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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여년에 걸쳐 조성된 구리 동구릉(東九陵)강바람의 유적답사 2023. 9. 30. 16:59
구리 동구릉(東九陵)을 답사하였습니다.
사적 제193호인 동구릉은 약 450여년에 걸쳐 조성된 9기의 릉이 모여있는 조선 최대의 왕릉군으로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어 있습니다.
1408년(태종 8) 건원릉을 시작으로 릉의 갯수에 따라 동오릉, 동칠릉 등으로 불리다가 1855년(철종 6) 문조의 수릉이 이곳에 옮겨오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으며
맨 마지막으로 묻힌 분은 1904년 경릉에 잠든 헌종의 두번째 왕비인 효정황후 홍씨(1831~1904).
재실 앞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답사하니 수릉, 현릉, 건원릉, 목릉, 휘릉, 원릉, 경릉, 혜릉, 숭릉 순서가 되었는데요.
시대순으로 열거하면
① 조선 1대 태조 이성계가 잠들어 있는 건원릉(健元陵)
②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현릉(顯陵)
③ 14대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목릉(穆陵)
④ 16대 인조의 2번째 왕비 장렬왕후의 휘릉(徽陵)
⑤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崇陵)
⑥ 20대 경종의 첫째 왕비 단의왕후의 혜릉(惠陵)
⑦ 21대 영조와 2번째 왕비 정순왕후의 원릉(元陵)
⑧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수릉(綏陵)
⑨ 24대 헌종과 첫째 왕비 효현황후, 2번째 왕비 효정황후의 경릉(景陵).
이번 답사에서 가장 주목을 끈 일은 최근 복원한 숭릉연지(崇陵蓮池) .
이곳은 종전에 깊은 숲속이어서 연지가 있는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요.
숭릉연지는 1674년 숭릉을 만들때의 산릉도감에서 조성한 연못으로 네모난 형태에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입니다.
동구릉에서 유일하게 숭릉 앞에만 연지를 두었는데 이는 동구릉 안의 물길을 관리하기 위함이었다고.
이 연지는 처음 조성된 숙종대에서 영조, 정조, 고종대까지 연못 둘레의 돌축대를 정비하고 연꽃종자를 능관에게 주어 심고 기르게 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숭릉연지는 일제강점기 이후 관리부재로 매몰되며 깊은 숲으로 변해 버렸는데 발굴 조사후 2017년 복원정비하여 옛 모습을 찾았습니다.
오늘은 동구릉의 9개 릉을 모두 답사하기로~~!!
규모가 큰 동구릉의 재실.
재실은 제례시 제관들이 머무르며 제례를 준비하지만 평상시에는 릉참봉이 근무하는 곳.
시설은 집무실인 재실 외에 향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으며 단청은 하지 않았다고.
오늘 답사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수릉, 현릉, 건원릉, 목릉, 휘릉, 원릉, 경릉, 혜릉, 숭릉 순서로 하기로.
처음 맞이한 수릉(綏陵)은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릉.
문조(文祖, 1809~1830)는 세자때 순조를 대신하여 백성을 위한 정치를 잘 펼치다가 21세로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명세자라고 하였습니다.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으로, 1899년 다시 문조익황제로 추존된바 있습니다.
처음 효명세자의 묘(연경묘)는 서울 석관동 의릉 근처에 있다가 용마산 근처로 옮겼다가 1855년(철종 6) 현재의 자리로 옮겨져서 동구릉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조영된 릉입니다.
합장릉인 수릉(綏陵).
신정황후 조씨(1808~1890)는 1819년 왕세자빈이 되었고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대비가 되었으며 다시 철종이 세상을 뜨자 대왕대비가 되어 고종을 왕위에 올리고 수렴청정을 한 역사가 있지요.
두번째 릉은 5대 문종과 현덕왕후가 잠들어 있는 현릉(顯陵).
정자각과 수라간, 수복방, 비각이 잘 갖추어진 단정한 모습의 동원이강릉으로 왼쪽이 문종, 오른쪽이 현덕왕후 권씨의 릉.
