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자호란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남한산성 법화사(法華寺)터강바람의 유적답사 2018. 12. 20. 15:17
남한산성 밖 깊은 산중에 있는 법화사(法華寺) 절터를 답사하였습니다.
위치는 경기도 하남시 상사창동 산 97이며 법화골에서 벌봉을 향해 오르다 보면 거의 8부 능선 쯤인 해발 410~435m 지점에 있는데요.
이 절터가 주목되는 이유는 1637년 병자호란때 청 태조 누르하치의 사위인 양고리(楊古利)가 이 부근에서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기 때문입니다.
양고리(1572~1637)는 만주 법화둔 사람이라 법화장군이라고 불렸다는데 병자호란에 참여하여 우리 측과 전투시 사망한 사람으로 법화사란 이름은 그의 고향에서 따온 것입니다.
청나라가 종주국 행세를 할때만 해도 이 절은 사세가 뛰어나고 성지 대접을 받았을텐데 지금은 빈터만 남아 쓸쓸함만 더할뿐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구한말 즈음, 청나라의 간섭이 약해졌을때 인근 주민에 의해 소실되었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현재 법화사터는 부도 3기와 법당이 있었던 터가 거대한 바위 아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위가 귀한 남한산성 일대에 이렇게 거대한 바위가 있는것도 신기한 일인데 그 아래에 절터를 잡은 안목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컨데 예전부터 있던 자그만한 암자를 이용하여 크게 중창한후 법화사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른것 같습니다.
거대한 바위 아래에는 무슨 건축물이나 조형물이 서있었을것으로 추정되는 큰 주춧돌이 있고 법당이 있던 돌기단도 보입니다.
법당터 아랫쪽에는 부도밭 3기가 있는데 중간의 석종형 부도에는평원당선백대사(平源堂善伯大師)라고 새겨진 몸돌이 있고 아래 기단에는 매운당(梅雲堂)이라고 새겨져 있어 주인공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석조약사여래좌상 1구가 절터에 있었으나 경기도박물관으로 옮겨져 있고 약간의 발굴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호중이며
하남역사박물관에는 복제품을 전시중입니다.
* 하남시 상사창동 법화골에서 벌봉 자락에 위치한 법화사터를 찾아 갑니다.
* 남한산성 북문 아래이고 법화사 입구이기도 한 법화골.
예전에는 남한산성과 법화사에 의지하여 살아가던 큰 마을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법화골에서 계곡길을 따라 벌봉 방향으로 약 2km 정도 오르다 보면,
* 드디어 벌봉 8부 능선 쯤에서 나타나는 법화사 절터와 부도들.
왼쪽 높은 곳이 법당터, 오른편이 부도밭.
* 먼저 맞이한 법화사터 3기의 부도.
* 중간의 석종형 부도에는 평원당선백대사(平源堂善伯大師)라고 새겨진 몸돌이 있고 아래 기단에는 매운당(梅雲堂)이라고 새겨져 있어 주인공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 부도밭에서 경사지를 오르면 나타나는 법당터.
예전에는 대웅전, 요사채를 비롯하여 석탑도 있었을텐데 구한말에 소실되어 지금은 규모를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 무슨 주춧돌로 쓰였음직 한 커다란 돌도 보이며,
* 그 뒷편으로는 믿기 어려울만큼 거대한 바위군이 있어 음습할 정도.
중간의 작은 암굴은 지금도 기도처로 사용됩니다.
* 역사가 단절되어 자세한 내막을 알기 어려운 법화사터.
* 벼를 찧던 용도의 맷돌인듯.
* 부서진 석탑의 부재들이 흩어져 있기도.
* 오래된 느티나무만이 이 절의 역사를 말해 주는듯 합니다.
* 절터에서 조금만 오르면 봉암성(蜂巖城)이 나타나며,
* 봉암성 암문을 통해 남한산성 본성으로 들어갈수 있습니다.
* 하남역사박물관에 전시중인 법화사터 발굴 청동금강령.
'강바람의 유적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성과 성내유적을 찾아서 --- (1)대남문, 어영청유영, 금위영유영, 상창터, 행궁터 (0) 2019.04.05 문경 영강변 토끼비리, 석현성(石峴城), 고모산성(姑母山城) 답사기. (0) 2019.01.07 (3) 남해안을 따라 충무공 이순신 유적지 답사 --- 남해 관음포, 충렬사, 여수 해양레일바이크 (0) 2018.11.23 (2) 남해안 따라 충무공 이순신 유적지 답사 --- 통영 통제영, 충렬사, 미륵산, 남해 다랭이마을. (0) 2018.11.23 (1) 남해안 따라 충무공 이순신 유적지 답사 --- 거제 해금강, 외도보타니아. (0) 2018.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