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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과 성내유적을 찾아서 --- (1)대남문, 어영청유영, 금위영유영, 상창터, 행궁터강바람의 유적답사 2019. 4. 5. 06:52
2019.4.29(화) 모처럼 맑은 날을 맞아 북한산을 찾았습니다.
오늘 북한산을 찾은 이유는 산행도 중요하지만 북한산성과 성안에 있는 유적지를 둘러보고자 함이지요.
최근 성내 유적지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데요.
행궁터는 경기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수년동안 활발하게 발굴을 진행하여 내외전 자리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고,
대성암이 있는 어영청유영터는 발굴을 진행중이나 지지부진한 모습이며,
중흥사는 만세루, 전륜전 등 대부분의 전각을 완성하여 1세기 전 면모를 거의 되찾은 느낌입니다.
등산하며 답사한 주요 코스는
구기탐방센터~문수사~북한산성 대남문~어영청유영터(대성암)~금위영유영터~상창터~행궁터~중흥사~산영루~중성문~역사박물관~대서문~수문까지 약 10km 구간.
오늘은 맑은 날씨속에 아름다운 북한산도 실컷 보고 그동안 궁금하던 유적지도 직접 살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진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사진설명으로 대신합니다.
* 북한산 산행을 위해 이른 아침, 구기탐방지원센터 앞을 지납니다.
* 오늘 코스는 대남문을 넘고 성내계곡을 걸어 대서문 방향으로 하산할 예정.
* 오르다 보면 왼편으로 보이는 비봉과 사모바위, 고찰 승가사.
비봉 위에는 신라 진흥왕순수비(지금은 모조비)가 있고,
사모바위 아래에는 1968.1.21 사태때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이 마지막 숙영하던 암굴이 있습니다.
* 대남문을 향해 오르다가 만나는 마지막 깔딱고개.
* 1시간여 만에 드디어 문수봉과 보현봉 사이의 안부가 보이네요!!
* 저 높은 곳에 북한산성 대남문이 있지요.
* 왼편으로 바라보이는 문수봉의 하얀 암반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네요.
정말 멋집니다.ㅎㅎ
* 드디어 고찰 문수사에 도착.
어려서 부터 어머님을 모시고 이 절을 다녔으니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렀네요.
감사합니다.
* 문수사에서 바라본 문수봉.
아기자기하고 기묘한 바위가 가득한 문수봉, 금강산이 부럽지않네요.ㅎㅎ
* 드디어 북한산성 대남문에 도착!!
조선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 완공된 이후 영조 41년(1765) 영조가 행궁을 방문하였다가 이 문을 통해 환궁함을 계기로 성문을 크게 중수하고 북한산성의 정문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 대남문에서 바라본 보현봉.
서울 어디에서나 바라보이는 보현봉의 경쾌하고 멋진 모습입니다.
* 대남문에서 바라본 삼각산!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의 세봉우리가 마치 쇠뿔처럼 보인다 하여 삼각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었지요.
삼각산은 좁은 의미의 북한산이요, 북한산은 넓은 의미로 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 대남문에서 바라본 북한산성.
300년전, 외침을 받으면 먼곳으로 피난가지 않고 모든 백성들과 함께 이 성으로 들어와 지구전을 하려고 쌓은 성곽입니다.
* 산성 안 계곡에 이르니 봄기운은 완연하나 아직도 얼음이 가득.
* 대성암이 위치한 넓은 터는 북한산성을 쌓고 지키던 삼군문(三軍門)의 어영청유영의 병영이 있던 곳.
수년째 발굴, 정비가 진행되다가 현재는 중단상태.
* 옛 모습 그대로인 대성암 요사채.
예전엔 옌세 많으신 노보살이 계시어 이 앞을 지날때마다 잠시 쉬며 얘기도 나누곤 했었는데 근황이 궁금합니다.
* 요사채에 걸린 현판 - "시작할때 그 마음으로".
곰곰 생각하며 대하니 뭔가 심오한 교훈을 얻어가는것 같습니다.
* 대성암에서 바라보면 남쪽으로 보국문, 대성문을 연결하는 능선.
* 어영청유영터에서 계곡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나타나는 금위영유영터의 석축.
* 삼군문의 하나인 금위영유영의 병영이 있던 자리로 예전에는 여러채의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의 빈터로 방치되어 있는 상태.
* 금위영유영터에 있는 금위영이건기비.
숙종 41년91715) 소동문 안에 있던 금위영유영을 지금의 자리로 옮긴 내력을 기록한 비로 북한산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주고 있습니다.
* 금위영유영터의 석축과 석누조.
* 다시 계곡길을 따라 내려가면,
* 급류에 무너진 상창터가 보이고,
* 이어 잘 쌓여진 상창터가 나타납니다.
* 상창터의 초석들.
* 상창터 뒷편의 큰 바위.
* 상창터의 "괘궁암" 각자.
활을 걸어 두어두는 바위라는 뜻이니 군사훈련에 매진하던 그 당시의 모습을 보는듯 하네요.
* 드디어 상창터 뒷편 상원봉 자락에서 만난 행궁터.
그동안 밀림속에 묻혀 있었는데 이런 모습으로 발굴되다니 놀랍습니다!!
1915년 7월의 집중호우때 유실된후 100년 여 방치되었다가 경기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수년째 발굴이 진행된 모습입니다.
* 유사시 임금의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북한산성 축성 이후 숙종 38년(1712) 완공했던 행궁(行宮)은 내전, 외전을 포함하여 124칸 규모.
* 행궁의 내전터.
당시 수해의 피해가 덜해 유구가 잘 보존되어 있는 내전터 모습입니다.
* 정면, 동쪽으로는 시단봉 위의 동장대와 마주하고 있는 모습.
내전 좌우측에 방이 있었던 증거로 온돌기초가 보이며 가운데에는 대청이 있었던 흔적이 보입니다.
* 내전으로 들어가는 대문의 장주형 초석.
* 내전의 측면 모습.
* 외전의 발굴은 완료되고 주변 정비가 진행되는 모습.
* 외전터의 솟은 흙부분은 온돌 자리.
* 앞으로 복원될 행궁 조감도.
1) 내전 2) 외전 3) 내전행각 4) 외전행각 5) 외대문 6) 석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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