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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鳥嶺)이라 하지만 세상에서는 초점(草岾)이라고도 불렀다는 문경새재강바람의 국내여행 2023. 8. 18. 11:04
실로 오랜만에 문경새재를 찾았습니다.
오늘 걸은 길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고사리마을 방향에서 시작하여 제3관문, 2관문, 1관문, 역사박물관까지 약 9km.
지금은 잘 다듬어진 도로를 따라 편하게 걷지만 그 옆에 문경새재 옛길이 남아 있지요.
문경새재 옛길이 한양~동래를 이어주던 옛 영남대로이고 수천년 동안 민초들이 넘어 다녔는데도 우마차 한대 지나갈수 없을 정도로 좁다니 놀라운 일.
삶을 영위하기 위해 혹은 입신양명을 위해 높고 험한 산길을 넘어야 했던 선조들의 노고를 생각해 봅니다.
문경새재(642m)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새도 넘기 힘든 고개(鳥嶺),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草岾),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새)의 고개, 새(新)로 만든 고개 등의 뜻이 담겨 있는데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이라 하지만 세상에서는 초점(草岾)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초점, 조령은 새재를 한자로 옮긴 표현으로서 어느 쪽이든 선인들은 새재라고 읽었다고 하네요.
이때 새재의 새(草)는 풀을 지칭하는 것으로 새, 억새, 속새라는 뜻이고 점(岾)은 고개를 뜻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문경새재는 전해지는 얘기가 많아 늘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더군요.
문경새재는 전략상으로도 매우 중요시 되었는데요.
임진왜란때에는 왜군들이 문경새재를 통해 한양으로 쳐들어 온 이후 문경새재애는 3개의 관문인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습니다.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官印)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 관리의 숙소였던 조령원터와 여러기의 선정비, 산불됴심비 등의 유적이 남아 있고 빼어난 자연환경을 두루 갖추고 있는 문경새재.
언제든 여행지로, 문화유적탐방지로 손색없어 보입니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 고사리마을 방향에서 문경새재를 찾아 갑니다.
연풍새재길을 오르며 읽어보는 옛 시.
인간사라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애환과 시름이 끊이질 않았네요~!
약 30분 정도 경사진 산길을 걸으니 나타나는 문경새재.
이 길은 수많은 선비들이 청운을 꿈을 안은채 걷던 과거길!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추풍령, 죽령, 조령(새재)가 있지만 문경의 옛 이름인 문희(聞喜)에서도 드러나듯 기쁜 소식을 듣기 위해 추풍령, 죽령보다는 문경새재를 이용했다고.
백두대간 조령(鳥嶺) 표석.
제3관문이 위치한 조령(문경새재) 좌우로 백두대간이 지나가니 옛부터 얼마나 험했을까요!
오늘은 제3관문, 제2관문, 제1관문 순으로 문경새재길을 걷기로.
처음엔 충북 괴산군 연풍면을 걸어 올라왔고 제3관문이 위치한 백두대간을 넘으면서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오호, 백두대긴의 능선상에 있는 영남제3관문, 조령관(鳥嶺關).
경북과 충북의 경계이자 문경새재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곳이지요.
문루 밖에는 조령관, 안쪽에는 영남제1관 현판이 달려 있네요.
제3관문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풍경.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 계곡으로 새재길이 지나가며 제3관문에서 제1관문까지는 약 6.5km이니 쉬엄쉬엄 2시간 이상은 걸릴 전망.
안쪽에서 바라본 영남제3관문.
문루 밖에는 조령관(鳥嶺關), 안쪽에는 영남제3관(嶺南第三關) 현판이 달려 있네요.
새재 정상에는 오래된 성황당과 샘이 있더군요.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무사안녕을 손모아 빌고 목을 축이며 땀을 식혔을까요~!
다시 보는 제3관문, 조령관.
험중한 산중에 산성을 쌓고 외적을 지키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노고를 다시 생각케 합니다.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는 문경새재도립공원.
조령산(1,026m), 깃대봉(812m), 마패봉(925m), 부봉(917m), 영봉(1,106m), 주흥산(1,075m), 관봉(1,039m) 등의 고봉준령이 에워싸고 있으며 그 사이로 문경새재길이 지나지요.
제3관문을 넘으면 내리막길이 시작되며 현재의 새재길은 옛길 옆에 일제때 새로 개설한 도로.
몇십년전만 해도 자동차가 넘어다니던 도로였지만 지금은 걸으며 탐방할수 있는 최적의 장소.
군데군데 남아있는 문경새재 옛길.
이 길이 한양~동래를 이어주던 옛 영남대로인데 우마차 한대 지나갈수 없을 정도로 좁다니 놀라운 일.
문경초점 - 낙동강 발원지 표석.
원래의 낙동강 발원지는 태백 황지로 알고 있는데 영남에서는 문경새재를 발원지로 보고 있어 의아했는데요.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낙동강 발원지를 태백 황지, 영주 소백산, 문경 초점(草岾,새재) 등 3곳이라고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지않게 낙동강 발원지 3곳을 직접 걸어서 확인하였으니 감격스럽네요.ㅎㅎ
휴게소가 들어선 동화원(桐華院)터.
옛날 나라에서 운영하던 관리들의 숙소가 있던 곳인데 새재에는 신혜원, 동화원, 조령원 등 3군데 원(院)이 있었다고 합니다.
