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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박9일간 삼면 바다를 끼고 국토 일주여행기 ---- (6)강바람의 국내여행 2013. 8. 17. 22:01
* 여행 8일째인 2013.8/4(일), 아침 일찍 영광굴비로 유명했던 법성포를 찾았습니다.
법성포는 한때 서해안 최고의 항구도시였으며 영광굴비 산지는 물론 우리나라 최초 불교 도래지로도 유명한 곳이지요.
* 언덕에 올라 법성포를 내려다 봅니다.
법성포는 서해로 부터 내륙으로 약 2km 이상 들어온 포구로서 포구가 깊고 넓어 안전하게 배를 대기에 좋았고 조기를 말리기에도 알맞은 기후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근래 조기산업이 시들해지고 조깃배도 줄어들자 넓은 포구를 간척사업으로 메꾸어 버리니(사진의 중앙 부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네요.
앞으로 이런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서 또 발생할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 그래도 법성포에 왔으니 굴비는 먹어봐야지요.
2인 밥상에 45,000원 짜리인데 조기탕, 굴비구이에 부서, 게장 등 제법 먹을만 하더군요.
* 이번엔 법성포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 불교도래지를 답사하였습니다.
* 서기 384년, 백제 침류왕때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중국 동진을 거쳐 부처님과 불경 등을 갖고 이곳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래하였다고 하는데요.
그는 불갑사를 짓고 나주 불회사를 지은후 서울로 올라 갔다고 전합니다.
* 서해에서 법성포로 들어오는 물길을 바라봅니다.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저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들어왔다는 얘기지요. ㅎㅎ
* 고창땅으로 차를 달려 먼저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 위치한 무장읍성(茂長邑城)을 찾았습니다.
무장읍성은 1894년 동학혁명때 혁명군이 입성하여 3일동안 머물기도 했는데요. 일제때 무참히 파괴된후 읍성안에 마을과 초등학교가 들어섰는데 몇년전부터 복원계획에 따라 마을과 학교를 이주시킨후 서서히 발굴과 복원을 진행중입니다.
* 무장읍성안에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무장객사.
* 조선 선조 14년(1581) 건립 된 무장현의 객사로 주관, 좌익헌, 우익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관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한 위엄있는 건축물이지요.
* 객사 축대의 모서리에는 꽃을 담은 예쁜 화병을 돋을새김하여 눈길을 끕니다.
* 읍성안 느티나무 노거수 아래에 줄지어 서있는 선정비들.
* 옛날 초등학교 자리에 덩그렇게 남아 있는 무장동헌.
* 소낙비를 맞으며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고인돌을 찾아갑니다.
전형적인 북방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사진의 키 큰 고인돌은 예전에는 농가 안에 있어 주인의 허락을 받아 대숲에 둘러싸인 장독대 옆에서 보았지요.
(오른쪽 목재난간이 농가 있던 자리)
대나무 숲과 장독대와 고인돌이라. 아주 멋진 궁합인데 몇년만에 다시 방문해보니 농가를 이주시키고 고인돌 공원으로 만들었네요.
깨끗해지긴 했으나 정겨운 맛을 잃어 이또한 아쉬움이 남습니다.ㅎㅎ
* 다음 방문지는 동학혁명지도자 전봉준 장군 생가터.
1855년, 전봉준 장군이 이곳 고창군 죽림리 63번지 당촌마을에서 태어나 13살까지 살았던 집입니다.
이후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로 이주하여 농사일과 서당 훈장 일을 하며 가난하게 살았는데 각종 수탈에 분노하여 고부 관아를 습격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의 불을 당기게 되지요. 물론 정읍 고택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한편 동학혁명군이 최초로 봉기선언문인 창의문을 발표한 곳은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로 알려져 있지요.
* 고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부안땅!
줄포를 거쳐 곰소만 북쪽에 있는 곰소염전을 찾았습니다. 신안에서 소금채취하는 장면을 구경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곰소에서도 보기가 어렵네요.
* 부안땅에서 고즈녁한 사찰을 보려면 개암사(開巖寺)를 찾아야 되지요. 입구의 작은 다리에서 절마당까지 너무나 싱그러운 절길을 걸어갑니다.
