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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안 호조창터, 보국사터, 보광사터 현장확인강바람의 유적답사 2021. 2. 12. 11:09
북한산성 안 호조창(戶曹倉)터, 보국사(輔國寺)터, 보광사(普光寺)터에 대한 현장확인을 하였습니다.
현장확인 이유는 수년전 설치한 유적안내판들이 제 위치가 아닌 곳에 설치되었다는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지요.
지난 2021.1/12(화)에는 관계기관 합동으로 호조창터와 보국사터에 대한 현장확인을 실시하였고, 당시 눈이 내리면서 찾지 못했던 보광사터에 대해서는 2/11(목) 본인 혼자 현장확인을 하였습니다.
유사시를 대비하여 어공미를 보관하던 호조창은 경리청상창터 오른편의 장방형 석축 위에서 터를 확인하였고,
보국사는 보국문으로 올라가는 길의 산중턱에 막돌허튼층으로 쌓은 석축이 있으므로 큰 이견없이 터를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당시 눈이 내리면서 확인치 못했던 보광사터는 단독으로 현장확인을 하였는데요.
옛 기억을 되살려 찾아낸 보광사터는 대성문에 가까운 산중간길 아래에서 확인하였는데, 아늑한 지형 안에 꽤 넓은 면적의 빈터로 남아 있었으며, 막돌허튼층으로 쌓은 석축이 30m 가량 무너진채 남아 있고, 깨진 기왓장도 여러곳에서 발견되며
또한 어영청유영, 대성문, 금위영유영 등으로 통하던 옛길(지금은 사용치 않음)도 잘 남아 있어 보광사터의 실체를 가름케 합니다.
보국사터와 보광사터의 위치는 북한지의 북한도에 잘 나타나 있는데 보국사는 보국문 아래에, 보광사는 대성문 아래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북한지에 의하면 보국사는 금위영 아래, 보광사는 대성문 아래, 금위영은 보광사 아래에 있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금위영이건기비에 의하면 금위영유영을 보국사 아래로 이전하였다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자료들은 옛 터를 찾는데 좋은 근거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조선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을 쌓은 이후 수비 문제를 해결키 위해 산성 안에 대대적으로 사찰을 건립하였는데요.
숙종 38년부터 영조 10년 사이에 당초부터 있었던 중흥사 외에 용암사, 보국사, 보광사 등 10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가 건립되었지만 구한말 이후 일제 초기까지 거의 대부분 폐사가 된 역사가 있지요.
그후 일부는 재건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절터는 풀섶에 묻혀 역사가 단절된 상태입니다.
앞으로 할 일이 몇가지 있습니다.
우선 엉뚱한 곳에 가있는 유적안내판을 현장확인한 제 자리에 조속 이전설치되어야 할것이며,
네이버, 다음 등 포탈싸이트나 각종 지도에 잘못 표기되어 있는 유적지의 위치는 옳바르게 수정되어야 하는데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자세가 요청됩니다.
앞으로 북한산성 유적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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