정석(丁石), 약천(藥泉), 다조(茶조),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을 말하며 유배생활의 정취가 서려 있고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지요.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지는 '정석'은 다산초당의 제1경.
간결해 보이는 '丁石' 두 글자는 자신의 성인 丁자만 따서 새겨 넣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지는 다산만이 알 일입니다.ㅎㅎ
현재 보수중인 약천(藥泉)은 제2경.
뒷뜰의 석간수인데 다산이 차를 끓이거나 식수로 사용하던 샘이었지요.
초당 앞에 있는 다조(차 부뚜막)는 제3경.
다산이 약천의 물을 떠서 솔방울로 숯불을 피워 차를 끓이던 바위라고 하며 제3경.
아담한 연못과 작은 정원인 연지석가산은 제4경.
초당 옆의 자그마한 건물은 윤종기 등 18명의 제자가 기거하던 서암.
기와집으로 번뜻하게 복원한 모습이 영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네요.
서암에 걸린 '다성각(茶星閣)' 현판은 차와 벗하며 밥늦도록 학문을 탐구한다는 의미.
귤동마을로 하산하는 길.
다산초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차분하고 정갈한 분위기는 많이 사라지고 너무 관광지화 되어 가는 모습이 다소 아쉽기도.
귤동으로 하산하다가 만나는 제자 윤종진의 묘.
윤종진은 18명의 제자중 막내였다고 하는데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겼을 당시 6살 꼬마로 형들과 함께 글공부를 시작해 다산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아직도 예쁜 숲길은 조금 남아 있기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오랫만에 찾은 다산초당도 옛날의 느낌은 나지 않고, 귤동마을도 너무나 많이 변해 옛 모습을 찾을길이 없네요.
멀리 보이는 강진만이 그나마 나그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는것 같습니다.
근래에 건축하여 개관한 다산박물관.
남양주 조안면에 있는 실학박물관과 유사한 모습.
박물관 뜰에 있는 다산4경에 대한 안내판.
다산사경첩(보물 제1683-1호)은 다산이 유배 당시에 정성을 쏟아 조영한 다조, 약천, 정석, 석가산에 대해 읊은 칠언율시라고 합니다.
강진 유배생활 18년중 외로움을 극복한채 많은 후진을 양성하고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정말 존경받을만한 훌륭한 분이시네요.
마지막 여행지는 강진만 가우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찾은 가우도.
몇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일행이 있으니 다시 걷기로.ㅎㅎ
도암면 방향, 반대편 대구면 방향에서 섬을 잇는 다리가 2군데 있지요.
비옷을 입은채 도암면 신기리에서 망호출렁다리를 건너 가우도 앞으로~~!!
탐진강 위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백련사, 다산초강이 있는 만덕산.
날씨가 좋았으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볼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해안 데크길을 걸어 섬을 한바퀴 돌기로.
둥그런 바위는 두꺼비바위라고.
섬의 반대편에 이르니 저두출렁다리.
가우도의 출렁다리라는 이름은 흔들거리지 않아 맞지않는것 같습니다.ㅎㅎ
몇년 사이에 모노레일도 생겼네요.
섬을 한바퀴 도니 나타나는 가우도 마을.
다시 보이는 망호출렁다리.
가우도에서 바라본 덕룡산(432m).
호남의 공룡능선이라고 할만큼 암릉이 멋진 산이지요.
망호출렁다리를 건너며 가우도 여행 마무리~!
1박2일의 아주 짧은 남도여행을 마치며 건~배~~!!
'강바람의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박3일간 충북, 경북, 동해안여행 --- (1) 단양팔경, 죽령, 소수서원 (0) 2022.06.28 외딴섬, 강화 교동도(喬桐島) 여행기 (0) 2022.05.30 남도여행(1) --- 늘 맑고 푸른 청산도 (0) 2022.04.24 원주 소금산 그랜드밸리의 출렁다리, 울렁다리와 레일바이크 (0) 2022.04.18 종로 낙산 자락의 창신동, 숭인동을 탐방하다(2) (0) 2022.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