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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근대역사길 4코스(신문화와 계몽)를 걷다강바람의 유적답사 2024. 6. 19. 09:36
'정동 근대역사길 역사보행탐방로' 4코스(신문화와 계몽)를 걸었습니다.
4코스는 종교와 교육, 의료 등의 신문화가 만들어지고, 독립신문사 등 언론과 협성회 등의 토론회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장소입니다.
최초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이 역사박물관으로 남아 있고 최초의 여성전용병원인 보구여관, 독립운동과 신문화를 수용하는 공간이었던 정동제일교회의 기록을 통해 개화기 민족의식과 계몽사상을 살펴볼수 있습니다.
정동제일교회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 H.G.)에 의해 1885년 정동 사저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고
1897년 고딕풍의 벽돌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 교회.
미국공사관과 이화여고, 배재학당이 부근에 있어 신문물의 집성지로서의 역할은 물론 남녀평등과 여권신장 운동의 중심지가 된 곳입니다.
특히 서재필 박사가 오랜동안의 미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배재학당에서 강의하면서 정동교회청년회를 중심으로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하여 독립협회의 전위대를 만들기도 했지요.
'정동 근대역사길 역사보행탐방로' 4코스(신문화와 계몽)를 시작합니다.
4코스는 정동제일교회~옛 배재학당(현 배재학당역사박물관)~옛 대법원청사(현 서울시립박물관)~운교터~덕수궁 대한문까지 약 0.4km.
정동사거리에서 만난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 H.G.)에 의해 1885년 정동 사저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고
1897년 고딕풍의 벽돌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 교회.
미국공사관과 이화여고, 배재학당이 부근에 있어 신문물의 집성지로서의 역할은 물론 남녀평등과 여권신장 운동의 중심지가 된 곳입니다.
특히 서재필 박사가 오랜동안의 미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배재학당에서 강의하면서 정동교회청년회를 중심으로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하여 독립협회의 전위대를 만들기도 했지요.
191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치되었다는 파이프오르간.
그 당시 얼마나 세간의 관심이 높았을지 역사 깊은 파이프오르간 소리 꼭 들어보고 싶네요.ㅎㅎ
꾸밈없는 검소한 모습의 정동제일교회 베델예방당.
정동제일교회에서 배재학당으로 가는 언덕길.
얼마나 많은 학생들과 선교사,교인들이 이 언덕을 넘어 다녔을까요!.
으시시한 러시아대사관.
1990년 한국이 러시아와 수교한 후 처음 용산 한남동에 대사관을 설치했으며 2002년 현재 부지로 이전하면서 신축한 건물은 본관 6층, 부속건물 12층이란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며 보안도 철통같아 삼엄함 그 자체.
수교 당시 옛 러시아공사관 부지 7,500평을 반환하라는 러시아의 요구에 따라 배재중고교 운동장이었던 부지 2,500평을 떼어준 것이며 설계는 우리나라 건축가 김원이 했다고.
오호, 배재학당(培材學堂) ~~!!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 감리교선교사 헨리 아펜젤러(Appenzeller, H.G.)가 서울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으로 기독교 정신과 개화사상에 근거하여 근대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교과목은 한문, 영어, 지리, 생리, 수학, 성경 등이었는데 교과목 외에 서양식 운동인 야구, 축구, 정구, 농구 등도 소개하였으며 특별활동으로 연설회, 토론회 등도 장려했다고 합니다.
고종은 1886년 인재를 기르는 집이라는 뜻의 '배양영재(培養英材)의 줄임말인 배재학당이라는 교명과 액(학교현판)을 내린바 있지요.
이승만, 서재필, 김소월, 나도향 등 수많은 근대 지식인들은 모두 배재학당 출신입니다.
배재중고교는 1984년에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했으나 현재 새로 신축한 고층빌딩을 보니 외벽에 배재 중고등학교, 배재대학교 표지가 크게 붙어 있어 아직도 학교가 있는걸로 착각하게 하네요.
수령 500년이 넘은 배재학당 향나무.
배재학당 언덕길에는 회화나무와 향나무 고목이 있어 옛날부터 이정표 역할도 하고 쉬어가기도 하던 고마운 나무이지요.
서울 중구청에서는 해마다 봄맞이 목욕을 시키며 보호수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역사박물관으로 운영중인 배재학당 동관(東館).
1916년 건축되어 옛 배재학당의 교실로 사용되었던 건물로서 우리나라 근대건축의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고.
건물의 구조와 창문, 외장 및 벽돌구조가 뛰어나며 정면 현관과 양쪽 출입구의 돌구조 현관이 잘 보존된 배재학당 동관.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1858~1902) 동상.
암울했던 구한말에 입국하여 27세에 배재학당과 정동교회를 설립하는등 근대교육과 선교에 헌신했던 인물.
그의 아들인 헨리 다지 아펜젤러는 아버지를 이어 배재학당 교장에 취임해 헌신했고, 딸 엘리스 라베카 아펜젤러 역시 이화학당을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1902년 교회업무차 여객선을 타고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중 군산 어청도 앞바다에서 배가 충돌하여 침몰할때 여학생을 구하려다가 사망했다고 하니 그의 나이 꽃다운 44세 였습니다.
