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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변신한 여주 영릉(英陵), 영릉(寧陵)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0. 12. 17. 18:17
새롭게 변신한 여주 영릉(英陵, 세종 릉), 영릉(寧陵, 효종 릉)을 다녀 왔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영,영릉을 방문해 보니 릉 진입 영역이 몰라볼 정도로 변신했네요.
최대한 옛 모습으로 환원시킨 겁니다.
확인해 보니 2009년 6월,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된것을 계기로 왕릉의 모습를 바로 잡기 위해 영,영릉유적종합정비사업을 추진했는데요.
3년여의 기간동안 종합정비사업을 시행한 후 잘 마무리하고 지난 2020.10/9 한글날에 새로운 모습으로 개방하였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도로를 따라 주차장에 진입한후 웅장한 정문을 통해 들어갈수 있었고, 정문 바로 옆에 있는 세종전에서 세종의 업적과 당시의 과학기구들을 볼수 있었는데요.
오늘 복원정비 결과를 보니 우선 영릉 주차장까지 이르던 도로 400m 정도를 폐지하고 걸어서 입장할수 있도록 길을 복원하였으며 넓은 주차장도 완전 폐지하고 그 자리엔 공원을 조성하며 세종대왕 동상과 당시의 여러 과학기구들을 배치하였더군요.
한 마디로 인위적인 시설들을 모두 없애 버리고 옛 모습으로 복원키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으니 그래서 예전보다 더 걸어야 하고 울창한 숲을 더 보게 되었습니다.
복원결과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그런데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요.
세종대왕 릉의 입구에 있던 옛 재실터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 다시 재실을 원형대로 복원하였는데요.
그럼 안쪽에 있는 기존의 재실은 어쩌란 말인가요?
기존의 재실이 1970년대 성역화 사업때 삼문, 행랑, 재방 안채만 복원하여 원래의 위치도 아니고 불완전 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이 복원을 하였겠지만 하나의 릉에 재실이 2개가 되고 말았네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노고가 정말 대단했으니 칭찬을 해주고 싶습니다.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의 릉.
하나의 봉분 아래 석실 2개를 붙여 왕과 왕비를 함께 안치한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입니다.
영릉은 1469년(예종 1)에 이곳으로 옮겨올때 봉분 내부를 석실에서 회격으로 바꾸어 조성하였고 석물중 망주석, 장명등, 석수, 석인은 단릉처럼 배치하였으나 혼유석만 2개를 설치하여 합장릉임을 나타냈으며
봉분 둘레는 난간석을 두르고 황석주를 받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
릉의 위치를 살펴보면 풍수지리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하였으며 좌우측으로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孝宗, 1619~1659, 재위 1649~1659)과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의 릉!
영릉은 처음 구리 동구릉에 릉을 조성하였으나 1674년(현종 14)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1674년 인선왕후가 돌아가자 왕후의 언덕을 아래에 조성하여 조선왕릉중 최초의 동원상하릉 형식이 되었습니다.
영릉은 효종의 무덤에만 곡장(曲墻)을 둘러 왕후의 무덤과 구별하였고 나머지 석물의 배치와 규모는 동일.
봉분에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고 황석주를 받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12지를 한자로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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