* 울금바위 아래 울창한 숲속 양지바른 곳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개암사.
절터는 원래 변한의 왕궁터였으나 백제 무왕 35년(634), 궁전을 절로 고쳐 개암사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개암사 대웅전은 조선 중기대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다포식 건물(보물 제292호).
절 뒷편의 멋지게 생긴 울금바위에는 석성이 있는데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지가 된 주류성으로 추정하고 있지요.
* 대웅전내 삼존불 위로 화려하게 조성한 닫집이 있는데, 닫집안에는 아홉마리의 용이 뒤얽혀 물을 토해내는 모습을 하고 있어 아주 이채롭습니다.
* 그리고 대웅전안 천정과 벽체에는 열네마리나 되는 유난히 많은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개암사에서만 볼수 있는 아주 이색적인 장면이지요.
놀랍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더 한 개암사입니다.
* 부안땅을 지나 계속 북쪽으로 달리면 나타나는 동진강(東津江).
반갑습니다. 이렇게 동진강을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네요. 동진강을 건너면 김제땅이지요.
동진강은 정읍 내장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정읍, 태인을 거쳐 김제평야를 촉촉하게 적시면서 서해로 흘러가지요.
원래는 구불구불 자연하천이었는데 일제부터 개수공사를 하여 거의 직선화되었다고 합니다.
* 동진강을 건너 원평천이 흐르는 죽산교 다리에서 전북 김제시 죽산면 소재지를 바라봅니다.
죽산은 김제평야의 중심지라고 할수 있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광활한 김제평야를 보게 됩니다. 감격스럽네요!
*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구. 일본인농장 사무실 건물.
1926년, 서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때 죽산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하시모토의 농장사무실 건물입니다.
하시모토는 1911년부터 동진강 일대의 개간지를 불하받아 간척사업을 하고 또 농토를 마구 사들여 죽산면 농토의 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한반도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인물이 되지요.
이 일대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로도 유명합니다. 조정래는 아리랑에서 죽산면과 내촌면 일대를 무대로 일제시대 우리 민초들의 수탈과 소작, 징용, 독립운동 등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 구, 일본인농장 사무실 옆에 있는 창고 용도의 일본식 가옥.
* 그런데 일본인농장 건물 옆에 웬 비석!
바로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하시모토 나카바 송덕기념비"이군요.
이 비석이 무슨 사유로 건립되어 아직까지도 굳건히 터를 지키고 있는지 알수가 없네요??
* 잘 가꾸어진 가로수길을 따라 김제평야를 지나갑니다.
원래 서해안에 접한 동진강, 만경강 유역은 1900년대 초만 해도 대부분 황량한 불모의 땅이었다고 합니다. 일제가 러일전쟁이후 이 일대에 대해 본격적으로 간척사업과 수리사업을 전개하면서 새로운 농업지대로 변모한것 이지요.
그러니 이 일대 평야가 모두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민초들의 피땀으로 이룩해낸 간척사업의 결과물입니다.
* 이곳은 죽산면을 지나 광활면(廣活面).
농토가 얼마나 넓었으면 광활면이라는 지명이 이름붙었겠습니까?
1920년 일제강점기에 쌀 생산을 위해 광활방조제를 축조, 간척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광활한 농토이지요.
* 가없이 펼쳐진 김제평야. 하늘과 땅이 일직선으로 맞닿은 지평선을 볼수 있는 곳.
그래서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는 가을철이면 지평선 축제가 열린다지요.
그런데 이곳을 바라보며 쨍한 마음이 드는건 무슨 이유일까요? 풍요의 상징일수도 있지만 일제때 수탈의 대명사가 된 곳이니 우리 민초들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가슴이 저려 옵니다.
* 지금보아도 잘 만들어진 수리시설. 한 여름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많은 물을 흘려보내고 있네요.
일제는 동진강, 만경강 유역의 간척사업과 개수사업을 통해 농토를 넓히면서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섬진강 물을 끌어 들이기도 했지요.
섬진강 상류인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 저수지(옥정호)를 만든후 그 물을 도수로를 통해 접읍시 칠보면의 동진강 상류로 흘려보내 김제평야에 물을 댄겁니다.
