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주 임진강변 민통선지역 여행 --- 허준 묘, 해마루촌, 덕진산성, 통일촌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1. 23. 09:12
2024.1/22(월) 파주 임진강변 민통선지역을 여행하였습니다.
파주는 대부분 임진강 자체가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입니다.
1953년 휴전선이 확정된 후에 1954년에는 남방한계선으로 부터 5~20km의 선을 그어 민간인은 그 누구라도 출입을 완전히 금지하였는데 이 선이 바로 민통선이지요.
오늘 임진강 남쪽의 장산전망대, 화석정을 경유하여 어렵게 임진강 북쪽의 민통선지역에서 허준 묘, 해마루촌, 덕진산성, 통일촌을 방문했는데요.
개인적으로 북한땅에도 가보고 판문점과 DMZ에도 여러번 여행을 한적이 있었지만 오늘 가는 파주시 진동면 일대는 처음이라 무엇을 어떻게 보며 느껴야 할지 무척 흥분됩니다.
민통선 지역에서 만난 허준(許浚, 1546~1615)은 조선 중기의 의관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으로 선조와 광해군의 어의(御醫)를 지냈고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편찬한바 있습니다.
허준 묘는 6.25 사변 이후 접경지역이 되면서 출입이 불가하여 잃어버린채 행방이 묘연했었지요.
묘를 다시 찾기 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재미고문서연구가 이양재씨가 양천허씨족보에 기록된 '진동면 하포리 광암동 선좌 쌍분'이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군당국의 협조를 얻어 10년 가까이 고생 끝에 1991년 진동면 하포리에서 묘를 찾아냈는데요.
비석에 새겨져 있는 '陽平ㅁ ㅁ聖功臣 ㅁ浚' 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을 새긴 글자였습니다.
다음 찾은 곳은 임진강변 이장포(梨長浦)나루터.
나루터에서 흘러가는 임진강과 초평도, 의주로 옛길을 만나볼수 있는데 분단 이후 70년간 출입이 제한된 까닭에 자연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된 생태계의 보고이더군요.
이장포나루터와 연결된 진동면 동파리의 해마루촌은 임진강변의 아름답고 조용한 민북마을.
남방한계선 4.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6.25 사변 이후 장단군 실향민의 한을 달래주고 원거리에서 영농하는 사람들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터를 개척후 2001년부터 분양을 하여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니 민북마을로는 역사가 가장 짧은 편.
마을이 원형으로 높은음자리표 모양을 하고 있다는 해마루촌은 60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며 각종 농촌, 생태체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덕진산성(德津山城)은 사적 제537호로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13에 위치하고 있지요.
임진강변 언덕위에 있는 덕진산성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임진강과 의주로, 파주 일대를 지키던 천혜의 요충지였으며
산성을 고쳐 쌓고 지키던 장단부사에 경기방어사를 겸했던 이서(李曙,1580~1637) 장군이 인조반정에 참여한 곳이기도 합니다.
고구려에 의해 초축된 후 통일신라시대에 보축,개축되고 조선시대에 외성이 축조되는 등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에 이르는 축성술의 변화과정을 알수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뛰아나다는 평.
덕진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외성은 토성이며 내성은 석축성으로 최고봉인 해발 65m 봉우리를 중심으로 산능선을 따라 돌며 축성되어 있으며 전체 모양은 표주박 형태.
마지막으로 찾은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민통선 안에 위치한 통일촌은 1973년 군사분계선 인접 지역에 이상촌을 건설하려는 목적과 전선방위와 유휴경지 활용의 목적으로 건설하였다고.
쌀, 콩, 인삼 등 특용작물을 주로 재배하여 현재는 장단콩마을로 더 유명해진 상태이며 120가구 500여명중 95%가 농업에 종사한다고.
군내면의 통일촌 언덕 위에 장단면행정복지센터가 있는데요.
3년전 장단출장소에서 장단면행정복지센터로 승격되어 전국에서 처음으로 4개면(군내, 진동, 진서, 장단)을 1개면이 관할하는 '행정운영면'이 탄생했다고.
파주 임진강변 민통선지역 여행에 나섰습니다.
민통선지역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찾은 곳은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산21-3에 있는 장산전망대.
장산전망대에 서면 민통선 지역을 가장 잘 바라볼수 있지요.
