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수) 평해길 제7길 지평향교길을 걸었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하늘은 좋은 법!
밥은 못 먹어도 사진은 찍어야 하니 맑은 날씨만 보장된다면 추위가 뭔 장애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추위보다도 앞으로 전철을 탈수가 없으니 그게 고민거리요 애로사항입니다.
그동안 용문역까지는 전철을 이용해서 어려움없이 편하게 다녔는데 앞으로 제8길, 9길, 10길은 자차도 이용하고, 택시도 타고, 무궁화호 기차도 타면서 잘 마무리하려 합니다.
제7길 지평향교길은 용문역~지평역~석불역까지 약 10km로 코스는 무척 수월한 편.
평소 지평리 하면 지평리전투와 지평막걸리가 떠오르곤 했는데요.
오늘 지평리의 지세와 현장을 유심히 살펴보니 너른 농경지에, 사통팔달한 교통의 요지이고,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옛날부터 읍치인 지평현이 있어 관아와 향교를 갖춘 큰 마을로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1908년 양근과 지평을 합쳐 양평읍이 생겼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지평이 양평군의 중심지였음을 알수 있네요.
지평은 1895년 전국 최초로 지평의병이 봉기하였던 역사가 있으며 6.25 사변때에는 중공군을 물리치는 지평리전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평화스런 이 땅에 더 이상의 전쟁의 비극이 없기를 빌어봅니다.
지평의병은 암흑기에 횃불처럼 타올랐던 항일의병의 효시!
일제에 의한 1895.10월의 명성황후 시해와 그 해 11월의 단발령 공포 후 지평출신의 이춘영과 김백선이 이끄는 포수 400여명이 국가의 위기를 인식하고 전국 최초로 의병을 창의하였습니다.
지평의병은 최초의 을미의병으로 인근 강원지방과 충북지방의 의병봉기의 도화선이 된 대표적인 척사의병으로
이후 1907년 정미의병,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 독립운동으로 이어 집니다.
을미의병기념비와 같이 있는 선정비는 지평현 시절의 관찰사, 순찰사, 현감들의 선정비를 모아 둔것 입니다.
지평리전투는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에 맞선 유엔군의 첫 승전보!
미 제2사단 제23연대(프랑스대대 배속)가 1951.2.13부터 2.16까지 4일간 지평면 일대에서 중공군 3개 사단 규모의 집중공격을 막아 낸 방어전투였습니다.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 중공군과 싸워 얻은 최초의 전술적, 작전적 승리이기에 지평리전투 이후 유엔군은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과감한 공세로 전환할수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