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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의 천불천탑 운주사(雲住寺)를 찾아서강바람의 유적답사 2026. 7. 9. 08:52
화순의 천불천탑 운주사를 찾았습니다.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와 용강리 일대에 위치한 운주사는 불가사의한 천불천탑으로 유명한데요.
운주사의 초창시기는 발굴조사 결과 고려 중기 이후인 12세기 전후로 보고 있는데 누가, 언제, 왜, 어떻게 이 골짜기에 수많은 불상과 석탑을 세웠는지 알수없어 정말 신기하고 의문이 가득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풍수비보설에 의해 우리나라를 배의 형상으로 보고 배(舟)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선복(船腹) 에 무게가 실려야 하므로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것이며
또는 영남 쪽에 산이 많고 호남에는 적으므로 배가 동쪽으로 기울어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술을 써서 하루만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것이나 이는 풍수설이 민간에 까지 유행하던 후대에 덧붙여진 설일 것입니다.
이외에 미륵신앙도 널리 퍼져 있는데요.
노비와 천민들이 미륵이 도래하는 용화세계를 기원하며 신분 해방운동을 일으키며 그들의 염원으로 천불천탑이 이루어졌다는 설도 있으며
특히 황석영의 '장길산'에서는 천불천탑과 와불 이야기로 후미를 장식하여 운주사를 일약 미륵신앙의 성지로 부상시켰으나 소설은 소설일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조선 성종 12년(1481)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가 있고 또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석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한 장소에 많은 석탑이 다양한 형태로 건립된 예를 다른 절에서는 전혀 볼수도 없지만 방형탑, 원형탑과 3층, 5층, 7층, 9층 탑이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고 탑신에 새긴 문양도 여러가지여서 신비감을 더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많은 수의 석불과 석탑이 사라졌지만 일제시대에는 석탑 30기, 석불이 213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석탑 12기와 석불 70여기만 남아 있으니 불과 반세기를 거치면서 많은 석불과 석탑이 또 사라진 것이지요.
운주사의 돌부처들은 한결같이 납작하고 투박하니 못생겼는데요.
이는 중생대 백악기에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긴 응회암의 잘 떼어지거나 깨어지는 성질을 이용하여 불상과 석탑을 만들었기 때문으로 화강암처럼 정교한 조각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지요.
돌을 떼어낸 흔적이 있는 채석장과 미완성으로 일으켜 세우지 못한 와불에서 응회암의 성질을 잘 이용한 사례를 엿볼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찾은 운주사에서 미륵이 도래하는 용화세계를 염원하며 나라의 안정와 평화를 기원해 봅니다.

화순의 천불천탑 운주사를 찾아 갑니다.

이게 얼마만인가요?
답사가 취미인지라 30여년 전인 1994년에 처음 운주사를 찾은후 그후에도 여러번 왔었지만 10년만에 다시 찾으니 몰라보게 일신된 모습.

옛날엔 없었지만 10여년 전에 세운 운주사 일주문.
앞에는 '영구산운주사(靈龜山雲住寺)', 뒤에는 '천불천탑도량(千佛千塔道場)' 현판이 붙어 있네요..

절에 들어가는 길이 깨끗해지고 잘 정비된 모습.
사실 처음 찾을 당시인 30여년 전만해도 도암면 일대는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에, 너무나 낙후된 시골이었고 운주사 경내도 무질서하고 어지러운 환경이었지요.
그러나 2천년대 들어 계속된 중창불사와 정비사업으로 환경이 일신된바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건 골짜기를 따라 석탑 옆에 서있던 10여개의 전신주와 전깃줄을 모두 지중화하여 없앴다는 겁니다.
스님들의 노고 덕분에 오늘과 같은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을 만들었으니 참으로 노고가 크셨네요.

운주사에는 전설이 많이 전해져 오는데요.
전설에 의하면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풍수비보설에 의해 우리나라를 배의 형상으로 보고 배(舟)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선복(船腹) 에 무게가 실려야 하므로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것이며
또는 영남 쪽에 산이 많고 호남에는 적으므로 배가 동쪽으로 기울어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술을 써서 하루만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것이나 이는 풍수설이 민간에 까지 유행하던 후대에 덧붙여진 설일 것입니다.

일주문을 들어서 한참이나 걸어가 마주하는 운주사 전경.
운주사는 골짜기와 양쪽의 산등성이에 석탑과 불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신기하지요.

처음 맞이한 운주사 9층석탑(보물).
높이 10.7m로 운주사에서 가장 높고 커다란 암반을 지대석으로 삼았으며 고려 후기 작품으로 추정.

탑신부에 꽃이 새겨진 마름모꼴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하여 다른 곳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모습.

"가" 석불군.
9층석탑 오른쪽 층상응회암 수직단애 아래에 비로자나불 1구와 입상 5구를 기대어놓은 모습.
1984년 발굴조사때 맨 오른쪽 불상 대좌 뒷편에서 8~9세기로 추정되는 금동불상과 여래입상이 출토되었다고.

"나" 석불군.
중앙에 높이 4.75m의 대형 입상인 주존불이 있으며 좌우에 7구의 협시불이 배열되어 모두 8구의 석불군 .

9층석탑을 지나면 7층석탑 뒤로 보이는 운주사 전경.

운주사 7층석탑.
온전하고 늘씬한 모습을 한 7층석탑으로 높이는 9.6m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

운주사 쌍교차문7층석탑.
탑신에 특이한 쌍교차무늬(XX)와 마름모꼴 형태로 장식하고 잘 다듬은 방형기단 위의 탑으로 유례를 찾을수 없다고.