임진강 북쪽의 민통선 지역에 있는 초평도, 해마루촌, 덕진산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강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있는 초평도는 무인도이며 크기가 52만평으로 무척 넓고 6.25 사변이후 출입이 불가하여 식생이 잘 보존된 신비의 섬.
망원으로 당겨본 임진강변에 있는 해마루촌.
해마루촌은 자유롭게 드나들수 없는 민통선 지역의 민북마을이지만 최근 신고후 출입이 가능해진 상태.
다음 방문지는 화석정.
임진강변에 있는 화석정(花石亭)은 조선의 대학자인 율곡 이이가 유년시절과 여생을 보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임진왜란때 화석정에 불을 질러 어둠을 밝혀 선조의 피난행렬이 폭풍우가 보는 야밤에 임진강을 무사히 건너게 하였으며,
1593년 선조가 한양으로 귀환길에 강변에서 위령제를 지내며 통곡하면서 '하늘의 도움을 받아 다시 돌아오게 되었구나'하며 신지강(神智江)을 임진강(臨津江)으로 바꾸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화석정에서 바라본 임진강.
조선시대만 해도 개성가는 길(의주로)이 앞에 있는 임진나루에서 배로 강을 건너 오른쪽의 평지를 걸어 갔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뱃길도 끊어지고 옛 의주로도 사라진 실정.
임진강을 굽어보는 화석정 느티나무.
화석정 아래에는 덕수이씨의 세거지이며 율곡의 선대가 대대로 살아온 율곡촌 밤골마을이 있지요.
파평면 두포리에 있는 전진교를 건너 민통선지역으로 들어갈 차례.
잘 생긴 초병에게 신분증을 내고 출입허가를 득한후 전진교를 건너 민통선 안으로 진입.
드디어 작은 꿈을 이루는 순간이네요.ㅎㅎ
큰 고개를 넘어가니 좌측은 통일촌, 해마루촌, 덕진산성 방향이고 우측은 허준 묘 가는 길.
먼저 허준 묘를 찾아가기로~~!!
영농할수 있는 밭이 있으나 대부분은 밀림지대인 민통선 지역.
허준 묘 입구에 있는 허준의 일생, 동의보감, 다시 찾은 허준 묘에 대한 설명판.
허준(許浚, 1546~1615)은 29세인 선조 7년(1574) 의과에 급제하여 내의원에 들어간후 전의(典醫)로 왕실의 진료에 많은 공적을 세웠다고.
특히 1592년 임진왜란때에는 선조가 의주로 피난갈때 어의로서 끝까지 모셨으며 1596년 선조의 명으로 동의보감(東醫寶鑑) 편찬에 착수하여 1610년(광해군2) 완성하였는데 동의보감은 25권 25책으로 이루어진 의서입니다.
동의보감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후 중국과 일본에서 여러번 번각되었으며 최근까지도 계속 출간되고 있으니 동양의학의 보감이며 백과전서라 할수 있지요.
동의보감은 2009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바 있습니다.
오호, 허준 묘~!
허준(許浚, 1546~1615)은 조선 중기의 의관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
선조와 광해군의 어의(御醫)를 지냈고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편찬한바 있습니다.
출생지는 경기도 양천현 파릉리(현 서울시 강서구 등촌2동 능안마을)이며 이곳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는 양천허씨들의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모친의 묘가 있는 곳이어서 사후 이곳에 모셔진것 같습니다.
2011년 세운 '贈輔國崇祿大夫領議政 醫聖陽平君許浚重建碑(증보국숭록대부영의정 의성양평군허준중건비)'.
허준은 1606년 양평군(陽平君)에 올라 정1품인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승진한 바 있습니다.
쌍분 형태의 허준 묘.
허준 묘는 6.25 사변 이후 접경지역이 되면서 출입이 불가하여 잃어버린채 행방이 묘연했었다고 합니다.
묘를 다시 찾기 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재미고문서연구가 이양재씨가 양천허씨족보에 기록된 '진동면 하포리 광암동 선좌 쌍분'이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군당국의 협조를 얻어 10년 가까이 고생 끝에 1991년 진동면 하포리에서 묘를 찾아냈다고 하네요.
노고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쌍분의 왼쪽은 허준, 오른쪽은 부인 안동 김씨 묘이며 묘비, 상석, 문인석이 배치된 모습.
윗쪽은 생모 묘로 추정하며 허준 묘 아래에 아들의 묘가 있었다고 하나 봉분이 사라진 상태.
