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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대명포구에서 덕포 부래도까지 강화해협철책길 산책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10. 6. 06:47
김포 대명포구에서 덕포 부래도까지 강화해협철책길을 산책했습니다.
오늘 가볍게 산책한 코스는 강화해협을 따라 대명항에서 덕포진, 덕포마을 거쳐 부래도 앞까지 약 3.1km를 왕복했는데요.
이 구간은 평화누리길 191km중 1코스(염하강철책길)인데 북괴의 끊이지않는 남침야욕에 김포, 강화도 사이의 강화해협은 철책이 높게 설치된채 늘 삼엄한 분위기.
한강과 연결되는 강화해협은 조선시대 외세침입의 마지막 방어선이었지요.
외세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1679년(숙종 5) 덕포진에 돈대를 축성하고 해안포대가 설치되어 1866년 병인양요때는 프랑스군과 1871년 신미양요때는 미군과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덕포진에서는 강화해협에서 물살이 가장 빠른 솔돌목을 볼수 있으며 손돌의 억울한 죽음이 전설처럼 전해지는 손돌 묘가 이곳에 있기도 합니다.
강화해협의 옛 명칭인줄 았았던 염하(鹽河)는 프랑스 극동함대가 강화와 한강 수로를 조사할때 해로지도에 짠강이라고 표기하면서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이를 염하라고 표기하였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일제의 잔재라고 하네요.
따라서 강화해협이라고 해야 옳다는 얘기.
오늘 대명항에서 점심도 맛있게 먹고 강화해협철책길을 걸으면서 역사탐방도 하는 아주 유익한 하루였습니다 ~!
오랜만에 찾은 김포 대명포구.
강화해협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초지진과 강화 마니산.
대명항수산물직판장에서 해물을 몇가지 구입하여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거하게 먹은 후,
점심을 잘 먹었으니 강화해협철책길을 잠시 걸어 볼까요!
이곳은 대명항에서 철원 경계까지 평화누리길 191km 시작점 ~!
4년전 이곳에서 출발하여 하루에 20~25km씩 걸어 9번만에 평화누리길을 완주했었지요.
악전고투하며 걸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성취감으로 가슴 뿌듯합니다.ㅎㅎ
철책이 높게 쳐진 강화해협.
북괴의 남침야욕이 그치질 않으니 김포, 강화도 사이의 강화해협은 늘 삼엄한 분위기.
올해에도 어김없이 누렇게 변한 김포의 황금벌판.
철책길에 '꿈꾸는 염하강' 주제로 공공미술 직품이 설치되어 있기도.
평화누리길 1코스(염하강철책길)는 대명항에서 덕포진, 손돌묘, 부래도 앞, 강화대교까지 약13.5km이나
오늘은 가볍게 덕포진을 보고 부래도 앞 덕포마을까지만 다녀오기로.
강화해협철책길에서 만난 조선시대 덕포진의 해안포대.
예나 지금이나 강화해협은 외세의 침입을 저지하는 최고의 전략지 요충지로 손색없지요.
가포대, 나포대, 다포대로 이루어진 덕포진(德浦鎭)은 사적 제292호.
한강과 연결되는 강화해협은 조선시대 외세침입의 마지막 방어선으로
외세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1679년(숙종 5) 덕포진에 돈대를 축성하고 해안포대가 설치되어 1866년 병인양요때는 프랑스군과 1871년 신미양요때는 미군과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강화 덕진진의 남장포대와 마주하며 5개의 포대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가, 나, 다 포대만 복원된 상태.
덕포진 가포대에서 바라본 강화해협.
건너편에 초지진이 바라보이는 덕포진은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목에 천혜의 지형을 이용하여 설치한 조선시대의 군영.
강화 초지진과 덕진진의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는 덕포진 가포대.
가포대는 총 7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1980년에 발굴 결과 현재처럼 복원.
덕포진 나포대.
총 5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역시 강화의 초지진과 덕진진의 남장포대와 마주한 모습.