배재중고교가 강동구로 이전한후 교사를 헐고 배재정동빌딩을 신축하면서 아펜젤러기념공원이 들어선 모습.
삭막하던 주변이 모두 공원으로 변모했으니 시민으로 봐선 박수를 칠만한 일. 짝짝~!
아펜젤러기념공원이 들어선 곳은 배재학당 서관(西館)이 있던 곳으로 동관과 마주보며 모습도 같았다고 하며 현재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되어 아펜젤러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옛 사진과 비교해 보니 러시아대사관은 학교운동장 끝을 포함하여 선교사사택이 있던 곳이고 제이피모간, 배재어린이공원은 학교운동장이 있던 곳이었네요.
배재학당이 이전하면서 많은 유산을 남겨 주었으니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무척 많은것 같습니다.
아펜젤러기념공원을 지나면 러시아대사관 후문으로 저 앞에 서있는 사람들은 러시아 입국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온것 같습니다.
이 길은 인왕산 능선을 따라 한양도성이 지나던 길.
한양도성을 따라 걸을수 있다면 이화여고, 창덕여중 방향이지만 안타깝게도 더이상 진출이 불가능한 실정.
오호, 배재정동빌딩 옆으로 또하나의 큰 공원이 있었네요.
배재어린이공원 표지가 보이고 러시아공사관내 한양도성 성벽유적 안내판도 있네요.
배재어린이공원에서 만난 배재공원기념표석.
1989년에 세운 기념표석의 내용을 보면
"이 터는 1885년 8월3일, 미국선교사 아펜젤러 목사가 배재학당을 설립, 이 땅에 최초로 서양문물을 소개한 신교육의 발상지요,신문화의 요람지이다.
1895년에는 독립협회가 여기에서 태동하였고 독립신문도 발간되었다.
또한 1897년 맨손체조를 비롯하여 각종 구기운동이 처음 시작된 우리나라 체육의 산실이기도 하다.
배재공원은 1984년 2월28일 배재중,고등학교가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하게 되어 이 역사적 현장을 길이 보존하고자 코오롱건설주식회사와 체이스맨햇턴은행이 조성하여 서울특별시에 기부하였다."
독립운동 역사에 불을 밝히는 배재어린이공원 항일독립운동 여성상.
'거사전야'라는 제목의 조형물은 한복을 입은여학생이 불을 비추고 다른여학생은 독립선언서를 찍어내는 모습이라고 하며
이곳이 1919년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던 역사적 장소이기에 2019년에 항일독립운동 여성상을 세웠다고 하네요.
도시정원이 특히 아름다운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아 갑니다.
근엄한 모습의 옛 대법원 청사.
정동사거리에서 단정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던 특이한 건물로 늘 기억되는데요.
이 자리는 옛 독일영사관이 있던 자리로 알려져 있는데 1928년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근세 고딕풍으로 건물을 지어 경성재판소로 사용되었고, 광복후 1995년까지는 대법원 청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후에는 보수공사를 거쳐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운영중인데 보수공사 당시 앞면만 예전대로 남겨둔채 뒷쪽은 모두 몽땅 뜯어내며 리모델링하여 아쉬움이 크기도.
추억어린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려니,
앗, 덕수궁 돌담의 운교터~!
돌담과 맞추어 기단석이 6줄로 높게 쌓인 이곳은 놀랍게도 1903년 건설했던 덕수궁 운교(雲橋)터.
사진으로 남은 덕수궁 운교.
대한제국의 기틀을 잡기위해 고종황제는 궁역을 확장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를 위해 1900년 옛 독일영사관터를 구입해 궐외각사를 설치하고 덕수궁과의 사이에 길이 나있어 무지개 모양의 운교를 건설한바 있는데요.
운교를 건설하며 확장한 길이 현재의 덕수궁돌담길이라고 합니다.
나름 운치있어 보이는 덕수궁 운교는 일제때 철거되었다고 하니 아쉬움이 큽니다.
서울시청사 별관쪽으로 있는 담장이 위 사진의 옛 운교 담장과 같아 보이네요.
뒷늦게 나타난 4코스 안내판.
안내판의 내용을 보면
"4코스는 종교와 교육, 의료 등의 신문화가 만들어지고, 독립신문사 등 언론과 협성회 등의 토론회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장소입니다.
최초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이 역사박물관으로 남아 있고 최초의 여성전용병원인 보구여관, 독립운동과 신문화를 수용하는 공간이었던 정동제일교회의 기록을 통해 개화기 민족의식과 계몽사상을 살펴볼수 있습니다."
서울시청사 서소문별관 일대에는 예전 육영공원, 독일영사관, 독립신문사가 있던 곳.
육영공원(育英公院)은 1886년 개화파들의 요청으로 정부에서 세운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서양학문을 영어 중심으로 가르치던 곳이며
독일영사관은 1884년 박동에 개설되었으나 1891년 이곳에 있던 육영공원과 자리를 맞바꾸었으며 1902년 다시 상동(현 남창동)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사가 1896년 창간되어 1899년 폐간할때까지 이곳에 있었다고 하네요.
이 땅에 최초로 서양문물을 소개한 신교육의 발상지요, 신문화의 요람지인 정동을 산책하려니 볼것도 많고 들을 얘기, 할 얘기도 끝이 없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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