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주 성묘, 광해군 묘, 임해군 묘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3. 12. 22. 16:19
2023.12/22(토) 남양주시 진건읍 송릉리에 있는 성묘, 광해군 묘, 임해군 묘를 답사하였습니다.
성묘(成墓)는 조선 14대 선조의 후궁이자 임해군,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김씨(1553~1577)의 묘.
공빈은 김희철의 딸로 선조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았으나 임해군, 광해군을 낳고 24세인 1577년(선조 10)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후 생모를 공성왕후로 추존하고 릉의 이름을 성릉(成陵)이라고 하였으며 신주를 종묘에 모셨으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자 다시 공빈으로 신분이 낮아졌지요.
조선 15대 광해군(1575~1641, 재위 1608~1623)은 선조와 공빈김씨의 둘째 아들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세자로 책봉되어 적극적으로 왜군에 대항하였으며
왕위에 오른후에는 국토복구사업과 대동볍을 실시하고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펼쳐 나라를 안정시킨 분.
그러나 치열한 당파싸움과 폐모살제(廢母殺弟) 사건를 이유로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폐위되었고 강화도를 거쳐 제주도에 유배되었으나 유배생활 18년만인 1641년(인조 19)에 세상을 떠났으며 같은 해에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한바 있습니다.
임해군(臨海君, 1572~1609)은 선조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공빈김씨이고 광해군의 친형입니다.
임진왜란때에는 왜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협상으로 풀려난 적이 있었으며 평소 왕자의 신분을 이용하여 전대미문의 광패한 행동으로 원성을 샀던 인물.
광해군이 즉위하자 사병을 양성하여 반역을 꾀한다는 북인의 탄핵을 받아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교동으로 옮겨져 이듬해 사사되었습니다.
사약을 내렸으나 마시지 않자 목졸라 죽였다고 하네요.
요절한 생모 공빈김씨와 폭군으로 유배생활중 별세한 광해군, 임해군이 사후이지만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며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며 추운 날씨만큼 웬지 마음이 쓸쓸하네요.
오랜만에 임해군 묘와 광해군 묘, 그리고 생모인 공빈김씨의 성묘를 찾아 갑니다.
먼저 찾은 곳은 남양주시 진건읍 송릉리에 위치한 성묘(成墓).
성묘는 조선 14대 선조의 후궁이자 임해군,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김씨(1553~1577)의 묘.
풍양조씨시조 묘소(豊壤趙氏始祖墓所) 입구 팻말과 같이 있네요.
비좁은 마을길을 벗어나 풍양조씨 시조인 조맹신도비 앞을 지나면,
오랜만에 찾은 성묘.
관리를 위해 묘 주위에 옹색하게 울타리를 쳐놓으니 마치 철창에 갇힌 느낌이 드네요.
성묘는 조선 14대 선조의 후궁이자 임해군,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김씨(1553~1577)의 묘.
공빈은 김희철의 딸로 선조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았으나 임해군, 광해군을 낳고 24세인 1577년(선조 10)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묘에서 성릉으로 추봉되면서 왕릉의 격에 맞게 봉분에 난간석을 두루고 문인석, 무인석, 장명등, 망주석, 석양과 석호 등을 제법 짜임새있게 배치한 모습.
터는 명당이겠지만 후궁 묘나 릉이 들어서기엔 무척 비좁은 실정.
한때 릉이었다가 다시 묘로 강등되고 폭군 광해군과 임해군을 낳은 죄로 깊은 숲속에 감추어져 있는듯한 성묘.
기골이 장대하고 눈, 코가 부리부리하여 멋드러진 성묘의 무인석.
성묘 바로 아래는 풍양조씨시조 묘.
원래부터 풍양조씨시조 묘가 있었으나 바로 위에 성묘를 쓰면서 서로간에 갈등이 있었다고 전해져 옵니다.
풍양조씨시조(豊壤趙氏始祖)인 조맹(趙孟)의 묘소.
조맹은 고려 왕건의 공신으로 개국에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위에 성묘가 들어서면서 한때 봉분이 없어지는 일도 있었지만 광해군 폐위후 다시 복원된 역사가 있는 풍양조씨시조 묘.
풍양조씨시조 묘의 오래된 묘표.
창고들이 우후죽순 신축되면서 옛 모습을 잃어가는 성묘 아래의 송릉리 마을.
다음 찾은 곳은 영락공원묘원.
광해군 묘를 찾아가려면 영락공원묘원 진입로를 이용해야.
아뿔사, 광해군 묘도 울타리를 쳐놓아 출입을 막고 있네요.
생모인 공빈김씨의 성묘와 건너편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광해군 묘.
폭정으로 인해 시호도 받지 못한태 그의 유언에 따라 생모 공빈김씨와 형 임해군의 묘가 있는 부근에 묘를 쓰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하 사진 4장은 미호강의 자료사진(2012년 촬영).
묘는 쌍분 형식으로 앞쪽에서 볼때 왼쪽이 광해군, 오른쪽이 문성군부인의 묘.
상설은 왕자묘제의 형태로 문인석, 망주석, 장명등을 설치하였고 봉분 앞에는 각각의 묘표를 세운 모습.
광해군지묘(光海君之墓)라고 새겨진 묘표.
곡장으로 둘러싸인 조촐한 모습의 광해군 묘.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임해군 묘.
북고개(서낭뱅이, 송릉고개)로 넘어가는 옛길로 통행이 많았던 곳인데 지금은 고개너머에 사유지가 있어 막혀 있는 실정.
북고개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어릴때부터 어머님과 같이 이 길을 걸어 북고개를 넘어 견성암에 다녔었지요.
한적하고 아름답던 고갯길이 이젠 창고들이 들어서면서 낯선 모습으로 변해 버렸네요. 흑흑~!
30여년만에 찾으니 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어 버린 임해군 묘 가는 길.
창고가 신축되어 길을 막고 산도 울창한 숲으로 변해 버리니 길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깊은 숲속에서 간신히 찾아낸 임해군묘.
위치는 남양주시 진건읍 송릉리 산5 - 5번지로 공빈김씨나 광해군처럼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는 느낌.
임해군(臨海君, 1572~1609)은 선조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공빈김씨이며 광해군의 친형.
선조의 맏아들이니 그가 당연히 세자가 되어야 했지만 광폭하고 군왕의 자질도 없어 책봉되지 못한 인물.
잘만 풀렸으면 왕이 될 인물이었지만 불과 37세에 유배생활중 사약을 받아 별세했네요.
요절한 생모 공빈김씨와 폭군으로 유배생활중 별세한 광해군, 임해군이 사후이지만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며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
모자지간인 성묘, 광해군묘, 임해군 묘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세로 무척 가까운 거리.
사릉을 포함하여 함께 둘러 볼만 합니다.
'강바람의 유적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주 남한강변 봉미산 신륵사(神勒寺) 탐방 (0) 2024.01.09 역사 깊은 지평양조장 답사 (0) 2023.12.30 강화외성의 제물진 갑곶돈대(甲串墩臺) 답사 (0) 2023.11.26 복원된 강화제1관문 진해루(鎭海樓) 답사 (0) 2023.11.20 하남 풍천임씨(豊川任氏) 묘역 답사 (2) 2023.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