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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 유적지 답사강바람의 유적답사 2023. 5. 12. 08:04
2023.5/10(수) 지리산 청학동을 둘러본 후 산청의 남명 조식 선생 유적지를 찾았습니다.
고고한 선비,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도학자로서 동시대인인 퇴계 이황의 학문에 버금 간 인물.
남명은 일상생활에서도 철저히 절제로 일관하여 의(義)가 아닌 것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지요.
과거에도 뜻을 두지 않고 일체의 벼슬도 사양한채 지리산에 은둔하며 학문에만 전념하였지만 그의 명성은 자자하여 제자가 되길 원하는 자들이 많았다고.
특히 정구, 곽재우, 정인홍 등은 그의 제자로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의병활동에 직접 참여한 선비들.
남명 조식 유적은 덕천서원(德川書院), 산천재(山天齋), 남명 묘소인데요.
덕천서원은 1576년(선조 9) 남명 조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바 있는데
1609년(광해군 1) 덕천(德川)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하였으며 1870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0년대 지방유림에 의해 복원된 역사가 있습니다.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덕천강변에 자리한 산천재는 남명 조식이 말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561년에 지은 집.
산천재의 산천(山天)은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남명이 산천재를 지을 당시 매화나무 한 그루를 뜰에 심고 벗을 삼았는데 이 나무가 바로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듯 품격 높은 고매(古梅), 남명매입니다.
산청을 지나며 많은 아쉬움이 남았는데요.
시간관계상 이번에도 남명 묘소, 남명기념관을 찾아보지 못했고 또 부근에 대원사, 단속사터, 남사마을 등 답사할 곳이 무궁무진했지만 그냥 지나칠수밖에 없었는데요.
금번에 산청지역은 여행계획에 빠져 있는 경유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에 유서 깊은 유적지가 있지만 그냥 지나치는 아픔이 크니 조만간 시간을 내어 다시 산청을 찾아야할 것 같습니다.
지리산이 좋아 산청 덕천강변에 터를 잡고 지리산을 자주 오르며 고고한 삶을 살다간 남명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지리산 남쪽의 산청군 시천면.
북쪽에 지리산이 보이며 덕천강과 시천천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한 시천면이 보입니다.
지리산의 너른 품안에 든 시천면에는 조선 중기의 문인 남명 조식의 유적지인 덕천서원, 산천재, 남명 묘소가 있는 유서 깊은 고장.
먼저 찾은 덕천서원.
홍살문 옆의 은행나무 노거수의 덕천서원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네요.
서원의 외삼문인 시정문(時靜門).
1576년(선조 9) 남명 조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덕천서원(德川書院).
1609년(광해군 1) 덕천(德川)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하였으며 1870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0년대 지방유림에 의해 복원된 역사가 있습니다.
학문을 토론하고 유림의 회합장소로 사용되던 정면 5칸의 경의당(敬義堂).
천장에 걸린 경의당 현판.
경의(敬義)는 경(敬)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의(義)를 중요시하는 남명의 가르침을 따르자는 의미라고 합니다.
동재인 진덕재(進德齋).
동서 양재는 유생들이 공부하며 거처하던 곳이지요.
수업재(修業齋) 현판이 걸린 서재.
경의 당 뒷편의 내삼문과 숭덕사.
남명 조식의 위패를 모신 숭덕사(崇德祠).
서원을 다시 둘러보려니 배롱나무가 예사롭지 않네요.
봄철에 다시 덕천서원을 찾아 만개한 붉은 배롱나무 아래에서 고고한 시간을 보내야할 것 같습니다.
덕천서원 앞 냇가에 있는 세심정(洗心亭).
덕천서원, 세심정 앞을 흐르는 시천천.
깨끗한 시천천을 바라보려니 마음마져 맑아지는것 같네요.
시천천은 지리산 세석평전 위에서 발원하여 중산리를 경유, 시천면 사리에서 덕천강과 합류하지요.
언제 역으로 시천천을 따라 세석평전에 오르는 꿈을 그려봅니다.ㅎㅎ
다음 찾은 곳은 시천면 사리에 있는 산천재(山天齋).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덕천강변에 자리한 산천재는 남명 조식이 말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561년에 지은 집.
예전부터 산천재 앞 강변에는 갈대밭이 넓게 펼처져 있고 그 뒤로 바라보이는 지리산이 일품이었지요.
지리산을 마당에 앉힌 집이라는 말이 허사가 아님을 실감합니다.
고매와 마주하고 있는 산천재.
매화를 좋아하여 조석으로 물을 주며 가꾸던 남명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하네요.
2개가 걸려 있는 산천재 현판.
너무 곱게 단청하여 예스러움을 잃은 느낌이라 아쉬움이 남기도.
후학을 양성하던 산천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건물.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듯 품격 높은 고매(古梅), 남명매.
남명이 산천재를 지을 당시 매화나무 한 그루를 뜰에 심고 벗을 삼았는데 이 나무가 바로 남명매.
산천재의 남명매는 수령 500년, 높이 8m로 평소 남명 조식은 퇴계 못지않게 매화를 사랑했다고.
봄이면 매화향이 가득하겠지만 지금은 매실이 가득 달려 있네요.
입구에 있는 2동의 건물.
한채는 거주를 할수 있는 작은 방이 있고, 그 옆 건물은 남명문집의 목판고.
그럼 남명의 살림집은 따로 있었나요?
산천재에서 바라본 지리산과 덕천강.
지리산이 좋아 산청 덕천강변에 터를 잡고 지리산을 자주 오르며 고고한 삶을 살다간 남명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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