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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제모습찾기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남산골한옥마을' 탐방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5. 11. 08:44
신록을 계절, 5월을 맞아 남산골한옥마을을 탐방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남산자락 아래 남촌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던 곳이었고, 자연을 벗삼아 가난하지만 독서를 좋아하고 선비정신을 갖춘 남산골 선비들이 모여 살아 문기(文氣)가 가득했었다고 하지요.
일제감점기 들어 남산 주위에 조선신궁, 경성신사, 조선총독부 관사들이 들어서면서 환경이 크게 바뀌게 되는데요.
특히 한옥마을이 있던 곳에는 1904년 한국주차군사령부, 1908년 일본군헌병대사령부가 들어 섰고 해방후 한국군헌병대, 1962년 이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가 자리 잡으며 1세기 동안 군시설이 주둔했었지요.
1991년 수도방위사령부가 남태령으로 이전한 후 남산제모습찾기사업으로 1998년 남산한옥마을을 조성한 것입니다.
이적지에는 훼손되었던 지형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남산의 자연식생인 전통수종을 심고 계곡을 만들어 물이 흐르게 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려 했으며
구한말, 신분과 직책이 달랐던 5인의 전통가옥을 이전복원하였는데 옥인동 윤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관훈동 민씨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삼각동 도편수 이승엽 가옥입니다.
이 가운데 탐관오리이자 매국노로 알려진 윤씨, 민씨 가옥 3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초화급이니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에 적당할지 몰라도 웬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남산한옥마을엔 한옥 5채 외에 전통정원, 서울천년타입캡슐광장, 서울남산국악당 등이 있어 전통문화예술을 즐기며 산책하기에 매우 좋습니다.
오랜만에 중구 필동에 위치한 남산한옥마을을 찾았습니다.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던 민속자료 한옥 5채를 이전복원한 남산한옥마을.
조선시대 남산자락 아래 남촌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던 곳이었고, 자연을 벗삼아 가난하지만 독서를 좋아하고 선비정신을 갖춘 남산골 선비들이 모여 살던 곳.
청학동으로 불리던 이곳은 한양에서 경치좋은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더불어 한양 5동으로 꼽히던 곳.
1998년 남산제모습찾기사업의 일환으로 훼손되었던 지형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남산의 자연식생인 전통수종을 심고 계곡을 만들어 물이 흐르게 한 모습.
남산한옥마을을 이루는 5채의 한옥으로 옥인동 윤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관훈동 민씨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삼각동 도편수 이승엽 가옥.
남산한옥마을의 5채 한옥을 시계방향으로 찬찬히 살펴보기로.
제일 먼저 찾은 '옥인동 윤씨 가옥'.
1910년 무렵에 지은 한옥으로 원래는 종로구 옥인동 47-133번지에 있었으며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인 윤덕영(1873~1940)의 집으로 부재가 낡아 이전치 못하고 건축양식을 본떠 복원했다고.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에 안마당이 있는 형태로 윤덕영의 실세를 알수 있는 대저택.
마침 많은 외국인이 참석한 가운데 남산골전통예절교실 성황중.
모든 시설은 최신, 최고급이지만 부엌은 어쩔수 없이 좀 낙후된 느낌.ㅎㅎ
뒷곁에 달린 문창살이 무척 정교하고 멋스럽네요.
다음은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순종의 장인인 해풍부원군 윤택영(1876~1935)이 딸 순정효황후가 1907년 창덕궁으로 들어갈때 지은 집으로,
원래는 동대문구 제기동 224번지에 있었는데 순종이 모후인 명성황후의 홍릉을 찾을때 제사와 숙식편의용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윤택영은 헤픈 씀씀이로 인해 빚이 많았으며 친일파였으나 아들 윤홍섭은 투철한 독립운동가였다고.
재실의 본채 모습으로 사랑채와 안채를 대칭되게 만들어서 전체적으로 元(원)자 모양을 이루는 특이한 형태.
