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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고개와 1968년 1.21사태강바람의 국내여행 2026. 3. 4. 16:23
2026.3/5(목) 1968년 1.21사태의 현장인 세검정 고개를 방문하였습니다.
벌써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네요.
중학생 시절, 초유의 1.21사태가 터져 잠시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성공적으로 공비들을 일망타진했는데요.
이 사건은 1968년 1월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의 124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 습격과 요인 암살 지령을 받아, 우리 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1월17일 자정을 기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하여 서울에 잠입하였습니다.
이들은 세검정고개의 창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나자, 수류탄과 기관단총을 쏘면서 저항하였는데요.
우리 군·경은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현장으로 출동하여 소탕 작전을 벌인 결과 124부대 소속 31명 중 29명을 사살하고 김신조는 투항하였으며, 한 명은 도주하여 북으로 넘어 갔습니다.
무장공비들을 일망타진하는데는 우씨 4형제의 신고정신 외에도 용감한 경찰들의 투철한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무척 컷다는 생각인데요.
침투 4일만인 1월21일 북한산 사모바위 아래에서 숙영을 마친후 밤 8시경 세검정로타리를 경유하여 침투중 정종수 경사가 처음 발견하고 수상히 여겨 이들을 끈질기게 따라 붙었으며 세검정고개에서 종로경찰서 최규식 총경에 의해 검문을 거부하던 무장공비들을 제지하던중 총격을 받아 두 분 모두 사망하게 되었지요.
사건 이후 세검정 고개에 최규식 총경(후에 경무관으로 추서)은 크게 동상이 세워진 반면 정종수 경사는 자그마한 순직비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11년 전인 2015년 4월, 불현듯 김신조 침투루트를 혼자 걸은 일이 있었습니다.
3회에 걸쳐 파주 임진강변 파평산 ~비학산~노고산~비봉~세검정고개까지 62km를 성공리에 완주하고 나니 최 경무관 동상 옆에 정종수경사순직비가 너무 초라하게 보이는거예요.
세검정로타리에서 무장공비를 만나 끈질기게 따라 붙으며 청와대 침투를 막은 일등공신인데 아쉽게도 작은 비석이 고작이라 넘 아쉽더군요.
그래서 관계 요로에 순직비 옆에 정종수 경사의 흉상이라도 하나 세워 줄것을 요청하였는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2년만에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된것이지요.
늦게나마 두 분의 투철한 사명감과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1968년 1.21 사태의 현장인 세검정 고개.

세검정고개에 있는 1.21사태때 무장공비들을 온 몸으로 막다가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정종수 경사 흉상과 순직비.

당시 종로경찰서장이던 최규식 경무관(총경에서 경문관으로 추서).
무장한 공비에 굴하지 않은채 완강하게 검문을 실시하다가 그들의 총기난사로 순직하고 말았지요.

정종수경사순직비 옆에 2017년 5월에 추가 건립된 정종수 경사 흉상.
세검정로타리에서 무장공비를 만나 끈질기게 따라 붙으며 청와대 침투를 막은 일등공신인데 작은 비석이 고작이라 아쉬웠는데요.
순직비 옆에 정종수의 경사의 흉상이 세워지니 늦게나마 제대로 예우를 해드리는것 같아 기쁩니다.

정종수 경사 흉상 외에 1.21 사태 관련 석조물도 세워졌네요.

2017년 5월에 새로 건립된 1.21 사태 관련 석조물.
자라나는 후대에 반공의식을 드높이는 좋은 교육자료가 될것 같습니다.

북한산 비봉을 바라보며 투철한 국가관과 반공의식를 다시한번 생각하며 당시 용감하게 맞선 군경, 시민들께 늦게나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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