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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사충서원(四忠書院) 답사기.강바람의 유적답사 2021. 2. 4. 11:21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에 위치한 사충서원(四忠書院)을 답사하였습니다.
사충서원(四忠書院)은 경종 연간에 발생한 신임옥사때 사약을 받은 노론 4대신인 김창집(金昌集)· 이이명(李頤命)· 이건명(李健命)· 조태채(趙泰采)를 제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오늘 답사해 보니 검단산과 이어진 용마산 오름길인 하남시 상산곡동, 동수막에 위치한 사충서원은 서원이라기 보다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에 가까운 모습.
사충(四忠)은 노론 4대신을 지칭하는 말.
숙종 당시에 좌의정, 우의정 등 요직에 있었던 대신으로 북한산성 축성에도 큰 공을 세우거나 관여했던 인물들이지요.
태어난 날은 틀리지만 같은 해에 사약을 받았으니 사망한 해는 모두 같아 1722년(경종 2) 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노론, 소론으로 갈라져 세자 책봉문제로 치열하게 당쟁을 벌었던 희생양이니 망국적 정치현상으로 보여 마음이 아프네요.
우리 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으로 이전투구처럼 싸우기를 좋아 하니 결국 국력이 쇠약해져 항상 남의 침략을 당하며 살았나 봅니다.
지식백과 내용을 요약하면,
사충서원은 1725년(영조 1) 노론 4대신인 김창집(金昌集)· 이이명(李頤命)· 이건명(李健命)· 조태채(趙泰采)를 제향하기 위하여 노론계 관료와 유생이 추진하고 국가의 보조에 의하여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건립되었습니다.
이들 4대신은 경종 때 왕세제(王世弟 : 후일의 英祖)를 책봉하고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는 문제로 소론의 미움을 사서 1722년(경종 2) 노론계의 역모사건(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는데, 왕세제가 영조로 즉위한 뒤 노론정권이 수립되면서 신원(伸寃)되고 서원이 건립된 것입니다.
건립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았으나 1727년의 정미환국(丁未還局)으로 소론정권이 들어서서 신임옥사를 역(逆)으로 번복하고 4대신을 다시 죄인으로 만들자 이 서원도 따라서 철폐되었으며
그 뒤 1740년의 경신처분(庚申處分)으로 4대신이 다시 충신으로 판정되었으나, 한동안 재건되지 않다가 소론세력이 완전히 몰락한 1756년에야 서원을 복설하고 사충서원이라 부르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 서원은 노론·소론 사이의 시비여하에 따라 철폐와 복설이 거듭되는 우여곡절을 겪을 만큼 당색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으나, 영조 이후의 역대 왕들이 모두 영조의 후손이었던 관계로 영조에게 충성을 다한 4대신의 서원이라 하여 특별한 은전(恩典)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 단행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되었습니다.
그 후 1927년 봄에 서원이 철도용지(鐵道用地)로 편입됨에 따라 서울 용산구 보광동으로 이건하였다가 6·25때 파괴되었으며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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