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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근대역사길 2코스(옛 덕수궁 궁역)을 걷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6. 19. 09:16
'정동 근대역사길 역사보행탐방로' 2코스(옛 덕수궁 궁역)를 걸었습니다.
2코스는 세종로 동화면세점 뒷길~옛 선원전터~고종의 길~옛 러시아공사관까지 약 0.4km 내외로 사라진 옛 덕수궁 궁역을 살펴보는 탐방길인데요.
고종이 대한제국 시기에 새롭게 황궁을 조성하면서 역대 왕들의 어진(초상화)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던 가장 신성한 선원전(璿源殿)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러나 1900년, 불과 3년만에 화재로 선원전이 전소된 후 1901년 경운궁의 북문인 영성문 부근에 다시 선원전을 재건하였지만 궁궐로 쓴 기간은 20년 안팎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건립된 선원전 영역에는 덕수궁의 북문인 영성문, 빈전인 흥덕전, 혼전인 홍복전 등 여러 건물이 있었고 '영성문 대궐'이라는 별칭을 지녔을만큼 덕수궁 중심영역과 구분되는 하나의 독립된 영역이었습니다.
고종황제 승하후 1921년 일제에 의해 신작로 개설과 함께 선원전이 훼철되었으며 이 자리에 경성제일공립고등여자학교, 경성방송국, 조선저축은행 사택지 등이 세워지면서 궁궐터로서 역사적 흔적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지요.
선원전터에는 해방후 1945년부터 경기여고가 들어섰다가 1988년 강남으로 이사한 후 빈땅으로 남아있게 되었는데요.
이후 2000년대 초에 땅소유주인 미국에서 미국대사관과 직원숙소를 지으려고 하자 반대여른이 비등해졌고 급기야 2011년 토지교환 형식으로 선원전터를 돌려받았으니 영원히 잊혀졌을 선원전을 다시 찾은 느낌이네요.
현재 덕수궁제자리찾기 사업으로 2022년부터 흥덕전 복원공사를 진행중이며 2039년까지 선원전 복원공사를 모두 마칠 계획입니다.
선원전터 남쪽에 있는 능선에는 동서로 뻗은 고종의 길이 있지요.
2018년 10월에는 아관파천길로 추정되는 미국대사관저 경계 언덕에 길이 120m, 폭 3m 규모의 길을 복원, '고종의 길'로 개방하였습니다.
당시 경복궁에서 아관으로 파천하면서 이 길을 이용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대한제국 시대에 미국대사관이 제작한 정동지도는 이 길을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하고 있으니 아마 고종이 아관파천 당시 경운궁 건축을 독려하기 위해 오가던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미국대사관저에서 북쪽의 선원전 부지(옛 경기여고)까지는 미국소유여서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지만 2011년 미국과 토지교환을 통해 우리 소유가 되면서 미국대사관저 경계에 담장을 쌓는 일이 가능해졌고 그래서 고종의 길도 열린 것이지요.
고종의 길을 걸으면 나타나는 러시아공사관터.
1890년 경운궁에 딸린 후원인 상림원이 있던 언덕에 들어선 러시아공사관은 일대에서 가장 높아 한양을 내려다 볼수 있었으며 공사관중에서도 규모가 제일 컷다고 합니다.
공사관터는 정동공원부터 문화체육관이 있던 상림원아파트 일대까지 였으니 국력이 막강했던 미국, 영국, 러시아에게는 서로 견제하도록 하기 위해 약 1만평이나 되는 넓은 땅을 매각한것 같습니다.
1896년 고종황제가 아관파천하여 1년간 머무른 적이 있었으며 6.25 사변때 파괴된 이후 방치되다가 1969년 탑만 복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동 근대역사길 1코스에 이어 2코스(옛 덕수궁 궁역)를 시작합니다.
2코스는 옛 덕수궁 궁역을 살펴보는 탐방길.
정동 근대역사길 2코스는 세종로 동화면세점 뒷길~옛 선원전터~덕수초교~고종의 길~옛 러시아공사관까지 약 0.4km 내외로 사라진 옛 덕수궁 궁역을 살펴보는 탐방길이지요.
덕수궁의 북문인 영성문(永成門)이 있던 곳으로 이곳부터 선원전이 시작되었지요.
선원전 복원공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안내판.
문화유산청에서는 선원전 옛터를 공원으로 정비하여 지난 2024.4.26부터 한시적으로 시민에 무료개방중입니다.
좌우 모두 덕수궁의 선원전 영역이었지만 일제때인 1921년 신작로를 개설하고 일대 토지를 민간에 매각하면서 역사가 단절되는 아픈 역사가 있지요.
좌측으로 보이는 덕수초교는 옛 의효전터.
1921년, 의효전 자리에 경성여자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41년, 경성덕수공립국민학교로 개칭, 1952년 서울덕수국민학교로 개칭한 역사가 있네요.
의효전(懿孝殿)은 1905~1907년까지 순종의 황태자비였던 순명효황후 민씨의 혼전(魂殿)으로 신주를 모시고 혼전의례를 거행한 곳이며 1921년 창덕궁으로 옮겨져 현재 의로전(懿老殿)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역시 덕수궁 궁역이었던 덕수수영장에서 조선일보미술관 일대에 1926년 경성방송국(JODK)이 세워졌지요.
경성방송국은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으로 1927년 부터 일제 식민통치에서 한반도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하였으며 광복 이후 지금의 KBS로 이어진 역사가 있습니다.
흥덕전 권역에 남아있는 옛 경기여고 정문.
선원전, 흥덕전, 흥복전 권역가운데 흥덕전 권역은 이미 2022년에 착공하여 2027년까지 한식목조 12동을 복원한다는 계획이네요.