남해로 흘러가는 물을 서해 김제평야로 돌린거지요. 정말 주도면밀한 놈들이예요. ㅎㅎ
* 넓은 평야 가운데 몇가구씩 있는 농가들이 그런대로 부유해 보여 다행스럽습니다.
* 죽산면, 광활면 평야를 지나 동진강과 만경강이 합치는 진봉반도의 심포항을 찾았습니다.
옛날 아주 성황을 이루던 항구였는데 요즘 새만금개발권역에 들면서 폐항의 위기에 처해졌네요. 앞으로 심포항의 장래가 걱정됩니다.
* 심포항에서 가까운 진봉면 심포리에 자리한 망해사(望海寺).
만경강 하구에 자리하여 멀리 고군산열도를 바라볼수 있는 절인데요. 이 절도 새만금개발권역에 속해 앞으로 귀추가 염려되는 실정입니다.
* 망해사에는 옛날 진묵대사가 지었다는 낙서전이 그런대로 오랜 된 건물로 보입니다.
* 절 뒷편에 있는 진봉산전망대에 올라 멀리 서해 고군산열도(새만금방조제 방향)로 흘러가는 만경강(萬頃江)을 바라봅니다.
만경강은 전북 완주에서 발원하여 익산, 김제, 옥구를 거쳐 서해로 흘러가지요. 김제평야의 젖줄인 고마운 강입니다.
* 상류쪽의 만경강 풍경인데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좋으네요. 강 건너편은 군산,옥구이지요.
*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지도를 살펴볼까요?
검은 선을 따라 차를 따고 부안과 김제를 거쳐 군산으로 올라 갔는데요. 동진강과 만경강 유역의 드넓은 평야는 대부분 일제강점기때 간척사업으로 얻은 땅이라고 합니다. 부안 동진면, 계화면, 김제 죽산면, 광활면, 진봉면, 만경읍, 옥구 회현면 등이 대부분 간척지라는 거지요. 우리 민초들의 피땀이 서린 곳이지요.
* 김제에서 만경강을 건너 옥구평야를 바라보며 군산시 임피면을 찾아갑니다.
임피를 찾은 이유는 장편소설 "탁류"를 쓴 채만식의 생가가 있고, 일제때 지은 아름다운 임피역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간이역, 임피역사(臨陂驛舍)!
임피역은 1912년 군산선의 간이역으로 문을 엽니다. 당시 일제는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군산선을 건설하였는데, 임피역은 수확한 쌀을 군산항으로 수송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간 간이역 역할을 담당했지요.
현재의 역사는 그 당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서양의 간이역과 일본식 가옥을 결합시킨 독특하고 멋진 역사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임피역사 안의 역명안내판 모습.
*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더욱 정겨운 임피역내 철길 풍경.
* 역사 안쪽에는 1934년 신동아에 발표한 채만식의 자전적인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을 그린 조형물이 있는데요.
레드메이드 인생이란 기성품 인생이란 뜻으로 좁게는 식민 치하의 지식인, 넓게는 조선 전체의 삶을 가르킨다고 합니다. 채만식은 이 작품에서 자조적인 풍자와 반어법을 통해 지식인 실업자의 삶과 당시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지요.
* 임피역사 앞에 있는 옥구농민항일항쟁기념비.
1927년 일본인 지주들의 악랄한 소작료 착취에 항거하여 일으킨 조직적인 항쟁으로 많은 농민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고 합니다.
* 군산땅은 최근에도 방문한 적이 있어 그때 방문치 못한 개정면 발산리 소재 발산초등학교를 찾아 갑니다.
이곳은 원래 일본인 미치야의 농장이었는데 해방이후 농장은 폐쇄되고 1947년에 초등학교가 설립되었지요.
* 일제때 이곳에 넓은 농장을 갖고 있던 미치야라는 일본인이 제 정원을 꾸미기 위해 전라도 이곳저곳에서 옮겨다 놓은 석조문화재가 있는데요.
다행히 당시의 석조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지 않은채 교사 뒷편에 그대로 보존되어 눈길을 끕니다.