격조 높게 꾸며진 안방.
뒷편에 있는 재실(사당).
4분의 제사상을 모신 모습.
품위있게 차린 재실 안 모습.
다음 찾은 '관훈동 민씨 가옥'.
남산골한옥마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이 집은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에 있던 민영휘(1852~1935) 저택 가운데 일부로 187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 8대가 중의 하나.
민영휘는 조선후기 문신이자 친일파로 일제강점기시 최고의 갑부.
당시 백성들은 작은 초가나 기와집에서 어렵게 살때 탐관오리이자 매국노의 집은 이렇게 크고 화려했다니 씁쓸하기만.
안채, 사랑채, 별당채로 이루어져 눈이 부실 정도로 크고 화려한 민씨 가옥.
운동장처럼 넓고 화려한 안채의 대청마루 모습.
자그만한 한옥만 보다가 대궐같은 큰 집을 보니 눈이 휘둥그레 될 정도.ㅎㅎ
뒷편에 있는 민씨 가옥의 별당채.
무척 고상한 분위기이지만 친일파의 집이다보니 좋게만 보이질 않네요.
뒷곁에 있는 우물과 장독대도 예술작품 수준.
안채에서 바라본 사랑채.
민씨 가옥의 사랑채.
다른 가옥의 안채만큼 크고 누마루가 달린 모습으로 한옥의 멋스러움을 여실히 보는것 같습니다.
사랑채 안 모습.
방과 누마루를 갖추어 글을 읽거나 손님을 맞이 하던 곳인데 부럽기까지 하네요.ㅎㅎ
위에서 바라본 민씨 가옥의 장중한 지붕선.
다음 찾은 곳은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이승업은 1867년에 경복궁 중건공사에 참여했던 도편수로 1860년 무렵, 청계천 부근의 중구 삼각동 36-2번지에 지은 중인(中人) 주택.
이승업 가옥은 원래 큰 규모였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은 상태로 안채을 보면 안방쪽은 팔작지붕, 부엌쪽은 맞배지붕을 한 특이한 형태.
도편수가 자기가 살 집을 지었으니 얼마나 잘 지었을까 하지만 의외로 소박한 모습.
안채 건너방을 꾸민 병풍, 가구들.
남산으로 이전복원하며 다시 꾸민 모습으로 다소 낯설기도.
아담하고 단아하여 주인장의 성품을 읽을수 있는 사랑채.
마지막으로 찾은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1890년 무렵 지은 집으로 원래는 삼청동 125-1번지에 있었으며 크게 안채와 사랑채로 나누어진 모습.
안채 영역는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진 ㄷ자로 안마당을 둘러싼 형태.
외부에서 보면 벽체와 담장으로 둘러싸여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반대로 안마당은 의외로 포근한 모습.
남쪽의 사랑채는 문간채에 연결되어 특이할 정도로 아주 작은 모습.
한옥마을에 있는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
서울 정도 600년을 맞이하여 시민생활과 서울의 모습을 대표할수 있는 문물 600점을 담아 400년 후인 서울 정도 1000년에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을 전하고자 함이지요.
중앙부의 화강암 원형판석 아래에 서울의 문물 600점을 넣고 봉인한 타임캡슐을 1994년에 묻었으며 400년 후인 2394년에 개봉한다고.
1994년 베스트셀러였던 본인의 저서 '북한산성'도 타임캠슐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기도.ㅎㅎ
2007년, 뒤늦게 들어선 서울남산국악당.
300석 규모의 지하공연장이 있고 지상에는 야외마당이 있는 서울남산국악당.
그런데 건물들이 한옥같지는 않고 마치 왜색풍인양 낯설어 보입니다.
한옥마을에 있는 수도방위사령부터 표석.
1962년 부터 1991년 까지 30년간 주둔한후 남태령으로 이전했음을 알리네요.
일제강점기 이후 남산에는 많은 훼손과 환경변화가 있었음을 실감하며 남산제모습찾기는 아직도 진행중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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