구세군중앙회관(현 정동1928아트센터).
구세군(救世軍)은 군대식으로 조직, 운영되는 국제적 규모의 기독교 교파이며 자선단체로서
우리나라에는 1906년에 영국인선교사 로버트 호가드(한국이름, 허가두)가 전파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1928년 구세군사관학교로 지어졌으며 현존하는 국내 신학대학건물로는 가장 오래 되었다고.
현재 정동1928아트센터 및 역사박물관으로 순영중.
언덕길에 올라서면 선원전터와 고종의 길을 만날수 있지요.
언덕에서 바라본 덕수궁 돌담길 안의 돈덕전과 오른쪽은 미대사관저.
오호, 선원전터~~!!
선원전(璿源殿)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고종이 대한제국 시기에 새롭게 황궁을 조성하면서 기존의 경복궁, 창덕궁 내에 있었던 선원전 외에 경운궁(덕수궁)에도 1897년 선원전을 건립했는데요.
1900년 화재로 선원전이 전소된 후 1901년 경운궁의 북문인 영성문이 부근에 선원전을 재건한바 있는데 바로 이곳입니다.
일제는 고종이 승하한 후 영성문과 선원전 일대 전각들을 훼철하고 부지를 매각하였으며 이 터에는 조선저축은행 사택과 경성제일공립고등여자학교 등이 세워졌습니다.
조선저축은행 사택지에는 근래까지도 10여동이 남아 있어 미대사관 직원숙소로 사용되었는데요.
미국 소유였다가 2011년 토지교환 형식으로 선원전터를 돌려받았으니 영원히 잊혀졌을 선원전을 다시 찾은 느낌이네요.
1910년 당시의 덕수궁 모습으로 현재의 덕수궁과 사라진 선원전 영역을 보여 주는데요.
본래의 덕수궁에서 언덕을 넘어 북쪽에 선원전 자리를 잡았다는건 일본을 견제하며 이미 들어선 미국, 영국, 러시아영사관의 도움을 받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선원전 복원계획 조감도.
북쪽의 흥덕전 권역이 2027년까지 복원되지만 선원전, 흥복전 권역은 2038년까지 복원계획으로
선원전 부속건물들이 있던 현재 덕수초교, 구세군중앙회관, 조선일보미술관 일대는 영원히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
포스아트로 제작된 담장으로 둘러처진채 빈땅으로 남아 있는 선원전 권역.
일제때에는 조선저축은행 사택지, 해방후에는 미대사관 부지로 사용되다가 2011년 미국과 토지교환 형식으로 환수한 땅으로 면적은 약 8000㎡ 정도.
1918년 고종과 영친왕이 선원전에서 제사지내는 모습(일제때 자료사진).
선원전 권역에 들어섰던 일제때의 조선저축은행(SC제일은행의 전신) 중역사택.
중역사택은 1930년대에 지은 최고급 주택으로 이 건물뿐만 아니라 여러채의 사택이 더 있었는데요.
1934년 조선저축은행에서 부지를 매입하여 1938년 일본식으로 건물을 지었으며 해방후에는 미대사관으로 편입되어 직원숙소로 사용하다가 2011년 토지교환을 통해 우리 소유가 된바 있습니다.
앞으로 복원될 선원전하고는 어울리지도 않고 같이 있어야 할 건물도 아니지만 한켠으로 옮겨 식민경제침탈의 전시장으로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사택에서 내려다 보이는 흥덕전, 흥복전 권역.
1919년 흥덕전이 가장 먼저 훼철되어 창덕궁 행각공사에 쓰였으며
1921년 흥복전, 흥덕전 자리에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가 들어섰고 해방 이후 1945년부터 경기여고로 쓰이다가 1988년 강남 개포동으로 이사하면서 공터로 남게 되었지요.
2013년부터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2022년부터 흥덕전 복원공사가 진행중입니다.
옛 사진에서도 나와있는 회화나무를 기준으로 흥덕전 복원사업을 2027년까지 마칠 계획.
그런데 정체불명의 이 시설은~?
서쪽의 구,러시아공사관 방향으로 뚫려 있는 굴이 아닌가요?
이 시설물은 남쪽의 미국대사관, 중명전 방향으로 뚫려있는 굴 같습니다.
2018년 10월, 미국대사관저 경계 언덕에 길이 120m, 폭 3m 규모의 길을 복원한 '고종의 길'.
아관파천은 1897년의 일이고 선원전 건립은 1901년의 일이니 고종이 어떤 경로로 파천했는지 아리송합니다.
저 문을 통하면 옛 러시아공사관터.
당시 경복궁에서 아관으로 파천하면서 이 길을 이용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뿐더러 대한제국 시대에 미국대사관이 제작한 정동지도는 이 길을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하고 있으니 아마 고종이 아관파천 당시 경운궁 건축을 독려하기 위해 오가던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쓸쓸하게 흔적만 남아 있는 옛 러시아공사관.
1890년 경운궁에 딸린 후원인 상림원이 있던 언덕에 들어선 러시아공사관은 일대에서 가장 높아 한양을 내려다 볼수 있었으며 공사관중에서도 규모가 제일 컷다고 합니다.
6.25 사변때 완전히 파괴된후 그 흔적만 남기고 있네요.
원래의 러시아공사관터는 정동공원을 비롯하여 상림원아파트 일대까지 약 7,500평이나 되었다니 지금으로선 상상이 않갈 정도로 넓은 면적.
1990년 수교 당시 러시아 측에서 옛날 러시아공사관 매입계약서와 영수증을 들이대며 대사관터를 요구하여 지금의 대사관 부지를 확보하였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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