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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근대역사길 1코스(배움과 선교)를 걷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6. 19. 08:42
2024.6/18(화) '정동 근대역사길 역사보행탐방로'를 걸었습니다.
중구 정동(貞洞)은 조선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역사의 원형이 남아 있는 지붕없는 박물관이자 근대역사 유산과 현대문화가 공존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명소입니다.
서울시에서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쌓여 있는 이곳에 '정동근대역사길 역사보행탐방로'를 만들었는데요.
정동산책을 하며 만난 5개 코스는
1코스(배움과 선교)는 조선시대 서학당, 근대 덕수궁 양이재와 성공회성당이 위치한 배움과 선교의 길,
2코스(옛 덕수궁 궁역)는 덕수궁 선원전 영역이 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훼손되어 사라진 아픔의 길,
3코스(외교타운)는 근대 서양의 외교공관이 밀집되어 당시 공사관 거리로 불리던 외교역사의 길,
4코스(신문화와 계몽)는 정동교회, 배재학당, 독립신문 등 신문화와 계몽운동을 이끌었던 근대화의 길,
5코스(대한제국의 중심)는 덕수궁, 환구단 등 대한제국의 탄생과 발자취를 간직한 근대국가를 향한 길.
1코스는 덕수궁 북동쪽으로 1코스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세실극장~양이재~성공회서울주교좌성당~조선일보미술관~동화면세점까지 약 0.3km.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배움과 선교, 예술문화를 실천하는 공간들이 자리해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립교육기관인 4부학당중 서학당이 있었고 대한제국 시기 황족과 귀족의 근대식 교육을 맡았던 양이재가 배움의 공간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 대한성공회서울주교좌성당, 주한영국대사관, 국립정동극장 세실, 조선일보미술관 등이 있어 선교와 예술문화 활동의 거점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단편적으로 다녀간 적은 여러번이지만 오늘 체계적으로 탐방을 하니 많은걸 생각하는 의미있는 하루가 된것 같습니다.
서울시청 앞에서 '정동 근대역사길 역사보행탐방로'를 시작합니다.
1코스는 배움과 나눔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요.
나눔은 사회복지공동복지회가 있어 나온 말 같으나 최근의 일이고 어불성설이니 배움과 선교, 예술문화를 실천하는 공간이라고 해야 맞을것 같습니다.
전체는 5개 코스이지만 1코스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세실극장~양이재~성공회서울주교좌성당~조선일보미술관~동화면세점까지 약 0.3km.
서울시청 옆 세종대로에서 바라본 서울도시건축전시관.
2015년 철거한 옛 국세청 남대문별관에 만든 전시관으로 지하 3개층에 국내 최초로 도시건축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시관에는 옥상정원(서울마루)을 조성하여 시민광장으로 개방한 모습.
서울마루에서 바라본 서울시의회 의사당.
1935년에 서울시민을 위한 2,000석 규모의 경성부민관(京城府民館)으로 신축하였으며 높이 45m의 시계탑이 아주 유명. 광복이후 1975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쓰였으며 그 뒤로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사용하다가 1991년 부터 서울시의회 의사당으로 사용중.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을 나서면 대한성공회서울교구주교좌성당, 국립정동극장 세실, 주한영국대사관으로 가는 길.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오호, 국립정동극장 세실~!
세실(Cecil, 1864~1958)은 193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영국의 정치가로 이 분을 기리기 위해 극장이름을 붙인것 같습니다.
세실극장은 1976년 개관하여 '한국 연극의 1번지'로 불렸던 연극전용극장.
1970~1980년대 소극장 운동의 메카로서 수많은 명작을 무대에 올리며 대한민국 연극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으며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지요.
세실극장 옥상에 전망대(세실마루)가 조성되어 있네요.
EV를 타고 오르니 성공회성당을 높은 곳에서 가까이 살필수 있어 깜짝 놀랄 정도.ㅎㅎ
문화재생으로 탄생한 명소, 세실마루.
정동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회복하기 위해 서울시와 성공회서울교구가 상호협력하여 조성했다고.
덕수궁 정관헌, 중화전도 잘 보이니 전망을 즐기는 휴게장소로 최고~!
세실극장을 지나면 영국대사관 정문.
영국대사관은 1884년 이래 140년 이상 한곳에서 변함없이 외교업무를 펼치는 곳으로 유명하지요.
그러고보니 성공회는 영국의 국교로서 이 일대가 모두 영국 일색이니 당시 막강했던 국력을 실감케 합니다.
잠시 걸어본 덕수궁 내부 보행로.
2017년 서울시에 의해 돌담길 100m가 열렸는데요.
1959년 영국대사관이 일부 점유하던 부지를 반환함으로써 60년간 끊겼던 덕수궁 돌담길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지요.
