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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외성의 제물진 갑곶돈대(甲串墩臺) 답사강바람의 유적답사 2023. 11. 26. 20:41
강화외성의 갑곶돈대(甲串墩臺)를 답사하였습니다.
구. 강화대교가 지나던 곳에는 옛날부터 갑곶나루가 있어 내륙과 강화도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강화 제1관문이었던 갑곶은 1232년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후 몽골과의 줄기찬 항전을 계속하며 염하강을 지킨 가장 중요한 요새였는데요.
그땐 염하강을 굳건히 지켰지만 400년이 지난 1636년 병자호란때에는 방심한 틈을 타고 청병들이 뗏목을 타고 들어와 갑곶을 부수고 강화도를 함락시킨바 있었지요.
갑곶에 제대로 된 돈대가 들어선건 1679년(숙종 5)의 일.
강화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동쪽의 염하해안에 48개의 돈대를 축조하였는데 갑곶돈대는 부근의 망해, 제승, 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하에 있었고 8문의 대포를 갖춘 갑곶포대를 설치하였습니다.
1866년 천주교 박해를 이유로 일어난 병인양요에서는 프랑스군과 격전을 치루었으며, 10년후 1876년에는 일본이 왜선 6척을 이끌고 갑곶에 상륙한 적이 있었으니 갑곶은 늘 외세가 침략하는 수난의 현장이었습니다.
갑곶돈대는 일제때 강제로 철거되었으며 현재는 1976년 복원된 모습.
원래의 갑곶은 전쟁박물관과 순교성지가 포함된 언덕 전체였지만 구.강화대교가 놓이며 돈대의 중심지가 훼손되었고 북쪽엔 순교성지가 들어서고 말았네요.
갑곶돈대가 반쪽이나마 남아 있다는게 퍽 다행스럽다는 생각.
구.강화대교가 폐쇄되었으니 제대로 된 갑곶돈대의 복원을 기대해 봅니다.
염하강을 건너 강화외성의 제물진 갑곶돈대를 찾아 갑니다.
구.강화대교를 건너면 강화의 갑곶.
구.강화대교를 건너며 바라본 갑곶.
55년전인 1969년 개통되어 강화도에 교통혁명을 불어 일으켰으나 1997년 북쪽에 신강화대교가 개통되면서 역할을 넘겨주고 현재는 도보용으로만 사용되고 있지요.
구.강화대교를 걸으며 바라본 강화해협(염하강).
왼쪽이 김포, 오른쪽이 강화도로 수없이 많은 외침을 당해온 곳이지요.
구.강화대교에서 바라본 갑곶돈대.
갑곶에는 옛부터 갑곶나루가 있어 육지와 강화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며 강화도를 지키기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돌출부는 염하강과 동락천이 만나는 언덕에 만든 갑곶돈대의 작은 치성.
구한말에 성곽 위에서 파수를 보는 병사를 촬영한 흑백사진이 전해지고 있는데 바로 갑곶돈대입니다.
강화해협(염하)을 보며 성돌로 잘 쌓은 성곽과 홍예형의 수문, 그 위에 있는 성첩(여장)이 잘 보이네요.
소중한 역사물로 생각됩니다.
구.강화대교를 건너니 오른편 언덕 위에 갑곶순교성지.
이곳에서도 천주교인들이 순교를 당한 아픈 역사가 있었네요.
예전엔 강화외성의 제물진과 갑곶돈대가 있던 곳인데 반쪽만 남고 반쪽은 순교성지로 변한 모습.
1871년 강화도 해역을 침범한 신미양요때 미군함대에 왕래했던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등이 잡혀와 이곳 갑곶진에서 효수되었는데요.
천주교인천교구에서 터를 매입한 후 2000년에 순교성지로 조성했다고 합니다.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순교자 삼위비.
순교성지에 있는 박순집베드로의 묘.
박순집은 참수희생자는 아니지만 목숨을 걸고 당시 순교자들의 시신을 안장하고, 순교자의 행적을 주문하였으며 성직자들을 보호한 인물이라고.
2001년에 그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합니다.
도로변에 있는 "호국의 성지, 강화" 표석.
25년전만해도 이 길은 강화와 내륙을 연결하는 중심도로였지만 지금은 신 강화대교가 개통되면서 길이 막힌 실정.
갑곶돈대를 보기 위해 찾은 강화전쟁박물관.
넓은 터는 과거 강화외성의 제물진(濟物鎭)이 있던 곳이며 갑곶돈대는 제물진에 속해 있던 돈대였지요.
강화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주제로 각종 유물을 전시하는 강화전쟁박물관.
전쟁박물관 내부 모습.
지정학상 외침이 잦을수 밖에 없었던 강화도였기에 그 고통이 얼마나 컷을까요!
신미양요때 어재연 진무중군이 광성보에 걸고 싸웠던 수자기(帥字旗).
미군에 빼앗겨 미국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2007년 장기 대여형식으로 반환되었다고.
예전엔 홀에 크게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옹색한 유리상자 안에 갇혀 있는 느낌.
흙을 단잔하게 다지며 축성하는 모습을 재현한 그림.
갑곶돈대에 있는 이섭정(利涉亭).
고려때 몽골과의 협상을 했던 장소라고 하며 지금은 복원한 모습.
강화 제1관문인 갑곶을 지키기 위해 염하강을 바라보며 축성한 갑곶돈대(사적 제306호)의 성벽.
갑곶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완성되었고 망해돈대, 제승돈대, 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 관할하에 두었으며
지금 보는 성벽은 1977년 옛 터에 복원한 모습.
염하강을 향해 내쌓은 갑곶돈대의 치성.
내륙에서 처들어오는 적을 막거나 염하를 통해 들어오는 이양선을 막는 천혜의 요충지로 보입니다.
돈대에 비치된 대포인 불량기, 소포.
그러나 포대가 복원되지 않았으니 당초 있었던 대포의 위치는 아닌것 같습니다.
갑곶돈대에서 바라본 김포 방향의 내륙.
갑곶나루가 있고 염하와 동락천이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에 돈대를 쌓아 갑곶을 지켰지요.
돈대에서 바라본 염하강.
우리 선인들은 끊앖이 침략해 오는 외적들을 막기 위해 이곳에서 멀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며 희생을 치루었나요!
정말 가슴이 아프고 쓰리네요.
갑곶돈대로 흘러드는 동락천.
염하와 동락천이 만나는 곳에는 돌로 쌓은 수문이 있었다고.
강화외성의 갑곶돈대에서 바라본 강화산성.
갑곶돈대는 강화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전락거점이었으니 이곳을 막지 못하면 강화도를 잃는것과 같았습니다.
수령 400년의 갑곶돈대의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8호).
갑곶의 역사를 말해주는 탱자나무는 성 아래에 심어 적병의 접근을 막는 철조망 역할을 했다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노란 탱자가 열리네요.
전쟁박물관 뜰에 있는 비석군.
영세불망비, 선정비, 금표, 삼충사적비 등 모두 67기의 비석을 모아 두었는데 관리는 잘 되겠지만 원래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니니 아쉽기도 합니다.
禁標(금표).
放牲畜者杖一百(방생축자장일백), 棄灰者杖八十(기회자방팔십)
1733년(영조 9)에 세운 금표에는 가축을 놓아 기르는 자는 곤장 100대, 재나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곤장 80대를 친다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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