길가에 있는 상처 깊은 나무는?
일제 말기에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하던 자국이라고.
이진터에 도착하니 제3관문에서 2.1km를 걸어왔고 앞으로 제2관문 1.4km, 제1관문 4.4km.
목적지인 박물관까지는 4.9km이니 짧지않은 코스네요.ㅎㅎ
흔적을 찾기 어려운 이진터(二陣址).
임진왜란때 신립(申砬, 1546~1592)장군이 왜적을 막기 위해 진을 쳤던 곳인데 허수아비를 세운채 충주 탄금대로 옮긴 아픈 역사가 있지요.
만약 이곳에서 죽기를 맹세하고 항전했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지 아쉬움이 크네요. 흑흑~!
아름답고 고운 흙길을 걸으니 힐링이 따로 없네요.ㅎㅎ
전설을 간직한 바위굴.
아주 먼 옛날 소낙비를 피해 들어간 청춘남녀가 정을 통했다는 전설따라 삼천리같은 얘기.ㅎㅎ
문경새재길과 나란히 흐르는 조령천.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이 물로 더위를 식히며 먼길을 걸었을까요~!
새재길은 문화생태탐방로.
많은 전설이 전해지며 애환의 깃든 길이니 옛길을 걸으며 선인들의 삶을 되짚어 보는 의미있는 시간이네요.
제3관문에서 3.5km를 걸어 내려오니 어느덧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
깊은 산중에 위치한 조곡관(鳥谷關).
조선 숙종때 조동문(鳥東門)을 설치하였으나 소실되어 방치되던 것을 1978년 복원하면서 조곡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조곡관 옆은 주흘산 등산로 입구.
수십년채 벼르고 있지만 이궁폭포, 혜국사까지 가보고 아직 주흘산 정상은 오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ㅎㅎ
산불조심 표석.
조선 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산불됴심'이라고 옛 한글로 씌여져 있어 주목.
둥근 바위 아래에 소도 잡아 먹을수 있는 큰 쭈구리(물고기의 일종)가 살았다고.
짙은 솔향 속에 끝없이 이어지는 문경새재길.
문경새재길의 백미, 용추폭포.
용담계곡이 무척 아름다워 탄성을 지를만.
용추폭포 바위에 새겨져 있는 용추(龍湫) 각자.
조선 중기의 문신 구지정(具志禎, 1647~1713)의 글씨라고.
용추폭포 앞에 있는 교귀정(交龜亭).
옛날 이임하거나 새로 부임하는 관찰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장소였다고.
오랜 세월, 문경새재길을 지나가는 길손들을 지켜보는 멋진 교귀정소나무.
길가에서 자주 눈에 띄는 바위면에 새겨진 선정비.
통행하는 길손들이 많다보니 선정비를 조성하는 장소로 알맞아 보입니다.
숲에 숨겨져 있는 잘 생긴 마당바위.
장정 10명은 앉을수 있으니 마당바위의 진품을 볼수 있네요.
옛날 무인주점이 있었다는 무주암.
문경새재길을 걷던 길손들이 이 바위에 올라 맞은편 조령산의 경관을 즐기면서 쉬어 갔다고.
조령원터(鳥嶺院址).
돌담에 둘러싸인 조령원은 조선시대에 출장중의 관리에게 숙식을 제공했던 곳.
문경새재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많은 길손이 오가던 곳이었기에 괸리들의 숙소로 신혜원, 동화원, 조령원 등 3군데 원(院)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조령원의 돌담만 남은 상태.
기름을 짜는 기구를 닮은 기름틀바위.
기름틀은 받침틀과 누름틀로 구성되는데 누름틀을 덮어 누르면 기름이 흘러내리게 되는데 모두 흘러간 옛 얘기.ㅎㅎ
문경새재길에는 의외로 선정비가 많은데요.
바위면에 새긴 선정비에는 아예 글씨가 없기도 한데 이를 백비, 무자비, 혹은 멍텅구리마애비라고 부른다고.
백성들이 선정비를 조성하자 당사자가 극구 사양한 사례가 아닐지.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입구.
근래 제작된 KBS 사극 태조 왕건, 무인시대, 대조영 등은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는데 비가 내리므로 구경은 생략.
문경새재길에서 만나는 선정비군(善政碑群).
대부분 관찰사나 현감의 비석인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워야 했지만 백성들의 고혈로 세운 것이 많아 원성이 컷다고.
드디어 영남제1관문(주흘관)에 도착.
문루 밖에는 주흘관(主屹關), 안쪽에 걸린 '영남제1관' 현판.
조령제1관문이 아니라 영남제1관문이었네요.
문경새재의 첫 관문인 영남 제1관문(주흘관)은 사적 제147호.
언제보아도 문경새재를 지키는 든든한 성문으로 믿음직스럽습니다.
제1관문 부근에 있는 우아한 모습의 수구문.
아름다운 경관도 구경하고 유적지도 답사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3시간 여만에 목적지 부근에 도착.
옛길박물관은 시간관계상 오늘도 패스.ㅎㅎ
문경새재 옛길보존기념비 앞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
1978년 문경새재 도로포장 계획을 불허하는 동시에 새재 안에 차량통행을 금지시키고 일대를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강구하여 옛길을 보존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네요.
선각자의 혜안에 의해 옛길이 잘 보존되고 있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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