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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을 찾아 떠난 서울 남산.강바람의 유적답사 2019. 12. 17. 10:52
서울 남산엔 역사의 흔적들이 많아 있는데 특히 일제 식민지의 잔재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눈길을 끕니다.
장충단비, 수표교 등은 우리의 역사이지만 통감부터, 통감관저터, 왜성대터, 노기신사터, 경성신사터, 조선신궁터 등은 일제 식민지 잔재들이지요.
조선시대에 목멱대왕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빌었던 남산은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지요.
일제는 남산의 소나무를 베어내고 벚나무를 수만그루를 심어 남산의 기운을 없애려 하였고 많은 부지를 영구 무상임대하여 일본인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한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산기슭에 통감부를 비롯하여 신사와 신궁 등 식민지배를 상징하는 시설을 건립하였으며
1939년에는 조선신궁 앞에 황국신민서사탑을 세우고 학병이나 징용으로 끌려가는 조선인에게 참배를 강요한바 있었지요.
2019.12/12(목) 남산둘레길을 걸으며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나름 의미있는 하루를 보낸것 같네요.
* 지하철 3호선, 동국대입구역에서 내리면 남산의 입구인 장충단공원.
* 장충단(奬忠檀)은 1895년 을미사변때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제단.
당시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홍계훈을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순직했는데 1900년 이들을 위해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온 곳입니다.
원래의 장충단은 신라호텔, 동국대 일부, 국립극장, 리틀야구장 등을 아우르는 큰 면적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규모가 대폭 축소된 실정이지요.
* 비석 앞면의 장충단 세 글자는 순종이 황태자 시절에 썼다고.
* 장충단공원에 있는 수표교(水標橋).
* 수표교는 우리나라에 몇 않남은 소중한 돌다리인데 원래 청계천 상류에 있었으나 1965년 복개공사때 이곳으로 옮겨 왔지요.
* 조선 테종때 세운 돌다리인데 상당히 견고하고 균형잡힌 모습.
* 남산 제2호터널 앞을 지나,
* 유관순열사 동상도 잠시 살펴본 후,
* 언덕길을 올라 국립극장에 도착.
* 국립극장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남산들레길.
* 중구 필동 방향의 둘레길을 걸으려니 단풍철은 지났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남산.
* 날씨가 맑으니 남산타워도 잘 보이고,
* 일제 식민지를 보려면 꼭 방문해야 하는 통감관저터.
(서울 중구 예장동 2 - 1)
한때 안기부 남산청사가 있기도 했는데 원래는 이토히로부미 등 조선 침략을 총 지휘하던 통감이 거처하던 곳입니다.
* 근래 통감관저터에 조성한 '위안부 기억의 터'.
*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기억의 터.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할머니 247명의 성함과 함께 할머니들의 증언을 새겨 두었는데요.
역발상으로 일본 통감관저터에 세움으로써 지우고 싶은 역사지만 그 역사를 다시 세우는 것은 오히려 숭고한 일이 아닐수 없음을 일깨우고 있네요.
* 위안부 터의 '세상의 배꼽'.
배꼽 주변에 놓인 자연석들은 전국, 전 세계에서 마음을 모아온 할머니들과 국민을 뜻한다고.
* 이곳은 식민지 시절 통감관저가 있던 곳.
1910년 8월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
* 거꾸로 세운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현판.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1860~1939)는 고종황제와 대신들을 겁박하여 일사늑약을 강요하는 등 병합의 발판을 닦은 자.
일제는 그 공으로 남작작위를 내리고 이곳 통감관저에 동상을 세웠습니다.
* 동상 이름은 남작하야시곤스케군상(男爵林權助君像).
관저터 옆의 느티나무 보호수 아래에 방치되어 있던 걸 가져다가 거꾸로 세운 겁니다.
* 다시 남산둘레길을 걸으면,
* 둘레길에서 볼수 있는 와룡묘(臥龍廟).
와룡묘는 제갈량을 모신 사당이나 제갈량 외에도 관우, 단군, 산신들을 모시어 중국의 신앙과 우리의 토속신앙이 합쳐진 독특한 형태라고 합니다.
* 파초우가 새겨진 조지훈(趙芝薰, 1920~1968)시비.
* 강풍으로 쓰러진 나무에 생명을 불어 넣은 '한국인의 미소'
* 남산케이블카 승강장 부근에서 만난 한양공원(漢陽公園) 비석.
1910년 일본인들이 무상임대받은 남산에 공원을 조성하고 붙인 이름으로 2002년 케이블카승강장 부근 숲에서 발견 되었다고.
* 케이블카를 타고 싶었지만 날씨가 좋으니 계속 걷기로.
* 다시 남산 위로~~!!
* 백범광장에는 백범의 흔적들이 즐비!
"見利思義見危授命(견리사의견위수명)"은 안중근 선생이 이토를 사살한후 옥중에서 쓴 것이라고 합니다.
"이로움을 보았을때에는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에는 목숨을 바치라"는 뜻.
* 백범광장 건너편 남산식물원이 있던 곳에는 몇년째 한양도성 복원공사중.
* 일제때 조선신궁을 세우며 상당부분 훼손된 한양도성을 복원하는 모습.
* 일제는 1925년 조선신궁을 이곳 남산자락에 건립한후 우리 민족에게 참배를 강요했었지요.
조선신궁 자리는 현재 성곽복원과 함께 성곽체험관 공사중.
* 계단을 따라 남산을 오르면,
* 앞으로 돌출된 잠두봉전망대.
* 서울 도심을 비롯하여 안산, 인왕산, 북악산, 보현봉, 삼각산이 한 눈에!
* 산아래 서울에니메이션센터, 숭의여대 일대는 일제때 왜성대(倭城臺)자리.
철거한 빈터가 1906년 일제가 건립한 통감부(統監府)터, 숭의여대는 경성신사터, 리라초교는 노기신사터가 있던 곳입니다.
* 조금만 더 오르면 남삼 정상.
* 목멱산(남산)봉수대.
밤에는 햇불인 봉화, 낮에는 연기를 피워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한양으로 신속하게 전달하던 통신수단.
* 남산 타워 앞 광장.
* 남산팔각정.
예전에는 국가를 수호하는 국사당(國師堂)이 있었는데 일제때인 1925년 조선신궁을 내려다 본다고 하여 인왕산으로 옮긴 아픈 역사가 있지요.
* 남산에서 바라본 동쪽 방향.
* 조망권을 대폭 살려 조성한 남산전망대.
* 서울도심은 발전이 멈춘듯 예나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이네요.ㅎㅎ
* 정상에서 다시 장충동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
* 남산에만 오면 못마땅한 한양성곽.
* 성곽하단부는 조선 초기에 쌓은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상부의 성첩(여장)부분은 복원한 상태가 국적불명 상태.
조속히 옛 모습에 근접한 재복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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