덕수궁과 담장을 경계로 하고 있는 영국대사관.
1883년 조선과 영국은 조영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외교관계를 수립, 이듬해에 영사관을 두었는데요.
서구열강중 미국에 이어 두번째이지요.
처음에는 신헌, 신석희 부자가 살던 언덕 위의 한옥에 입주했으나 그들에겐 불편하므로 1890년 착공, 제1의 집은 1891년에, 제2의 집은 1892년에 준공하여 공사관으로 승격시킨바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영국대사관은 130여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한 모습이라 놀랄수 밖에 없네요.
일제때에는 국교가 끊기기도 했지만 1949년 외교관계를 재개하고 1957년 주한영국대사관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작은 능선의 돌담길을 따라 조선 후기에 영국, 미국, 러시아공사관이 들어섰지요.
끊겼던 옛 길이 60년만에 다시 뚫리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다시 되돌아나와 양이재를 찾아 가는 길.
성공회성당 경내에 홀로 떨어져 있는 덕수궁 양이재(養怡齋).
뒷편에 함희당(咸喜堂)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1960년에 헐려 현재 양이재 건물만 남아 있는 상태.
정면 7칸, 측면 4칸의 양이재는 광무 9년(1905) 세워져 1906년 부터 1910년까지 황족과 귀족 자제교육을 전담하던 '수학원(修學院)'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경운궁(덕수궁)에 있던 시절에는 행각과 꽃담으로 건물 주변을 감싸고 있어 홍원(紅園)이라 불렀다고.
양이재는 영국대사관이 들어선 이후에 지은 덕수궁에 딸린 궁궐건물입니다.
본래 위치는 북쪽으로 약 30m 정도 떨어진 사제관 뒷편의 성공회성가수녀원 자리였지만 192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것 입니다.
양이재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성공회조선교구에서 임대했다가 1920년 매입하였으며 지금의 자리로는 성공회성당을 신축한 직후인 1927년에 옮겨졌습니다.
비록 덕수궁을 떠나 있지만 성공회 덕분에 잘 보존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수 없으며 현재 주교관으로서 서울교구장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공회 경내에 있는 사제관.
신부들이 거처하는 공간으로 유월민주항쟁진원지라는 표석이 앞에 있는 이유는 당시 성공회 신부들이 이곳에서 단식투쟁을 했기 때문이라고.
철거를 잘하는 우리와는 달리 옛것을 잘 보존하려는 영국인들의 심성을 읽을수 있으니 그져 감사할 따름.
흔히 서울성공회성당으로 불리는 대한성공회서울주교좌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건통건축 기법을 조화시킨 아름다운 건물로 1926년에 지어 헌당식을 했으나 미완성의 상태로 있었다고 하며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원 설계도를 찾게되자 1996년 본래 모습으로 증축, 축성식을 가진바 있습니다.
아름다운 외부와 대조적으로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성당 내부 모습.
1996년 성전완성 봉헌 성수대 조형물.
정면에 설치되어 있는 파이프오르간.
언제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들을수 있을지 알아봐야 겠네요.ㅎㅎ
성공회 앞의 서학당길~!
서학당(西學堂)은 조선시대에 설치한 관립교육기관으로 사부학당중 하나이며 중등 정도의 교육을 실시했다고 하는데 위치는 오양수산빌딩 앞 화단으로 추정.
서학당, 양이재, 성공회성당 등이 위치한 배움과 신문화와 계몽이 시작된 역사적인 길입니다.
한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성공회성가수녀원은 덕수궁의 양이재가 있던 곳인데요.
1892년 부터 영국인 수녀들이 병원, 교육선교를 지행하였고 1925년 조선의 수도회가 시작되었다고 하며 수녀들은 기도생활과 함께 현재까지도 사목활동과 사회복지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낮으막한 언덕 위에 있는 조선일보미술관, TV조선.
1920년에 창간된 조선일보사가 바로 옆에 있으니 이 일대가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의 소왕국같습니다.
옛날 조선 태조의 계비인 강비의 정릉이 있던 곳도 이곳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조선일보미술관 앞에 조성되어 있는 작은 공원.
직장인들이 많은 도심지에 정말 소중한 휴게공간이네요.
조선일보미술관을 비롯한 사유건물들은 모두 일제때 덕수궁역이었지만 매각되어 들어선 건물들.
서학당터로 추정되는 오양수산 빌딩 앞 화단을 지나면 세종로사거리로 통하는데 이 길은 오래전부터 정릉과 서학당으로 통하던 유서 깊은 길이 아니었을지.
세종로사거리에서 도로원표를 확인한후 정동 근대역사길 1코스를 마치고 다음은 2코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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