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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병풍바위에 얽힌 아픈 역사강바람의 유적답사 2017. 12. 1. 17:45
2017.12/1(금) 인왕산에 올라 치마바위, 병풍바위를 답사하였습니다.
치마바위는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비 단경왕후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며,
그 옆의 병풍바위에는 일제때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 등의 글자를 크게 새겨 우리 민족을 억압하던 흔적이 남아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서울 시내에서 잘 보이는 인왕산 병풍바위에 새겨 놓았던 글자들은
해방된 이후 1960년대에 지워 버렸는데 글자를 없애기 위해 돌을 쪼아낸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지요.
「세종마을역사문화산책(2014)」'에 수록된 자료에 의하면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전시동원체제를 가속화하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하면서 동아오족(東亞五族 : 중국,만주,대만,몽골,조선)의 청년들이 신동아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단결을 위해
1939년(소화14년) 경성의 부민관과 경성운동장 등지에서 5,099명이 참석하는 '대일본청년단' 회의를 개최하고,
3천원의 경비를 들여 인왕산 병풍바위에 미나미총독의 휘호로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 등의 글자를 새겼다.
오른쪽 첫째 열에는 '東亞靑年團結(동아청년단결)' - 사방 2.73m 크기
둘째 열에는 '皇記二千五百九十九年九月十六日(황기이천오백구십구년구월십육일)'
세째 열에는 '朝鮮總督 南次郞(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라는 큰 글자를 새겼다.
다시 약간 왼쪽으로 사이를 띄고 한 열에 28자씩 네줄로 대일본청년단회의 개최사실과 기념각자를 남기는 연유를 한자로 잔뜩 새기고 그 말미에는 '朝鮮總督府 學務局長 塩原時三郞(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 토키사부로)'라고 새겼다."
「매일신보(1939.9.28)」기사에 의하면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이라는 여섯 글자를 인왕산에 새겨 동아청년이 굳게 악수하고 있다는 것을 영원히 표시하게 되었는데 워낙 한 글자를 4방 10척이나 되게 크게 새기는 것이므로 공사의 신중을 기하고자 이것을 입찰시키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을 착수하였는데 약 3천원이 들고 완성에 까지는 1만원이 들게 됨으로 아무래도 명년까지 공사가 될터인데 이것이 완성되는 날에는 경성시가 어디서든지 치어다 볼수 있는 일대위관이 되리라고 한다.
* 서울 중심부에서 잘 바라보이는 인왕산.
* 인왕산 석굴암에서 바라본 치마바위, 병풍바위 전경.
* 치마바위(사진 오른편)는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비 단경왕후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며,
그 옆의 병풍바위(왼편)에는 일제때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 등의 글자를 크게 새겨 우리 민족을 억압하던 흔적이 남아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유심히 살피면 바위에 새긴 글자를 쪼아낸 흔적이 보입니다.
* 일제때 새긴 글자들을 해방후 지어버린 흔적들.
큰 글자는 가로,세로가 2.73m나 되었다고.
* 왼편은 작은 글자, 오른편은 큰 글자 흔적.
* 우리 민족을 전쟁에 내몰기 위해 역사 어린 인왕산의 바위까지 훼손한 일제의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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