뒷편에 있는 5층석탑은 완주 봉림사터에서 옮겨온 고려때 것으로 보물 제276호.
* 운룡문이 가득한 석등도 완주 봉림사터에서 옮겨온 고려초기의 작품인데 전체 높이가 2.5m 나 되며 보물 제234호.
* 금강하구둑을 건너 충남 서천땅으로 건너갑니다.
*군산항에 비해 아주 쓸쓸한 장항항 모습.
* 옛날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 사진이 단골로 등장했던 구.장항제련소의 굴뚝.
높은 굴뚝은 한때 산업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요. 일제시대인 1935년에 건설되어 한때 금을 생산하던 장항제련소는 1966년 기능을 상실한후 전기에 관련된 전기동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방문 당시 폐허상태로 보아 모두 문을 닫은것 같았습니다.
* 구, 장항제련소 앞 장암리 마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금속 오염지역으로 언론에 자주 보도되었던 곳이지요.
조만간 토지보상후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킬 모양입니다. 온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는 그날이 올때까지 쉬임없이 기도하렵니다!
* 장항선의 종점인 장항역을 보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찾아보니 실망스럽게도 근래에 지은 새 건물.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구. 장항역은 금강쪽에 있는데 현재는 화물역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5년전에 지은 새역이 바뀐 장항역이라고. 아뿔사!
* 신.장항역 바로 앞은 아직 개발않된 농촌지역. 현대식 역사와 대조적이라 어리둥절하네요.
* 지도를 보니 구.장항제련소와 장항항 옆에 있는 마을에 구.장항과 구.장항역이 있고 신.장항역은 북쪽으로 3~4km 떨어진 곳에 새로 만들어 놓은겁니다.
그리고 장항선의 종점은 장항역이 아니고 몇년전 금강을 건너 군산 대아역과 연결시켜 놓았더군요.
아, 머리가 아픕니다. 제가 그동안 이곳 장항을 너무 등한시한 것 같아요.
장항도 옛날의 장항이 아니고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이후 몰라볼 정도로 많이 발전했네요. 진짜 인~정!
* 장항에 대한 답사는 아쉬움이 크네요. 미련이 있어야 또 방문하게 된다는 희망을 갖고 서천을 떠납니다.
서천을 지나 보령땅 주포면 보령리에 도착하여 고려때 쌓았다는 보령읍성(保寧邑城)을 답사하게 되었습니다.
읍성은 남문과 일부 성곽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져 버렸는데 사진의 건물은 읍성 남문인 해산루(海山樓)이며 현판은 조선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의 친필이라고 전해집니다.
* 보령읍성은 옛날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안에 140여칸의 관아 건물이 있었다는데 모두 소멸된채 지금은 보령중학교와 주포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더군요.
보령읍성의 복원을 기대해봐도 좋을까요? 너무나 사업규모가 커서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단~념!
* 보령방조제를 건너며 오천항(鰲川港)을 바라봅니다.
이곳은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옛날 서해에서 뱃길을 따라 광천까지 오가던 수로였지요.
왼쪽 언덕에는 조선시대 충청도수군사령부가 있던 오천성이 있구요.
* 보령방조제를 건너 홍성 남당항으로 향합니다.
* 홍성방조제와 서산방조제를 건너 서산시에 접어드니 간월암이 손짓을 합니다.
서해가 10m 이상 조수간만의 차가 있다더니 물속에 있어야 할 간월암이 썰물로 바닷물이 빠지며 마치 하늘에 떠있는것 같습니다.
* 오늘 일정을 다시 음미해 봅니다.
영광 법성포를 시작으로 고창 무장읍성, 부안 개암사를 거쳐 김제평야로 올라 왔지요. 드넓은 김제평야와 심포항과 망해사를
답사한후 군산으로 올라와 임피역과 발산초교 유적을 둘러 보았습니다.
군산을 거쳐 충남으로 들어와서는 장항과 보령, 홍성을 경유하고 서산방조제를 거쳐 무사히 서산 시내에 도착, 숙소를 정하고
하루를 마감할수 있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고생도 많았지만 처음 가보는 동진강, 만경강 어귀에서 많은 감동을 받기도 했지요. 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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