9층석탑, 7층석탑, 쌍교차문7층석탑을 지나면 광배석불좌상과 두 석불.

운주사 광배석불좌상(전남 유형문화재).
운주사 석불가운데 마애여래좌상과 함께 유일하게 광배가 표현된 불상이어서 가치와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요.
발굴조사때 주위에서 기와가 많이 나온 점으로 보아 예전에는 목조기와집에 모셔진듯 하다고.

"다" 석불군.
중앙에는 사각형 연화대좌를 갖춘 불좌상이 있고 그 양편으로 입상의 석불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

"다" 석불군의 오른쪽에 있는 석불입상 3구.
바위 절벽위에는 수직문 7층석탑이 있는 특이한 모습.

석불군 다의 절벽 위에 서있는 수직문 7층석탑.
현재 6층으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7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면석에는 수직문이 음각되어 있는 특이한 모습.

수직문 7층석탑에서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7층석탑과 북두칠성바위.
현재 북두칠성바위 일대는 탐방로 개량공사중.

운주사 석조불감 앞 7층석탑.
유독 7층석탑이 많아 이색적인데요.
초층탑신이 가늘고 홀쭉하여 불안감을 주는 석탑으로 고려시대에 조성한 백제계 탑의 형식.

운주사 석조불감과 원형 다층석탑.

운주사의 중심부에 있는 석조불감(보물).
부처님을 모신 돌집으로 건물 밖에 단독으로 있으며 2구의 부처님을 함께 모신 예는 우리나라에선 유례가 없는 일.
불감은 팔작지붕 형태로 그 위에 용마루가 조각되어 있는 목조건축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는 부처님 2구가 등을 맞댄채 배치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유례가 없는 특이한 형식.

석조불감에 모셔진 부처님(앞쪽).
손을 보면 석가모니불처럼 보이기도 하며 꽤 엄숙한 표정을 짓고 계시네요.

석조불감에 모셔진 부처님(뒷쪽).
앞쪽과 달리 두손을 모으고 있어 비로자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석조불감 뒷편에 있는 원형다층석탑(보물).
우리나라에선 유레가 없는 원형석탑으로 높이는 5.8m이며 연화탑 혹은 도넛탑, 호떡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요.

깔끔한 모습의 운주사.
원래의 운주사 법당은 일주문 밖에 있었다고 하며 지금 자리는 후대에 조성한 터입니다.

운주사 대웅전.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불공드리는 스님.

대웅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
지붕돌인 옥개석 상부가 일반적인 탑의 곡선 형태가 아니고 모전석탑 유형이며 제작시기는 고려시대.

대웅전 뒷편으로 공사바위 가는길에 있는 미륵전.

미륵전에 모셔진 미륵부처님.

운주사 발형다층석탑.
무척 이색적인 모습으로 일제때만 해도 원구형이 7개로 나타나지만 현재는 4개만 남아있는 실정.

"마" 석불군.
바위벼랑 아래에 주존돌부처가 여젓하게 앉아계시어 경건하기까지.

대웅전 뒷편에 있는 원반형석탑과 4층석탑.

뒷산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

30여년 전엔 자그마하고 초라한 암자에 불과했으나 그동안 끊임없는 중창불사로 2010년대 초에 현재와 같은 대찰을 이루었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운주사 마애여래좌상.
공사바위 아래 암벽에 새겨져 있는 유일한 마애불로 광배까지 갖춘 격식있는 불상.
(화순적벽 예약시간 때문에 공사바위에는 올라가지 못해 사진 3장은 2016년에 본인이 촬영한 옛 사진으로 대신)

2016년 가을, 공사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
운주사는 2010년 초에 거의 중창불사를 마무리되어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입니다.

2016년 당시 일주문도 세워지고 전신주도 모두 지중화되고 법당건립도 대부분 마무리된 상태.

시간이 촉박해도 와불은 꼭 보고 가야지요.
거북바위, 와불 가는 오름길.

거북바위에 세워진 교차문7층석탑과 5층석탑.
거대한 거북바위 위에서 경내를 바라보며 절을 지켜주는것 같습니다.

거북바위 아래의 감실처럼 조성된 곳에 가득 모여있는 "바" 석불군.
중앙에 주존불, 좌우에 입상이 있어 모두 9구의 불상이 있으며,
동쪽 산등성이에 5개의 불상군이 있는 것에 비해 서쪽 산등성이에는 이 석불군뿐.

위에서 바라본 거북바위 위의 석탑과 아래에 "바" 석불군.
예전에 잘 내려다 보였지만 점차 소나무가 커지면서 앞을 가려 조망이 다소 아쉽네요.

와불로 가는 오름길에 서있는 시위불.
와불을 지킨다고 하여 시위불 혹은 머슴부처라 불리기도.

오호, 드디어 와불~!
미완성으로 떼어내기 전으로 추정하는데 큰 와불은 석불좌상이고 작은건 석불입상.

이 와불이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있지만 믿거나말거나.ㅎㅎ

와불이 있는 능선에서 바라본 도암면 일원.
안쪽 마을에 중장터가 있어 옛날 스님들이 물건을 갖고와 서로 물물교환을 했다고.

석불과 석탑을 만들었던 채석장.
석재의 결을 따라 일렬로 구멍을 내고 쌔기를 박아 돌을 쪼개어 낸 흔적이 선명합니다.

운주사 칠성바위와 7층석탑.

7개의 둥근 바위가 지름이 3m 내외로 배열상태를 보아 북두칠성석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나 7층석탑의 옥개석일 가능성도 있다고.

칠성바위 앞에서 미륵이 도래하는 용화세계를 염원하며 나라의 안정와 평화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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