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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부원군 한확(韓確) 묘소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0. 11. 13. 20:30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서원부원군 한확(韓確)의 묘를 찾아 보았습니다.
한확(1403~1456)은 청주한씨로서 성종의 외조부이자 명나라 영락제, 선덕제의 처남이며 명나라의 관료이자 조선의 대명외교통!
우리 역사상 이보다 더 화려한 신분이 있을까요?
그는 조선 전기에 판중추부사, 좌찬성,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덕종의 비(妃) 소혜왕후(昭惠王后)의 아버지이자 , 성종의 외조부가 됩니다.
소혜왕후는 TV 드라마에서 인수대비(仁粹大妃)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요.
한확은 세조를 도와 계유정난에도 참여하여 공을 세우기도 합니다.
세조의 왕위 찬탈직후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어 세조의 행위는 정변이 아닌 양위였다고 변호했고, 귀국하던중 객사했다고 합니다.
한확은 권모술수에 뛰어나고 중국통으로 권세를 마음껏 누린 희대의 기린아였더군요.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인데 중국 황실, 조선 왕실과 2대에 걸쳐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데요.
손윗누이는 명나라 3대 영락제의 후궁, 손아랫누이는 5대 선덕제의 후궁으로 보냈다고 하며
자녀중 둘째딸은 세종의 서자 계양군, 여섯째 딸은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에게 출가했고, 3남 한치례(韓致禮)는 세종의 적녀 정의공주의 차녀와 혼인하였습니다.
의경세자는 세조 왕위 등극 이듬해 요절하니 세자빈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궁밖으로 나온 여섯째딸은 후에 둘째 아들이 임금(성종)이 됨으로써 한확은 성종의 외조부, 여섯째 딸은 인수대비가 되었습니다.
소혜왕후는 사후에 받은 시호입니다.
그런데 영락제의 후궁인 손윗누이는 영락제가 죽자 꽃다운 24살에 순장(殉葬)을 당했으며, 다시 여동생까지 선덕제의 후궁으로 데려가려고 했는데요.
당시 여동생은 "벌써 누이 하나를 팔아 부귀가 지극한데 나까지 팔아 호사를 누리려는가!!" 라고 울며 애지중지하던 혼수를 칼로 찟고 패물을 내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녀가 명나라로 떠나는 날, 많은 사람들은 "언니가 생매장 당한 것도 억울한데, 이번엔 여동생이 산송장이 되어 가는구나!" 라며 비통해 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비극적으로 죽은 언니와는 달리 남편 선덕제 사후에도 여러 황제들의 존경을 받으며 황실 어른으로 존경을 받으며 천수를 누렸다고 합니다.
한확의 묘자리는 명당으로 유명하지요.
원래 세조가 정한 자기의 능침이었는데 나중에 광릉으로 변경되는 바람에 한확의 묘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집니다.
남향으로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묘자리가 정말 명당터로 손색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한학의 신도비는 막내딸인 인수대비가 아버지의 묘에 비가 없음을 슬퍼하여 세우게 했다네요.
묘는 조선 전기의 사각묘 형태이며 문인석, 장명등, 묘비가 단아하게 세워져 있는데 왕릉과 버금간다고 하여 능내리하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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