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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 목릉(穆陵) 답사기 --- 조선 제14대 선조, 원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릉.강바람의 유적답사 2017. 9. 10. 22:10
2017.9/2(토) 동구릉을 둘러보면서 인상 깊었던 목릉(穆陵) 답사기를 올립니다.
목릉은 조선 제 14대 선조(宣祖, 1552~1608)와 원비 의인왕후(懿仁王后,1555~1600) 박씨,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 1581~1632) 김씨의 릉입니다.
앞에서 볼때 왼편이 선조, 가운데가 의인왕후, 오른쪽이 인목왕후의 릉인데요.
목릉이 주목되는 이유는 같은 주산에서 내려온 동원이강형(同原異岡形) 릉이라는 점, 또 하나는 조선 왕릉중 릉역이 가장 특이하면서도 아름답다는 점입니다.
조선 518년 동안 모두 44기를 조영하였다는 왕릉.
후대에 까지 길이길이 잘 물려주어아 할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 실로 오랫만에 동구릉을 찾았습니다.
* 그동안 동구릉은 수차례 답사한바 있었으나 오늘은 목릉에 대해 세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 세계문화유산에 걸맞게 릉역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예술작품인 목릉.
홍살문을 들어서면서 왼편이 선조, 가운데가 원비 의인왕후, 오른쪽이 계비 인목왕후의 릉입니다.
(사진은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 릉)
* 넓은 잔듸밭에 정자각, 수복방, 수라청이 균형맞게 서있고 그 뒤에 그윽하게 배치된 선조 릉과 원비 의인왕후 릉.
릉 조영순서는 1600년(선조 33) 원비 의인왕후,
1608년(선조 41) 선조,
1632년(인조 10) 계비 인목왕후.
* 먼저 선조 릉 답사.
급한 언덕(사초지)을 올라서면 나타나는 우람한 석물들.
* 무인석, 문인석 등 제법 절도있게 배치 된 선조 릉.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 조성되어 석물의 예술적 가치는 많이 떨어진다고 하네요.
* 장명등과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가 잘 갖추어진 선조 릉.
임진왜란을 막지 못하고 세자 책봉문제로 당쟁이 격화되는등 가장 무능했던 군주로 평가되어온 선조.
어쩌면 작금의 우리 대내외 실정을 보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병풍석과 난간석이 갖추어져 위엄있어 보이는 선조 릉.
* 병풍석에 조각되어 있는 십이지신상과 구름무늬.
* 체구는 우람하나 조형미가 부족해 보이는 무인석.
* 선조 릉에서 오른편으로 바라본 원비 의인왕후(義仁王后,1555~1600) 박씨의 릉.
선조 릉에 비하면 다소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
* 원비 의인왕후는 후사없이 46세에 승하.
선조보다 8년 일찍 승하하였으며 임진왜란 직후였기에 릉 조성에 여력이 부족했다고.
* 같은 릉역이라지만 선조 릉에서 조금 떨어져 동쪽에 위치한 계비 인목왕후 릉.
1632년(인조10), 목릉에서 가장 늦게 조영되었지요.
* 인목왕후 릉 앞은 현재 발굴중 - 원래 이 자리에는 가정자각(假丁字閣)이 있었다고.
정자각이 이미 있는 릉에 부묘할때는 흉례제사를 지내기 위해 가정자각을 세웠다고 하는데요.
3년 동안 존속시키다가 길례로 바뀌면 신주를 종묘에 봉안한후 철거했다고 합니다.
* 원비 의인왕후처럼 병풍석 없이 소박한 모습의 계비 인목왕후 김씨 릉.
1606년 선조 유일의 적통인 영창대군을 낳았으나 광해군에 의해 폐서인이 되고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등 곤욕을 치루었는데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어 대왕대비에 올랐었지요. 참으로 한많은 여인입니다.
* 인목왕후 릉에서 바라본 선조 릉.
참도로 정자각과 이어진 모습입니다.
* 오늘 답사는 손녀들과 함께. "지우야, 고개 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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