안쪽에서 바라본 나포대.
나포대의 내부 모습.
돌로 쌓아 웬만한 포격에도 견딜수 있게 하였으나 지붕이 허술한 초가인 것은 이해하기 힘든 구조.
덕포진에서 바라본 강화해협.
불과 150년 전, 서양군함을 맞아 격렬한 전투를 치루며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을 치룬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기와지붕을 올린 덕포진 다포대.
3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발굴 당시 기와편이 발견되어 기와지붕으로 복원하였다고..
앗, 파수청터에 못보던 건물이 복원되어 있네요.
예전에는 1980년에 발굴되어 확인된 파수청터만 있었거든요.
최근 복원된 파수청(把守廳).
포대와 돈대의 중심부에 두어 포를 쏠때 필요한 불씨를 보관하고 또 포병을 지휘하던 장대.
오호, 손돌목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있는 손돌 묘.
손돌 묘는 1970년 대곶면 신안2리 마을사람 120명이 4일간 공사를 진행하여 사라졌던 묘를 복원하였다고.
예전에는 사당도 있었다고 하나 일제때 소멸되었으며 현재 음력 10월20일에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 손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제사를 지낸다고.
손돌 묘 앞의 돌출된 부분은 돈대터.
조선시대에는 덕포진의 돈대가 있었다고 하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실정.
강화해협 건너편으로 광성보, 용두돈대와 마주하고 있는 덕포진 돈대터.
덕포진 돈대와 건너편의 광성보 용두돈대 사이는 뱃사공 손돌의 전설에서 유래된 '손돌목'.
강화해협중에서 가장 폭이 좁고 물살이 거센 곳이어서 자연지형을 이용한 천연 요새로 유명합니다.
전승되는 '손돌설화'는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으로 왕이 강화도로 피난을 할때, 손돌이란 뱃사공이 왕과 그 일행을 태워서 건너게 되었다. 손돌은 안전한 물길을 택해 초지(草芝)의 여울로 배를 몰았다. 마음이 급한 왕은 손돌이 자신을 해치려고 배를 다른 곳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손돌의 목을 베도록 하였다.
이때 손돌은 배에 있는 박을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험한 물길을 벗어날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왕은 손돌의 말대로 박을 띄워 강화로 피할수 있었으며, 왕은 손돌의 충성에 감복해 그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 영혼을 위로하였다".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덕진진의 남장포대.
강화 8포대의 하나로 규모가 무척 커서 15문의 대포가 설치되었다고.
철책길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길을 걸으니,
걷다보니 대명항에서 2km나 왔고 문수산성 남문까지는 11.5km 남은 지점.
광성보와 덕포를 벳길로 이어주던 강화해협.
오호, 부래도(浮來島).
강화 광성보와 마주하고 있으며 무인도이지만 현재 해병대에서 잘 지키고 있는 중.
강화해협에 떠있는 유일한 섬으로 강화와 통진 사이를 흐르는 염하를 따라 한강물에 떠내려 왔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하네요.
예전에는 군사요충지로 사용되어 섬 안에 성터가 남아 있다고.
부래도가 앞에 있는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28번지는 원래의 덕포(德浦)나루가 있던 곳.
강화 광성보와 연결되는 뱃길이 있었다고 하나 간척사업으로 원래의 덕포는 사라지고 지금은 철책 안에 어민만 이용할수 있는 자그마한 신덕포가 있는 실정.
부래도 앞에 있는 덕포(德浦)마을 -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예전에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옛 영화를 잃어버린채 조용한 모습.
해안철책길을 따라 대명항에서 3.1km를 걸어 왔지만 부래도는 군사지역으로 철책 통문이 굳게 닫힌 실정.
부래도 앞 포구는 신덕포로서 민간어선들만 몇척 있을뿐 일반인의 통행은 금지된 상태.
김포 대명포구에서 시작한 강화해협철책길 산책은 부래도 앞에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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