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당 이회영기념관이 입주한 사직동 옛 조세핀 캠벨 선교사 주택강바람의 국내여행 2024. 7. 25. 09:08
남산에 있던 우당 이회영기념관이 2024.7/17(수) 종로구 사직로 6길 15, 옛 조세핀 캠벨 선교사 주택으로 이전하였습니다.
2024.7/24(수) 우당 이회영기념관을 찾았습니다.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 1867~1932) 선생은 대한제국의 교육인, 사상가이자 일제강점기 시대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선생은 대구 영남중, 공옥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신민회의 창립멤버로 가담하였고 북간도에 서전서숙을 창립하였으며 일가 6형제와 함께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급활동을 하였습니다.
1931년 9월에는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일본과 일본 관련 시설의 파괴, 암살을 지휘하였으나 1932년 11월 체포되어 고문후유증으로 옥사한바 있습니다.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형의 형이며 해공 신익희와는 사돈지간, 정치인 이종찬, 이종걸은 그의 손자입니다.
우당 이회영기념관이 새로 보금자리를 튼 곳은 옛 조세핀 캠벨 선교사 주택.
종로구 사직동 311-32번지 외 1필지에 있는 선교사 주택 2동은 1906년경 언덕 위 일천여평의 넓은 대지에 세워졌는데 선교역사를 증거하는 귀중한 건축물로 평가됩니다.
보통의 선교사 주택은 붉은 벽돌이나 캠벨 선교사 주택은 아주 드물게 석재로 짓고 내외부도 잘 보존되어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크므로 2019년 서울시에 의해 등록문화재(우수건축자산 제3호)로 지정된바가 있습니다.
현재 선교사 주택 일대는 사직2재개발구역이지만 선교사 주택은 그대로 존치시킨다고 하네요.
한편 조세핀 캠벨(1853~1920)은 미국 남감리교회가 1897년 조선에 파견한 첫 여성선교사로 이미 중국에서 10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경험많은 그녀를 조선에 보내기로 결정한것 이지요.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당시 배화학당(처음에는 자골학당)을 세워 여성 인재를 양성하는 등 선교사역에 힘썼는데요.
26년 동안 기독교 선교를 위해 헌신하던 캠벨은 1920년 운명하였고 그녀의 희망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잠들어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우당 이회영기념관을 보고 조세핀 캠벨 선교사주택도 둘러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사직동 언덕 위의 옛 조세핀 캠벨 선교사주택을 찾아 갑니다.
2024.7/17(수) 종로구 사직로 6길 15, 옛 캠벨선교사 주택으로 이전한 우당 이회영기념관.
옛날에는 항상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궁금했는데 오늘은 문이 활짝 열려있네요.
감격스럽습니다.ㅎㅎ
오호, 조세핀 캠벨 선교사 주택 ~!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 1867~1932)은 대한제국의 교육인, 사상가이자 일제강점기 시대 독립운동가.
일가 6형제와 함께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신 우리의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조세핀 캠벨 선교사 주택지엔 120년 역사를 가진 2동의 석조건물이 있지요.
2동의 선교사 건물의 남쪽에는 넓은 정원.
미국의 여선교사들이 고향을 그리며 정원을 가꾸었겠지요.
전체 면적은 1천평이 넘으며 언덕 위에 있어 사방을 조망할수 있으나 수년째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정원은 다소 어수선한 편.
우당 이회영기념관으로 사용중인 첫번째 주택.
선교사 주택 2동은 1906년경 언덕 위에 세워졌는데 선교역사를 증거하는 귀중한 건축물로 평가되며
건축한지 120년 가까이 되지만 예술적인 면도 매우 뛰어나 지금봐도 넘 아름답네요.
보통의 선교사 주택은 붉은 벽돌이나 캠벨 선교사 주택은 아주 드물게 석재로 짓고 내외부도 잘 보존되어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크므로 2019년 서울시에 의해 등록문화재(우수건축자산 제3호)로 지정.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두번째 주택.
남향을 하고 있으며 수년째 방치하여 노후화가 심하며 현재 폐쇄중.
초가집, 기와집만 있던 시절에 예쁜 서양식 건물이 언덕 위에 있어 어디에서든지 바라보였을테니 얼마나 장안의 화제가 되었을까요~!
선교사 주택에서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북악산, 경복궁 일대.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종로 방향.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경희궁 남산 방향.
이회영기념관으로 꾸민 내부 모습.
많이 변형되어 옛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벽난로만은 잘 보존되어 있네요.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회영 6형제들.
6형제라니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사에 남을 전무후무한 기록이네요.
첫째 이건영, 둘째 석영, 셋째 철영, 넷째 회영, 다섯째 시영, 여섯째 호영.
우당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선생은 대한제국의 교육인, 사상가이자 일제강점기 시대 독립운동가로 가장 숭고하고 존경스러운 분.
2층으로 통하는 목조계단.
독립운동때 사용하던 소총, 권총들.
이회영의 처 이은숙(李恩淑, 1889~1979)이 기록한 육필원고인 서간도시종기(西間島始終記).
신흥무관학교 설립과정, 베이징, 텐진 망명시절, 다시 국내 잠입활동, 손녀 둘과 아들의 연이는 죽음, 이회영의 죽음과 아들의 투옥, 광복과 6.25 사변 이후까지를 기록한 독립운동 수기인 서간도시종기.
그 분의 세밀한 기록 덕분에 당시 독립운동의 고난과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습니다.
명문 사대부 출신인 이회영은 사군자(四君子)중 으뜸이라는 묵란(墨蘭) 또한 잘 쳤다고 하며
때론 이 묵란을 내다팔아 독립투쟁 자금을 마련했다고
2층 천장은 예전의 목구조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개방한 모습.
무더운 날씨였지만 우당 이회영기념관을 보고 조세핀 캠벨 선교사주택도 둘러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강바람의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춘천국립박물관 (0) 2024.08.09 운길산 자락 한음골에서 만난 소박한 한옥 박소재(撲素齋) (0) 2024.08.03 부안의 동진강 문포(文浦) 가는 길 (0) 2024.07.24 원주 치악산 구룡사계곡을 걸어 세렴폭포, 칠석폭포를 찾다 (0) 2024.07.14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 정읍의 혁명유적지 탐방 (0) 2024.07.11