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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안의3동(安義三洞) 중 함양 거연정, 농월정, 거창 수승대를 찾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11. 30. 08:57
영남 안의3동(安義三洞) 중 함양의 거연정, 농월정, 거창 수승대를 찾았습니다.
함양군 안의면은 옛부터 경남의 교통요지로 일제때만해도 거창까지 아우르는 넓고 번창한 지역이었습니다.
육십령 너머 덕유산 남쪽의 산과 계곡에는 너른 암반과 기암괴석,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여러 루정으로 인해 정자문화가 발달했는데요.
옛 안의면에 있던 안의3동은 현재 안의계곡으로 불리는 화림동(花林洞), 용추계곡으로 불리는 심진동(尋眞洞), 수승대계곡으로 통하는 원학동(猿鶴洞)을 말합니다.
행정구역 변경으로 현재 화림동, 심진동은 함양군 안의면에 있으며 원학동은 거창군 위천면에 위치해 있습니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남강의 상류인 금천(남강천)에는 비경을 이루는 화림동계곡이 있고 거연정(居然亭) 일원은 명승 제86호.
거연정이 있는 함양군 서하면의 화림동은 조선시대에는 안의현에 속하여 영남제1의 명승으로 꼽혔던 안의 3동(安義三洞)의 하나였습니다
거연정은 1640년(인조 18)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서(全時敍) 선생이 억새를 엮어 정자를 지었는데 바로 최초의 거연정이며 그후 여러번의 중수가 있었으며 조선 후기의 학자 임현희는 "영남의 명승중 안의삼동이 가장 빼어나고, 그중에서도 화림동이 최고이며, 화림동 명승중 거연정이 단연 으뜸이다"라고 했지요.
농월정은 지족당 박명부(知足堂 朴明榑,1571~1639) 선생이 병자호란때 굴욕적인 강화가 맺어지자 벼슬을 물러나 은거하면서 지은 정자입니다.
금천의 맑은 물이 쏟아져 내리는 월연암(月淵巖)을 바라 보노라니 달밝은 고요한 밤에 암반 위의 냇물에 비친 달빛을 보며 한잔의 술로 달을 희롱하려는 선비들의 풍류와 멋이 함축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자연암반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 농월정은 1637년 최초 건립 이후 여러번의 중수를 거치며 보존되던중 2003년 10월, 방화로 인해 전소되고 말았지요.
그때의 참화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2015년 완벽한 옛 모습대로 복원을 잘 하여 다행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안의3동중 하나인 거창군 위천면의 수승대(명승 제53호).
수승대(搜勝臺)는 영남 제1의 동천으로 이름난 안의3동의 하나인 원학동에 위치한 명승지로 화강암 암반과 함께 아름다운 숲이 어우러져 있어 예로부터 전국의 시인묵객들이 무릉도원으로 여기며 즐겨 찾았던 곳입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물론 위천의 거북바위, 구연서원, 요수정, 함양재 등 답사할 곳이 아주 많은데요.
모두 요수(樂水) 신권(愼權,1501~1573) 선생의 혼이 서려 있는 곳으로 일찌기 벼슬은 남에게 받는 것이고, 내게 간직된 인품은 하늘이 준것이니 어찌 내게 있는 것을 버리고 남에게 있는 것을 구할것인가 하며 숨어 살면서 안빈낙도에 힘쓰신 분.
수승대 일대를 학문에 힘쓰는 장소로 정해 후학들 교육에 일생을 바친 요수 선생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남강의 상류인 금천(남강천)에는 비경을 이루는 화림동계곡이 있는데요.
안내판을 보니 함양군 서하면, 안의면을 흐르는 금천을 따라 화림동계곡을 걷는 선비문화탐방로가 개설되었네요.
거연정~군자정~동호정~농월정~구로정~오리숲까지 약 10.1km인데 워낙 비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니 시간내어 꼭 걸어보고 싶은 길이니다.
거연정(居然亭) 일원은 명승 제86호로 천하 제1의 비경이지요.
거연정이 있는 함양군 서하면의 화림동계곡은 조선시대에는 안의현에 속하여 영남제1의 명승으로 꼽혔던 안의 3동(安義三洞)의 하나였습니다.
참고로 안의 3동은 거연정, 농월정이 있는 화림동, 수승대가 있는 원학동, 용추폭포가 있는 심진동을 말합니다.
노송을 앞에 두고 화림동 금천의 솟은 바위 위에 절묘하게 서있는 거연정은 1640년(인조 18)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서(全時敍)가 억새를 엮어 정자를 지었는데 바로 최초의 거연정이며 그후 여러번의 중수가 있었습니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 들어가도록 한 거연정.
조선 후기의 학자 임현희는 "영남의 명승중 안의삼동이 가장 빼어나고, 그중에서도 화림동이 최고이며, 화림동 명승중 거연정이 단연 으뜸이다"라고 했지요.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팔작지붕 형식으로 방을 가운데 두고 바깥쪽으로 마루를 돌렸으며 정자의 네 귀퉁이를 받치는 기둥은 바위 모양에 따라 높낮이가 다르니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것 같네요.
거연정 바로 아래에서 보는 군자정(君子亭).
거연정과는 달리 너럭바위 위에 앉은 모습이 자연스럽네요.
군자정은 오방오현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이 처가인 이곳을 찾으면 쉬던 곳으로 지금 건물은 1802년에 세웠다고.
다음 찾은 곳은 화림동의 농월정(弄月亭).
예전에는 도로변에서 바로 농월정으로 내려섰었지만 오늘은 음식점이 있는 동네를 거쳐 가려니 제법 운치가 있네요.
오호, 금천의 맑은 물이 쏟아져 내리는 농월정 앞 월연암(月淵巖).