묘 앞에 두 동강난채 쓰러져 있던 허준 묘비석.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니 어렴풋이 몇 글자가 보이는데요.
비석에 새겨져 있는 '陽平ㅁ ㅁ聖功臣 ㅁ浚' 이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을 새긴 글자였으며
이렇게 해서 허준 묘가 세상에 다시 나올수 있었다고 합니다.
허준 묘의 문인석.
민통선 지역에 쓸쓸하게 있는 허준 묘.
10여년의 각고 끝에 의학서인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 선생께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허준 묘 입구에 있는 파주DMZ생태관광 안내판.
오늘 어렵게 민통선지역을 방문했으니 해마루촌, 덕진산성, 통일촌 등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열심히 탐방하기로.
다음 찾은 곳은 임진강 이장포(梨長浦) 나루터.
나루터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옛날 의주로의 길목으로 오가는 사람들로 꽤 번성했을듯.
감격스럽네요~~!!
민통선지역 해마루촌 앞을 흐르는 임진강.
오전에 들렸던 장산전망대가 앞에 보이니 정반대 지점입니다.
광각으로 촬영한 초평도.
임진강 안에 이렇게 큰 섬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
임진강은 임진나루를 지난후 샛강으로 갈라지며 초평도를 만들고 해마루촌 앞에서 둥그렇게 휘돌며 임진각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초평도와 마주하고 있는 해마루촌 앞의 절벽지역.
오른편 야산 아래에 이장포나루터가 있었으나 민통선 지역으로 배가 다닐수 없으니 지금은 흔적만 남은 상태.
초평도 위를 나는 기러기들.
남북분단으로 서로 왕래가 불가능하지만 너희들이라도 자유롭게 날아 다니렴~~!!
다음 찾은 곳은 동파리 수복마을로 불리었던 DMZ해마루촌.
해마루촌은 동파리(東坡里)를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동(東)은 해, 파(坡)는 언덕을 뜻하는 마루로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해마루촌의 행정구역은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로 남방한계선 4.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6.25 사변 이후 장단군 실향민의 한을 달래주고 원거리에서 영농하는 사람들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터를 개척후 2001년부터 분양을 시작하여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니 민북마을로는 역사가 가장 짧은 편.
마을이 원형으로 높은음자리표 모양을 하고 있다는 해마루촌.
60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며 각종 농촌, 생태체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파주에는 민통선 내 마을이 3곳 있지요.
진동면 해마루촌, 군내면 통일촌, 대성동 자유의 마을인데 해마루촌이 가장 늦게 조성되었는데요.
정확히는 해마루촌과 통일촌은 민통선 안에 있고 자유의 마을은 비무장지대에 있는 유일한 마을입니다.
가장 늦게 개발된 탓에 잘 정비된 도로망과 서구식 고급 주택지를 방불케 하는 해마루촌.
다른 민북마을보다 월등히 잘 사시는 모습에 자긍심까지 가득.ㅎㅎ
다음 찾은 곳은 임진강변 절벽 위에 있는 덕진산성.
전면의 강변 절벽 위에 고구려가 초축한 덕진산성이 있다고 하네요.
덕진산성을 찾아가는 길에 만나는 두루미, 기러기들.
구불구불 언덕을 오르는 덕진산성 가는 길.
해마루촌에서 덕진산성까지는 약 0.7km 정도 거리.
덕진산성은 사적 제537호로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13에 위치하며 고구려의 남진과정에서 임진강 북쪽에 축조한 방어시설입니다.
고구려에 의해 초축된 후 통일신라시대에 보축,개축되고 조선시대에 외성이 축조되는 등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에 이르는 축성술의 변화과정을 알수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뛰아나다는 평.
외성과 내성으로 이루어진 덕진산성.
외성은 토성이며 내성은 석축성으로 최고봉인 해발 85m와 65m 봉우리를 중심으로 산능선을 따라 돌며 축성되어 있으며 전체 모양은 표주박 형태.
성의 규모는 외성이 1.2km이며 내성은 0.6km.
2012년 부터 여러번의 발굴결과 내성에서 장대터와 덕진단터가 발견되었으며 현재 발굴을 종료하고 마무리 정비를 한 상태.
덕진산성의 외성에서 내성 방향으로 성벽길 모습.
발굴 결과 모습을 드러낸 덕진산성 내성의 치(雉).