올 여름 수해로 릉의 잔디가 많이 훼손된 모습이네요.
현릉은 동원이강릉으로 왼쪽이 문종의 릉.
문종(文宗, 1414~1452)은 세종의 맏아들로 훈민정음 창제를 도왔으나 38세로 요절.
오른쪽은 현덕왕후의 릉.
현덕왕후 권씨((1418~1441)는 단종을 낳은후 23세 나이로 요절하여 처음에는 경기도 안산에 묻혔으나 세조때 폐위되면서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다가 1513년(중종 8) 다시 왕후로 복위되어 릉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지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으나 결국 문종과 같이 묻히게 되어 다행스럽네요.
아름다운 솔밭길을 걸으면 건원릉.
금천교를 건너,
홍살문 너머로 보이는 건원릉.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릉이라 정자각이 웅장하고 엄숙해 보이는 건원릉.
건원릉 정자각은 1408년(태종 8) 처음 지어졌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다가 1764년(ㅇ여조 40) 중수청을 설치하여 크게 보수한 적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조선왕릉 정자각의 전형적인 형태를 잘 보여주어 가치가 크지요.
건원릉 정자각의 돌계단.
정자각 옆에서 바라본 건원릉과 비각.
억새로 뒤덮힌 건원릉의 봉분.
태조가 자신의 고향인 함흥의 억새를 심어 달라는 유언에 따른것이라고 전합니다.
웅장한 모습의 건원릉 비각.
보물로 지정된 건원릉신도비.
1409년(태종 9) 세운 것으로 비문은 권근이 짓고 전액은 정구의 글씨이며 뒷면의 비문은 변계량이 지었으며 앞뒷면은 성석린의 글씨라고.
또다른 신도비는 광무 4년(1900)에 세운 비.
1899년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로 추존되면서 세운 신도비입니다.
숲속을 걸어 찾아가는 릉답사는 최고의 산책길~!
14대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목릉(穆陵).
릉이 3개나 되는 동원이강릉으로 동구릉에서 가장 시원스런 목릉.
망원으로 당겨본 정자각 뒷편의 선조 릉.
선조(1552~1608, 재위 1567~1608)는 중종의 손자이며 덕흥대원군의 아들로 재위기간 동안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은 인물.
정자각 동쪽은 선조의 첫째 왕비 의인왕후 릉.
의인왕후 박씨(1555~1600)는 1569년(선조 2)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자식을 낳지는 못했다고.
정자각 남쪽의 가정자각터에서 바라본 선조의 두번째 왕비 인목왕후 릉.
인목왕후 김씨는 김제남의 딸로 1602년(선조 35)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광해군과 정치적 대립으로 서궁(현 덕수궁)에 갇혀 지내기도.
남쪽에서 바라본 선조와 의인왕후의 목릉.
참으로 정성스럽게 조성하고 관리한 조선왕릉의 진면목을 대하니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자랑스럽다는 생각.
무더위를 참으며 다음 찾은 곳은 휘릉.
휘릉(徽陵)은 16대 인조의 2번째 왕비 장렬왕후의 릉이며 자녀는 두지 못했다고.
휘릉의 장렬왕후 조씨(1624~1688)는 1638년(인조 16) 왕비로 책정되었으며, 현종 재위기간에 있었던 예송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한 인물.
예송논쟁은 2차례 있었는데요.
인조의 둘째 아들인 효종이 세상을 떠났을때, 또 효종의 왕비였던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났을때 어머니가 되는 장렬왕후가 상복입는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한 사건입니다.
영조의 원릉을 찾아 갑니다.
21대 영조와 2번째 왕비 정순왕후의 원릉(元陵).
제법 규모있어 보이는 원릉의 정자각.
망원으로 당겨본 원릉.
영조(1694~1776, 재위 1724~1776)는 숙종과 숙빈최씨의 아들로 조선 역대 왕중 가장 오래 살았고(82세) 오래 재위(52년)한 인물.