달밝은 고요한 밤에 암반 위의 냇물에 비친 달빛을 보며 한잔의 술로 달을 희롱하려는 선비들의 풍류와 멋이 함축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농월정은 지족당 박명부(知足堂 朴明榑,1571~1639)가 건립했는데요.
병자호란때 굴욕적인 강화가 맺어지자 벼슬을 물러나 은거하면서 지은 정자입니다.
자연암반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 농월정.
1637년 최초 건립 이후 여러번의 중수를 거친 농월정은 2003년 10월, 방화로 인해 전소되고 말았지요.
그때의 참화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2015년 완벽한 옛 모습대로 복원을 잘 하여 다행스럽습니다.
용 2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농월정 천장.
박명부의 후손들이 새겼다는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는 선생이 지팡이를 내려놓고 신발을 벗어 머물던 곳이라는 뜻.
농월정을 새긴 각자도 보이고,
지족당의 후손인 박응환 선생이 고종 43년(1906)에 썼다는 칠언율시.
농월정의 비경을 접하고 글 하나 남기고 싶지않은 선비가 어디있으리요~!
다음 찾은 곳은 안의3동중 하나인 거창군 위천면의 수승대(명승 제53호).
근래 관광지로 변한 거창 수승대 일원.
옛 선비문화가 깃들어 있어 고즈녁하던 수승대 주위가 시장처럼 혼잡하고 또 난잡하기 까지 하니 참을수없는 지경.흑흑~!
먼저 찾은 구연서원(龜淵書院).
구연서원은 요수(樂水) 신권(愼權,1501~1573) 선생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신권이 서당을 세워 제자를 가르치던 곳인데 1694년(숙종 20) 구연서원으로 개칭.
요수 선생은 거창 출신의 문인, 학자로 벼슬을 사양한채 안빈낙도하며 학문과 교육에 힘쓴 분이십니다.
구연서원의 관수루(觀水樓).
양쪽의 큰 바위에 의지하여 정면3칸 측면 2칸의 중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은 루각이 무척 신기하고 운치있는 모습
생긴 모습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한 관수루의 안쪽 기둥들.
루각의 2층은 자연암반을 걸어 올라 들어가게 하였으니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옛 선비들의 지혜를 읽는것 같습니다.
관수루에선 비경을 이루는 수승대의 풍광을 볼수 있고 위천 건너편 언덕의 요수정에서 또 수승대의 풍경을 볼수 있게 하였테요.
중앙에 강당, 뒷편에 사당이 있는 구연서원.
1540년 요수 신권 선생이 서당을 세우면서 출발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다행히 강당과 관수루는 그대로 남아 있어 요수 선생을 비롯하여 석곡 성팽년, 황고 신수이 선생 등을 배향한다고.
구연서원 3선생 유적비.
3선생은 요수 신권(樂水 愼權,1501~1573), 석곡 성팽년( 石谷 成彭年, 1540~1594), 황고 신수이(黃皐 愼守彛, 1688~1768)) 선생을 말합니다.
관수루 앞에서 바라본 요수정과 수승대.
요수정(樂水亭)은 요수 신권(愼權,1501~1573)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들에게 강학을 하던 곳으로
요수(樂水)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라는 논어에서 나오는 문귀.
오호, 수승대(搜勝臺) 거북바위 ~!
영남 제1의 동천으로 이름난 안의3동의 하나인 원학동에 위치한 명승지로 화강암 암반과 함께 아름다운 숲이 어우러져 있어 예로부터 전국의 시인묵객들이 무릉도원으로 여기며 즐겨 찾았던 곳입니다.
거대한 거북바위와 구연(龜淵), 섬솔을 중심으로 한 자연풍경이 비경을 이루고 구연서원 관수루, 요수정, 함양재 등의 건축물이 우리나라 전통 명승의 정수를 보여주지요.
거북바위에는 사방에 시문과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특히 퇴계 이황과 갈천 임훈 선생의 시도 눈에 띱니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방문하면 꼭 이름을 남기고 싶어했던 수승대.
바위 중앙부에 큰 글씨로 "수승대( 搜勝臺)", 아래에 작은 글씨로 "신권 서(愼權 書)"라고 써있네요.
거북바위와 너럭바위 위를 흐르는 위천, 섬솔 등이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연출하는 수승대.
수승대의 너럭바위를 건너면 요수정(樂水亭).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몰로 자연암반을 그대로 초석으로 이용하여 지은 루각으로 요수 신권 선생이 풍류를 즐기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건립.
벼슬을 멀리한채 안빈낙도에 힘쓴 요수 선생의 모습을 여실히 보는것 같습니다.
요수 선생이 기거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함양재(涵養齋).
수승대에서 구연서원, 요수정, 함양재를 둘러보려니 "요수신선생장수지지( 樂水愼先生藏修之地)"란 말이 떠오르네요.
요수 선생이 학문을 닦고 거처하던 곳이라는 뜻으로 수승대 일대에 구연서당, 함양재, 요수정을 건립하여 후학들의 교육에 힘썼으니 가장 훌륭한 학자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거창 수승대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찬찬히 둘러봐야 하지만 오늘도 주만간산격으로 지나쳤네요.
요수 선생이 안빈낙도하며 후학을 가르치는데 힘쓰던 수승대 일원이 너무 관광지화 되고 있어 안타까움이 큰데 아무쪼록 옛것을 잘 보존하려는 거창군의 문화행정을 믿어 보고 싶습니다.
안의3동중 화림동에 있는 거연정, 농월정. 원학동에 있는 수승대.
거연정은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2006, 농월정은 함양군 안의면 농월정길 9-13, 수승대는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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