납작한 돌로 쌓은 모습이 삼국시대에 축성하였음을 엿볼수 있네요.
납작한 돌로 조밀하게 치성을 쌓아 방어에 용이하게 한 모습.
덕진산성 발굴 모습(현지 사진)
내성의 장대터가 있던 가장 높은 지역.
덕진산성 내성의 장대터.
장대터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임진강.
오른쪽은 초평도이고 그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은 파평산.
파주와 임진강 일대를 일망무제로 살필수 있는 천혜의 요충지임을 실감할수 있네요.
임진강변 언덕위에 있는 덕진산성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임진강과 의주로, 파주 일대를 지키던 천혜의 요충지였으며
산성을 고쳐 쌓고 지키던 장단부사에 경기방어사를 겸했던 이서(李曙,1580~1637) 장군이 인조반정에 참여한 곳이기도 합니다.
장대터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초평도.
이렇게 넓은 섬이 6.25사변 이후 무인도로 있으니 큰 보배일수도 있다는 생각.
장대터에서 바라본 서쪽의 언덕은 내성의 덕진단터.
덕진단터로 가다가 뒤돌아본 장대터.
덕진산성은 10여년간 여러 차례의 발굴 결과 최근 대부분 마무리되어 다소 인위적인 상태이나 앞으로 자연스런 모습을 기대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비무장지대 생태이야기(덕진산성편) 안내판.
덕진단터에서 다시 보는 임진강.
비록 시대가 변하고 산성을 무너진채 흙속에 묻혔지만 한반도의 중앙부를 굳건히 지키던 천혜의 요새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냈을것 같아 대견하기만 합니다.
덕진단터에서 다시 보는 초평도.
이 모습을 상상하며 보낸지가 몇십년인데 드디어 오늘 소원을 풀었네요.ㅎㅎ
서쪽으로 바라본 임진각 방향의 통일대교.
초평도 서쪽에서 임진강 본류와 샛강이 다시 합류하는 모습.
다음 찾은 곳은 파주 통일촌 -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민통선 안에 위치한 통일촌은 1973년 군사분계선 인접 지역에 이상촌을 건설하려는 목적과 전선방위와 유휴경지 활용의 목적으로 건설하였다고.
쌀, 콩, 인삼 등 특용작물을 주로 재배하여 현재는 장단콩마을로 더 유명해진 상태이며 120가구 500여명중 95%가 농업에 종사한다고.
통일촌에 있는 유일한 학교인 군내초등학교.
40여년 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외관이 조금 바뀌었을뿐 큰 변화는 없어 보이네요.
군내면의 통일촌 언덕 위에 있는 장단면행정복지센터.
민통선 안의 민간인 거주지역이 해마루촌, 통일촌과 대성동 자유의마을뿐이니 이곳에 행정복지센터가 있네요.
3년전 장단출장소에서 장단면행정복지센터로 승격되어 전국에서 처음으로 4개면(군내, 진동, 진서, 장단)을 1개면이 관할하는 '행정운영면'이 탄생했다고.
통일촌 언덕 위에 있는 망향제단.
망향제단에서 바라본 도라산.
산 정상에는 도라전망대가 있고 그 뒷편에는 제3땅굴이 있지요.
언덕 위에 있는 통일촌교회.
북녘땅에 복음을 전파하고자 1973년에 건립하였다고.
통일촌 뒷편까지 넘어가니,
오호, 캠프그리브스 ~!.
미군부대였다가 2004년 철수한 후 우리 정부에 반환되어 민간인을 위한 체험안보시설로 활용중이지요.
임진각에서 곤돌라를 타고 들어 갈수도 있는데 통일촌 뒤에 정문이 있었네요.
오늘 방문지인 민통선 밖의 장산전망대, 화석정과 민통선 안의 허균 묘, 이장포나루터, 해마루촌, 덕진산성, 통일촌.
'강바람의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원 백마고지전적지(白馬高地戰蹟地) 탐방 (0) 2024.02.24 소이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철원평야(재송평)와 북녘 평강고원. (0) 2024.02.24 포천 영평천의 창옥병, 옥병서원과 창옥병암각문 답사 (0) 2024.01.02 (옛 사진) 강화 교동도 - 2012.7/23(월) (0) 2023.12.08 DMZ 두루미탐조를 위해 찾은 철원~! (0) 2023.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