정순왕후 김씨(1745~1805)는 김한구의 딸로 1759년(영조 35) 15세 나이에 66세이던 영조의 2번째 왕비가 되었지요.
1800년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왕대비의 자격으로 수렴청정을 한바 있습니다.
숲길이 참으로 예쁘네요.
다음 찾은 곳은 24대 헌종과 첫째 왕비 효현황후, 2번째 왕비 효정황후의 경릉(景陵).
경릉은 헌종과 두 황후의 봉분 등 3개가 나란히 놓인 삼연릉(三連陵)으로 이러한 형식은 조선왕릉중 유일하여 주목되는 곳.
1908년(융희 2) 황제와 황후로 추존된 역사가 있기도.
헌종(1827~1849, 재위 1834~1849)은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아들로 1834년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22세에 요절.
효현황후 김씨(1828~1843)는 김조근의 딸로 1837년(헌종 3)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2년후 병으로 인해 1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효정황후 홍씨(1831~1904)는 1844년(헌종 10)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5년 뒤에 헌종이 승하하고 철종이 즉위하자 19세 어린 나이로 대비가 되었으며, 1890년 대왕대비 신정왕후가 별세하자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된 인물.
모두 후사는 없다고 하네요.
왼쪽이 헌종, 가운데 효현황후, 오른쪽이 효정황후.
계비 효정왕후 홍씨는 1904년 73세로 별세하니 동구릉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묻힌 분이 되었네요.
예전에는 릉에 올라 삼연릉의 아름다운 모습을 답사하곤 했는데 세계문화유산이 된후 지금은 접근 자체가 불가한 실정.ㅎㅎ
20대 경종의 첫째 왕비 단의왕후의 혜릉(惠陵).
20대 경종의 첫째 왕비 단의왕후 심씨(1686~1718)는 1696년(숙종 22)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경종이 즉위하기 전에 세상을 뜬 분.
옛날에는 요절하는 왕세자빈이나 왕비들이 많았네요.
1720년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되고 묘를 릉으로 올려 혜릉으로 한 역사가 있지요.
혜릉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숲.
마지막으로 숭릉을 찾아 갑니다.
최근 복원한 숭릉연지(崇陵蓮池) .
숭릉연지는 1674년 숭릉을 만들때의 산릉도감에서 조성한 연못으로 네모난 형태에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입니다.
동구릉에서 유일하게 숭릉 앞에만 연지를 두었는데 이는 동구릉 안의 3개의 물길을 관리하기 위함이었다고.
이 연지는 처음 조성된 숙종대에서 영조, 정조, 고종대까지 연못 둘레의 돌축대를 정비하고 연꽃종자를 능관에게 주어 심고 기르게 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숭릉연지는 일제강점기 이후 관리부재로 매몰되며 깊은 숲으로 변해 버렸는데 발굴 조사후 2017년 보수정비하여 옛 모습을 찾았습니다.
동구릉에서 가장 후미지고 깊은 숲속에 자리한 숭릉.
예전엔 비공개 할때가 많았는데 연지 복원과 함께 개방하니 다행스럽네요.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崇陵).
현종(1641~1674, 재위 1659~1674)는 효종과 인선왕후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에 올랐으나 33세에 요절.
명성왕후 김씨(1642~1683)는 1651년(효종 2) 왕세자빈이 되었고 현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지요.
날아갈듯이 날렵한 모습의 숭릉정자각.
1674년(숙종 즉위)에 지어졌으며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팔작지붕 정자각으로 보물로 지정.
마치 궁궐전각을 보는듯한 숭릉 정자각.
곱고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숭릉.
숭릉을 끝으로 동구릉 답사를 모두 마칩니다.
생각해보면 동구릉은 릉이 많으니 하나하나 관리하기에 많은 고초가 따를 것으로 생각되네요.
금년 여름 홍수로 사초지가 훼손된 릉이 여러곳인데 조속 복구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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